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가 동시대 여성 그리고 K-팝에 남긴 것
그들의 데뷔 15주년 기념 활동은 음원 차트 순위와 무관한 역사적 사건이다.
소녀시대는 그들 스스로 걸 그룹에 대한, 여성 연예인에 대한, 여성 조직에 대한 편견을 깨온 팀이다. 여기 더해 그들의 컴백은 K-팝과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한 단계 성장했음을 알리는 증표이기도 하다. 당신이 소녀시대의 팬이건 말건, 2022년 그들의 컴백 활동을 지켜보는 건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는 것이다.
소녀시대는 2007년에 데뷔했다. 그리고 2017년 여러 멤버가 SM엔터테인먼트를 나왔다. 사실상 해체였지만 멤버들은 개인 활동을 하게 된 것뿐이라며 명분만 있으면 ‘완전체’ 활동은 언제든 가능하다고 여지를 남겨왔다. 여느 그룹이라면 팬덤을 유지하기 위한 빈말이라 생각했겠지만 소녀시대는 달랐다. 소녀시대는 그룹 활동 중에도 누구 하나 빠지는 멤버 없이 모두 톱스타 대우를 받을 정도로 성공한 팀이었고, 그만큼 팀 내 경쟁이 치열하지 않을까라는 상상 섞인 소문도 따랐다. 그러나 그들은 소속사가 달라진 후에도 꾸준히 소그룹으로 뭉쳐서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서로의 활동을 지원하면서 우정을 증명했다. 원소속사와 분란이나 앙금은 없다는 것도 분명히 했다. 그것은 여성 조직이 시기, 질투, 권모술수, 아마추어리즘으로 가득한 곳이며 연예계는 그것이 극대화된 분야라는 편견을 불식시키는 행보였다. 소녀시대는 음악이나 스타일링 컨셉으로 걸크러시를 강조한 팀은 아니었지만 멤버들의 역사와 관계로 고도의 프로페셔널리즘과 여성성이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냄으로써 동시대 여성에게 영감을 안겨준 팀이었다.
그들 스스로도 자주 얘기했듯이, 활동 초기부터 그들의 관계가 돈독한 건 아니었다. 무대 뒤에서 싸우기도 했고 서로 맞춰가는 과정도 있었지만 무대에 오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완벽한 웃음을 보이는 게 소녀시대였고, 그것을 통해 업계 관계자들은 SM의 훈련 시스템과 멤버들의 프로페셔널함을 상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차츰 스스로 발언권을 가진 아티스트로 성장해갔다. 걸 그룹이 10년 동안 함께 활동한다는 것, 즉 그만큼 상품성을 유지하면서 우정을 유지한다는 건 기존에 목격하지 못한 현상이었다. 그 과정에서 소녀시대 팬덤은 그들을 단순히 동경하는 것에서 나아가 함께 나이 먹고 성장해갔으며, 스스로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멤버들이 거친 시간과 노력을 더 깊이 짐작하고 존경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성공한 K-팝 그룹이 해체하고 다시 뭉치지 못하는 데는 주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멤버 누가 사고를 쳐서 퇴출되는 게 흔한 경우이고, 일부 멤버가 월등히 성공해 그룹이 필요 없어진 경우가 다음으로 흔하다. 그런데 소녀시대는 무려 여덟 명이나 되는 멤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꾸려왔다. 영화와 드라마의 주연급 배우가 네 명이나 있고 그 밖에도 솔로 가수, MC, 광고 모델, 뮤지컬 배우로 모두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여기 소녀시대 시절의 영화가 그리워서 돌아온 멤버는 아무도 없다. 그들은 각자 발언권을 갖고 스스로를 프로듀싱할 능력이 있는 톱스타로서, 소녀시대라는 브랜드가 음악 산업과 팬들에게 갖는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다시 뭉쳤다. 이것은 K-팝 아이돌이 아티스트가 아니라 공산품일 뿐이라는 편견에도 훌륭한 반론이 될 것이다. 이것을 지원하는 SM의 태도에서도 아이돌 그룹을 기획사의 한시적 수익 상품이 아니라 팬 공동체의 자원으로 인식하는 성숙함이 엿보인다.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멤버들의 컴백에서는 아이돌이 젊은 한때의 광대 짓이 아니라 치열한 노력과 직업의식으로 완성되는 한국 문화 산업의 핵심 파트라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2022년 K-팝의 위상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좋은 예시는 없을 것이다.
소녀시대 15주년 기념곡 ‘Forever 1’ 뮤직비디오는 멤버 각자의 현재 모습을 비추다가 그들이 함께 무대를 꾸리는 플롯으로 전개된다. 동시에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를 향한 오마주도 담았다. 소녀시대 팬들에게는 물론 이보다 큰 선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당신이 현재 정점에 있거나 이제 막 데뷔한 어떤 아이돌 그룹의 팬이라 치자. 그들의 15년 후가 이보다 나으리라 상상할 수 있는가. 소녀시대는 K-팝 그룹의 이상향을 새롭게 제시한다. 지금껏 어느 그룹도 못한 일이다. 이것만으로도 소녀시대의 컴백에 열광할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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