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깡 작가의 진실을 위한 ‘거짓말들’
<술꾼도시처녀들> 미깡 작가가 거짓말을 주제로 테마 단편집 <거짓말들>을 냈다. 목적도 방식도 다르지만 놀랍도록 매혹적이다.
<술꾼도시여자들(술도녀)>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를 얻었는데, 원작자로서 일상에서 달라진 점은 없나.
온 세상이 <술도녀> 이야기로 떠들썩하던 그 무렵, 혼자 <거짓말들> 원고 작업만 하고 있었다(웃음).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지만 성공한 드라마의 원작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즐겁다. 하반기에 공개될 시즌 2도 무척 기대하고 있다.
단편집 <거짓말들>을 펴내며 거짓말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풀어간 이유는.
단편집을 내겠다 마음먹었을 때, 기왕이면 하나의 테마를 갖고 작업하면 책이 짜임새 있고 재미도 있겠다 싶었다. 처음 그린 작품이 ‘A의 거짓말’이어서 거짓말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게 됐다. 거짓말은 누구나 해봤고, 하고 있고, 당해도 봤기 때문에 다양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으니까. 과연 원래 갖고 있던 소재에 ‘거짓말’ 요소를 적용했을 때 대부분 무리 없이 소화가 가능했다.
다양한 거짓말을 보는 재미가 컸지만, 거짓말은 오히려 어떤 진실을 보여주는 수단의 역할을 한다. 이야기를 구성하며 쾌감도 컸을 것 같다. 그런 차원에서 거짓말은 어떤 소재였나.
어릴 때부터 거짓말은 나쁘다고 배웠고, 우리는 대부분 정직하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지 않나. 무리 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한 ‘소셜 거짓말’은 기본이고 때로는 타인을 위해 하얀 거짓말을 지어내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튀어나와 평온하던 세계가 흔들리는 경험도 한다. 거짓말에는 다양한 반응이 뒤따른다.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면서도 누가 알아줬으면 싶기도 하다. 거짓말에 거짓말로 대응하는 일도 있다. 옳고 그름으로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측면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거짓말’이 아주 매력적인 소재라고 생각했다.
결혼에 대한 인식, 여아에게 늘 찾아오는 공주기를 비롯, 중년 부부의 관계, 회사에 매몰되어가는 직장인, 아동 성폭력까지. 당신의 작품 세계에 계속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지금 이 세상인 듯싶다.
뉴스 기사나 SNS를 통해서 이런저런 안타깝고 답답하고 화가 나는 소식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세상에 더 알려졌으면’ 싶은 이야기를 작품에 담게 된다. 그때그때 시의적절한 내용을 곁들이는 거다. <거짓말들>을 기획할 즈음 과로 자살의 심각성을 다룬 기사라든가 친족 성폭력 문제에 대해 읽었기 때문에 그걸 작품에 넣었다. 내 작품의 무대는 언제나 미래나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당면한 사회문제를 작품에 그리는 건 내게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는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술꾼도시처녀들’ 제목을 ‘술꾼도시여자들’로 바꾸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다.
처음에는 작품 안에 성차별적 설정이나 표현은 없는지만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근데 이런 생각이 점점 확장되는 거다. ‘이건 청소년 혐오 표현인데?’ ‘이건 농촌 비하 아닌가?’ 식으로. 어떤 컷에 이 말을 넣으면 끝내주게 웃길 것 같아도, 누군가가 불쾌할 수 있는 표현이면 참는다. 재미가 떨어져도 그렇게 가기로 했다. 재미보다는 올바름 쪽으로. 또 여성 작가로서 다양하고 주체적이고 무엇보다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꼭 특별하고 대단한, 위인급 여성들의 이야기 말고, 팜므 파탈이나 악녀 이야기 말고, 그냥 평범하고 작은 우리 이야기다.
처음부터 단행본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했다. 그래서인지 연출력을 보는 묘미도 대단하다.
기존에 그린 웹툰은 정방형 사이즈에 세로로 죽 내려 보는 형식이라 임팩트를 주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반면에 출판 만화 작업은 내용에 따라 칸을 작게도 쓰고 크게도 쓰고 페이지 넘기기 전에 긴장감을 주는 등 컷 연출을 다채롭게 할 수 있어서 정말 재미있었다. 웹툰 연재도 좋지만 출판 만화를 꼭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일단 이 책이 많이 팔려야 할 텐데(웃음)…
<술꾼도시처녀들>은 네 컷 만화였고, <거짓말들>은 단편 만화 모음이다. 짧은 호흡 안에서 엄청난 저력을 발휘하는데, 단편이 가진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워낙 단편 소설, 단편 만화를 좋아한다. 짧은 만큼 한 가지 이야기에 집중하기 때문에 강렬하고 여운도 길다. 예전에 어디선가 “단편은 질문을 던지면서 끝나고 장편은 질문에 응답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책장을 덮고 나서 ‘방금 일어난 그 일은 뭐였지?’ ‘주인공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등의 생각을 이어갈 수 있는 점이 단편의 매력이다.
그림체는 간결하지만 인물의 감정은 고스란히 전달된다. 어떤 점에 주력하며 그림을 그리나.
사실 그림은 배운 적도 없고 기본이 안되어 있어서 여전히 어렵다. 머릿속에 있는 동작을 제대로 그리는 것만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도 나름 신경 쓰는 점이 있다면 인물을 현실적으로, 제각기 다르게 그리려고 노력한다. 세상에는 마른 체격의 미녀 미남만 있는 건 아니니 다양한 체형, 외모를 표현하려고 한다.
최근 흥미롭게 본 만화가 있다면.
앨리슨 벡델의 <펀 홈(Fun Home)>을 이제야 봤는데 정말 탁월하고 놀라웠다. 과연 나는 자전적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골똘하게 된다. 아, 작가 이름이 낯익지 않나. 벡델 테스트의 그 벡델 맞다.
당신이 최근에 한 거짓말은.
피곤하면 인후염과 편도염이 상습적으로 도지는데, 최근 걸린 게 통 낫지를 않는다. 의사가 술 마시면 안 좋다고, 혹시 마셨냐고 묻길래 안 마셨다고 했다. (당연히 마셨다.) 이런 거짓말을 마흔이 넘어서도 계속할 줄은 몰랐다(웃음).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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