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아이템

바이레도 메이크업의 제2막

2022.09.28

바이레도 메이크업의 제2막

투명함에서 느껴지는 순수와 생동 그리고 ‘리셋’이라는 변화. 루치아 피카가 바이레도 메이크업의 2막을 연다.

화학적 의미로는 산소와 수소의 결합물. 색, 향, 맛, 그 무엇도 지니지 않은 ‘물’은 도처에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같은 형태는 없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유연함과 무엇도 담지 않은 투명함을 누군가는 ‘시작점’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속성을 가진 물을 ‘메이크업’과 연결 짓는다면? 쉽게 상상하기는 힘들 것이다. 다채로운 색과 미묘한 차이로 수만 가지 감정을 표현하는 텍스처야말로 화장의 ‘꽃’이니까. 하지만 바이레도(Byredo)의 벤 고햄(Ben Gorham)은 ‘물’을 유동적이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투영하는 원초적인 힘으로서 바라보며 메이크업 라인을 이전 방식과 완전히 다르게 정의한다. 그리고 그의 곁에 우리 여자들의 메이크업 판타지를 실현시켜온 메이크업 아티스트 루치아 피카(Lucia Pica)가 있다.

“매우 진실하고, 기본적인 감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상상했습니다.” 벤의 말은 올 상반기 뷰티 월드를 놀라게 한, 새로운 메이크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발탁 소식을 납득하게 했다. 물론 피카의 커리어는 동시대 어느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비교해도 손색없다. 게다가 더없이 화려하다. 런던의 메이크업 스쿨을 졸업한 후 컬트적 성향의 뷰티 부티크 ‘파우트(Pout)’의 매장 직원에서, 샬롯 틸버리(Charlotte Tilbury)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다 독립한 뒤 전 세계 <보그>는 물론, 알라스데어 맥렐란, 유르겐 텔러, 윌리 반데페르 등 유명 사진가와 작업하며 샤넬 뷰티의 글로벌 메이크업 디렉터로 6년간 일했다. 하지만 경계를 부수고 ‘비주류’에 가까울 만큼 파격적인 구성을 보여준 바이레도의 첫 메이크업 컬렉션을 생각하면 럭셔리 브랜드에서 오랜 일한 그녀와의 협업 결정은 확실히 과감했으며 호기심마저 자극했다.

마침내 10월 1일, 그 첫 컬렉션을 공개한다. 이름하여 ‘리퀴드 립스틱 바이닐(Liquid Lipstick Vinyl)’. 기대만큼 새롭게 변신한 바이레도 메이크업의 뉴 챕터가 펼쳐진다. 10가지 색감으로 구성된 야심작을 세상에 공개하기 직전, <보그>가 그녀와 대화를 나눴다.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당신을 만나는 건 오랜만이군요.

제게 맞는 곳으로 온 것 같아요, 바로 있어야 할 곳이죠. 지난 4개월간 바이레도의 미래를 위한 색과 텍스처를 연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디어의 경계를 허물 때 누구보다 흥미롭고, 뛰어난 영감을 주는 벤 고햄과도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죠. 이미 세 가지 캠페인 촬영까지 마쳤고요.

그렇지 않아도 벤과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했어요.

벤과 저를 이어주는 친구가 있어요. 이전 브랜드와 계약이 끝났다는 사실 역시 그 친구가 벤에게 전했죠. 샤넬과 이별하고 1년쯤 흘렀을 때 그에게 연락이 왔어요. 나 자신을 돌아보고, 프리랜서로 원하는 작업을 하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그가 찾아왔죠. 사실 창의적인 일을 하며 충분히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새로운 회사를 찾진 않았어요. 그래서 더 뜻밖의 사건이었죠.

첫 만남은 어떤 분위기였는지 기억하나요?

파리 패션 위크 기간이었어요. ‘카페 드 라 메리(Café de la Mairie)’에서 처음 만났죠. 벤은 딸을 데리고 왔어요. 본격적인 프로젝트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제게 메이크업 파트를 맡기고 싶어 하는지조차 몰랐죠. 하지만 대화가 자연스럽고 편하게 흘러가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브랜드의 철학과 목표가 일치했어요. 벤은 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영감과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저 역시 그렇고요. 그의 진정성을 무엇보다 높이 평가해요. 미팅 직후 벤의 딸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군요. “에너지가 좋은 사람 같아. 함께 일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평소 ‘바이레도’에 대해 어떻게 여겨왔나요?

벤을 만난 뒤로는 이 브랜드를 곧 ‘감정의 깊이가 담긴 이야기’라고 여깁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감정이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개인적인 매개체요. 그래서 처음 협업하기로 결정했을 때 적절한 시기에, 더없이 알맞은 곳에 도달했다고 생각했어요. 향수를 뿌리는 행위는 기분 전환에 도움을 주죠. 벤은 보이지 않는 향기를 매개로 다채로운 감정을 전달하고요.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땐 ‘이거 정말 굉장하잖아?’라고 감탄했어요. 컬러와 텍스처로 이야기하는 것이 곧 제 일이기도 하니까요. 놀라운 공통분모죠. 럭셔리 브랜드인 동시에 특유의 분방함을 유지한다는 것 역시 매력적이에요. 메이크업 카테고리가 시작 단계라는 것 또한 저를 자극했어요. 저만의 럭셔리에 대한 감각과 텍스처에 관한 노하우를 바이레도 메이크업에 주입하고 싶으니까요.

