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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데이트에 섹스는 과연 좋은 생각일까?

2023.02.14

첫 데이트에 섹스는 과연 좋은 생각일까?

몇 주 전 파티에서 만난 남자에게서 더 이상 답이 오지 않는다. 우리 사이에 뭔가 있다고 생각한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그 남자: <보그>에 제 자리 하나 마련해줄 수 있어요?
나: 당연하죠. 월요일에 한번 얘기해볼게요.
그 남자: 아, 그쪽이랑 얘기하려고 농담한 거예요.
나: 알아요. 저도 농담이었어요. 그쪽에게 재밌게 보이고 싶어서요.

당연히 이 대화 뒤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래도 그 남자랑 자지는 않았잖니.” 엄마가 말했다. 내가 남자랑 잘 안됐을 때 늘 해주는 위로다. 아마 엄마는 내가 그 남자랑 잤다면 더 배신감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택시를 타고 파티 장소를 떠났기 때문에, 이 상황에 대한 일종의 주도권이 생긴 셈이라고 말이다. 물론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그 자리를 피한 건 그저 지루했기 때문이다. 컨베이어 벨트처럼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무의미한 대화에 나는 점점 멍해졌다. 마지막엔 친구가 우리의 대화를 티셔츠에 프린트로 새겨야 한다며 분위기를 띄우는 농담을 했는데도, 웃음조차 전혀 나오지 않는 지경이 됐다.

일주일 후 다른 파티에서 몇 달 전의 그 남자를 마주쳤다. 그 남자를 썩 마음에 들어 했던 것도 아니지만, 친구는 그가 그저 수줍음이 많은 사람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학교에서 공부만 했던 그에겐 망사 드레스를 입은 여자애들이 달려와 “만약에 당신이 채소라면, 어떤 채소일 것 같아요?” 같은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을 거라고. 뭐, 내 눈에는 그저 잘난 체하는 ‘샌님’으로만 보였기 때문에 그저 조용히 속으로만 싫어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우리는 결국 잠자리까지 하게 됐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기억나는 거라곤 같이 파티 장소에서 나와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다는 것, 그가 멈춰서 나를 돌아보았을 때 그의 입가에 우쭐한 미소가 스쳤다는 것 두 가지뿐이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키스하려고요?”라고 물었지만, 이미 내 손가락은 그의 머리카락 사이를 훑고 있었고 그의 손은 내 엉덩이 위에 있었다. 우리는 그 자세로 옆 건물의 벽에 부딪힐 때까지 휘청거리며 뒤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냥 방을 잡아.” 사람들이 하나둘씩 파티 장소에서 나오며 말했다. 이런 말까지 들었지만 나는 공공장소에서 지금 한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여기서 멈추면 진짜 데이트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잘 모르는 사람과 진도가 너무 빠르다거나 내가 너무 간단히 넘어간 건 아닌지, 이 남자의 생각에 대해서도 관심 없었다. 그러니까, 남자를 만날 때 보통 하는 생각은 내 머릿속에 전혀 없었다.

대신 그의 무릎이 내 다리 사이로 밀고 들어올 때까지, 내 양팔이 그의 어깨를 감쌀 때까지 점점 더 가까이 그에게 파고들었다. 팔다리가 완전히 얽히고, 우리 사이에 공기조차 들어올 틈이 없을 때까지, 마치 진공 상태처럼 빈틈없이, 그럼에도 완전히 가깝지는 않은 그런 상태까지 말이다. 그때 생각한 건 그의 전신을 한 번에 감쌀 수 있도록, 문어처럼 발이 여덟 개였으면 좋겠다는 유치한 상상 정도였다. 우리는 걸어서 집에 가보려고 했지만, 길을 가다 멈춰 서로를 끌어안는 일을 반복했다. 결국 그의 부드럽고 커다란 흰색 침대에 파묻히고 나서야 끝이 났다.

잠에서 깨어나자 머릿속은 당연히 복잡했다. 열린 창문에선 옅은 푸른빛이 쏟아지고 있었고, 나는 숙취에 갈증까지 있었지만 물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 하는 바쁜 여자 친구라도 된 양 몸을 숙여 그의 뺨에 키스하고는 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내 침대에서 긴 잠을 청한 후 일어나, 베이글을 구우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생생한 디테일을 하나하나 다 말해줄 작정이었다. 하지만 친구의 질문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네 기분은 어떤데?”

나를 어르고 달래주기 위한 친구의 그 말이 뭔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후회할 짓을 한 것 같다고 할까. 바로 그때 엄마가 이전에 한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적어도 걔랑 자진 않았잖니.” 뭐야, 내가 뭔가 실수한 건 아닐까? 꼭 붙잡고 있어야 하는 무언가를 너무 쉽게 줘버린 건 아닐까?

여성의 섹스는 늘 이런 식으로 어떤 프레임이 씌워져 있다. 남성이 여성에게서 앗아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여성은 순결을 잃고, 잃으며, 이후에 또 잃는다. 세 번째 데이트까지는 순결을 간직해야 하고, 남자를 기다리게 해야 하며, 그렇게 나의 몸은 누군가가 얻을 수 있는 상처럼 여겨진다. 문득 이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럼 내 순결을 주고 나서 나의 힘은 약해지는 걸까? 침을 쏘고 나서 벌이 죽는 것처럼?

하지만 그날 밤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와 잔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바로 그 순간에,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갖고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를 살았을 뿐이고, 그 현재가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을 뿐이다. 그의 집을 나와 택시를 잡으러 가는 그 순간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느꼈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카트리나 앤 더 웨이브스의 ‘Walking on Sunshine’에 맞춰 가로등 기둥을 잡고 경쾌하게 한 바퀴를 도는 그런 영화. 양손을 쫙 펴고 웃으며, 섹스 후에 세상이 얼마나 밝고 달라 보이는지 보여주는 영화 말이다.

필자 애니 로드(Annie Lord).

“올해는 실수를 더 많이 해보려고.” 또 다른 친구에게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모두 이야기하며,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혼란도 받아들여야지.” 친구는 칵테일을 마시다가 눈을 번쩍 뜨며 내게 말했다. “그걸 실수라고 해야 할까?” 그에 대한 나의 대답.

“그렇게 안 했으면 그게 실수지.”

나는 무언가를 더 말할까 하다가 슬쩍 미소만 지었다. 올바른 결정이 너무 자주 잘못된 결정처럼 보인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왔다. 이 사실을 깨닫고 한잔 더 하러 가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다음번엔 뭘 또 한 번 ‘망쳐봐야’ 하나.

Annie Lord
사진
Sam Wilson(포트레이트),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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