메이크업 컬렉을 재정비하는 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의 감정과 기억, 브랜드 철학 사이에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겁니다. 아름답고 투명하면서도 자기 스스로를 배려하는 그런 아이템으로요. 동시에 굉장히 강렬하고 관능적이죠.

당신은 ‘아름다움의 본능, 본질’을 찬미하죠.

결국 저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를 주고 싶은 거예요.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메이크업을 통해 본능처럼 편안한 자기 자신을 찾길 바랍니다.

첫 제품으로 리퀴드 립스틱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리퀴드 립스틱에는 물의 성질과 역동성, 관능이 담겨 있어요. 불필요한 외부 요소를 벗겨냈고요. 액체라는 아이디어, 물의 성질, 이 모든 건 결국 바이레도의 시작인 향수로 돌아가게 합니다. 사람들의 감정에 파동을 일으키는 ‘액체’에 대한 아이디어가 출발점이었어요. 벤은 이 투명한 매개체를 통해 이야기해왔죠. ‘리퀴드 립스틱 바이닐’은 향기처럼 당신이 현재 느끼는 기분과 매치할 수도 있고 색다른 기분으로 전환할 수도 있어요. 저는 이 제품이 바르는 누군가의 일부가 되길 원해요. 특유의 흐르는 듯한 텍스처가 과하지 않고 부드럽게 입술과 하나가 되며, 절제되고 단순하지만 특별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거든요. 애플리케이터는 매우 정밀해서 원하는 대로 입술에 표현할 수 있어요. 쉽고, 미묘하면서도, 정확하게 만들었으니까요.

10가지 컬러입니다. 10월 1일 출시 예정인데, 한국 여성에게 추천하고 싶은 제품은 뭘까요?

단연 ‘팬텀(Fantome)’! 가장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컬러이기 때문입니다. 눈두덩에 얹어 글로시한 아이 메이크업을 연출할 수도 있고요. 한국에선 레드, 누드 계열의 컬러가 인기라고 들었습니다. 내추럴 레드에 가까운 ‘스칼렛 리버(Scarlet River)’, 사랑스러운 베이지 브라운 컬러의 ‘리즈너블 다웃(Reasonable Doubt)’도 권하고 싶군요.

패키징이 초현대적이면서 상징적이에요.

벤은 패키징이 곧 실재하는 경험이자 프레젠테이션이라고 여기죠. 욕실 선반, 조리대 위에서도 아름답게 보이지만 실제로 제품을 집어 들 때 느껴지는 제품의 무게감, 구조, 여닫는 부분의 마그네틱 등 사소한 부분까지 만족감을 높일 수 있도록 고안합니다. ‘리퀴드 립스틱 바이닐’의 디자인은 고대 물건과 유물로부터 영감을 얻었어요. 3000년 전에 제작된 듯 보이지만 현재에도 만들 수 있는 것들이죠. 시대 초월이 목적입니다. 몸통 부분의 녹아내리는 듯한 모양은 안에 들어 있는 텍스처의 유동성을 반영했습니다. 어찌 보면 제품 그 자체의 개념적 확장이죠.

미니멀한 캠페인 비주얼 역시 인상적입니다.

최대한 ‘프레시’해 보이길 원했어요. 투명함을 강조할 수 있도록요. 메이크업의 결과물은 간결한 동시에 매우 강렬합니다. 제품의 무궁무진함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관전 포인트입니다.

‘리퀴드 보디 캠페인 (Liquid Body Campaign)’이라고 명명했죠. 영감은 어디서 얻었나요?

액체의 유연함, 투명함이라는 텍스처를 통해 그 속에 담긴 여성의 새로운 본질을 발견하는 것이 컨셉이었습니다. 캠페인 이미지를 보고 있으면 생동감이 느껴질 거예요. 모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기분이죠. 10가지 색상은 전부 누드의 변형입니다. 강한 음영보다 투명하게 활용할 수 있는 색을 담았죠. 새로운 시작이며, 투명한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여성에게서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강함과 연약함, 그 면면을 담기도 하고요.

촬영 현장은 어땠나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해서 행복했어요.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에밀리 라임푸르(Emily Rahimpour)와 사진가 조 게트너(Zoë Ghertner)와 작업했죠. 제 꿈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형성하고, 비주얼의 깊이감을 이루기 위해 긴밀하게 지내는 거예요. 평소 연락하며 지내는 모두가 바이레도와 함께 일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거야말로 더없이 멋진 일이죠.

모델의 비주얼이 이국적이고 좋았어요.

일랑 메센기랄(Ylang Messenguiral)은 정말 상냥해요. 아름답지만 강인한 면도 있고, 성격이 쿨해서 편안한 부분도 있죠. 뻔하지 않고, 개성 넘치며, 색다르게 움직일 줄 아는 모델들은 언제나 영감을 줍니다.

그 비주얼의 피부 표현 역시 놓칠 수 없습니다. 다음 컬렉션의 힌트인가요?

현재 여러 제품 개발에 몰두하는데, 베이스 제품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토록 영감 넘치게 일하는 당신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뭔가요?

메이크업 제품을 사용하는 이들과의 ‘교감’입니다. 여자든 남자든 여러분을 움직이며 여러분이 느끼는 감정과 우리가 실제로 받은 느낌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바이레도에 푹 빠졌군요!

하하. 맞아요. 이 새로운 챕터가 어떻게 펼쳐질지 정말 기대되고 설레거든요. (VK)

에디터
송가혜
Courtesy of
Byre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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