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성을 위한 주얼리란?
전자 폐기물에서 금을 추출해 반지를 만들고, 실험실에서 다이아몬드를 키운다. 가치 소비를 하는 이들 덕분이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끔찍한 내전에 시달리는 시에라리온이 배경이다. 그곳의 풍부한 다이아몬드가 ‘자원의 저주’가 되어 불법 전쟁 자금으로 쓰인 실화에 기반한 작품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용병으로 출연했다. 알다시피 환경 용병이기도 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스타트업 다이아몬드 파운드리(Diamond Foundry)의 투자자다. 이 스타트업은 분쟁과 노동 착취를 일으키는 피의 다이아몬드에 반대하며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생산한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말 그대로 실험실에서 키운 다이아몬드다. 자연에서 8억~30억 년 걸려 생성되는 다이아몬드를, 인간이 도시에서 만들어낸다. 다이아몬드와 같은 원소기호를 갖고 물리적·화학적 성질이 같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업체는 “실험실에선 피를 흘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환경에도 이롭다. 보통 1캐럿을 채굴하려면 약 250톤의 바위를 파헤치고 500리터의 물이 들고, 이때 나오는 각종 화학물질이 주변을 오염시킨다. 스타트업 이서(Aether)는 “다이아몬드 광산은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공기 중 탄소를 채집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생산하고 있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가치 소비를 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다. 게다가 천연 다이아몬드보다 저렴하다. 국내에서 주로 유통되는 중상 등급 1캐럿을 기준으로,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의 5분의 1 정도다.
지난 6월 열린 북미 최대 주얼리 박람회 ‘2022 JCK’의 화두 중 하나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였다. 패션 잡지는 ‘지금 주목받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브랜드 톱 10’을 발표한다. 판도라는 채굴 다이아몬드 생산을 중단했고, 드비어스는 랩그로운 에디션을 선보이는 라이트박스(Lightbox)를 4년째 운영 중이다.
사실 하이엔드 주얼리 브랜드는 천연이라는 ‘원조’ 편을 들어왔다. 다이아몬드의 희귀성이 상품 가치를 유지해줄 테니까. 이젠 시대 흐름을 읽고 앞자리를 선점하려 한다. 게다가 다이아몬드 주요 공급처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한 미국의 제재와 브랜드의 자체 거래 중단, 세계 최대 규모로 컬러 다이아몬드를 채굴해온 호주 아가일 폐광 등으로 천연 다이아몬드 생산은 더 불안정해졌다.
지난 6월 LVMH의 투자 회사 ‘LVMH 럭셔리 벤처스’는 이스라엘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업체 루식스(Lusix)에 9,000만 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루식스는 태양열까지 사용하면서 선그로운 다이아몬드(Sun Grown Diamonds)란 용어를 만들었다. LVMH 산하 브랜드 태그호이어가 지난 3월 제네바에서 열린 ‘Watches & Wonders’에서 루식스의 다이아몬드를 사용한 시계를 선보였다.
나는 생일을 맞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쇼핑하기로 했다. 웨딩 반지 대신 나에게 주는 선물? 국내 최초로 보석용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데 성공한 KDT 다이아몬드의 브랜드 ‘퍼스트 다이아몬드(First Diamond)’ 사이트를 방문했다. 내가 고른 제품은 옐로 골드에 0.5캐럿 라운드 다이아몬드를 프롱 세팅한 반지. 가격은 204만원. KDT 다이아몬드의 강성혁 실장은 이렇게 얘기한다. “저렴한 가격 덕분에 과감히 1캐럿을 선택하는 MZ세대도 많아요. 사실 다이아몬드가 워낙 고가이다 보니 라운드 모양 수요가 많습니다. 네모, 물방울 등 다양한 디자인에 과감하게 도전하지 못하죠. 앞으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통해 다양한 팬시 커팅과 다채로운 컬러를 즐길 수 있을 거예요.”
KDT 다이아몬드는 종로 본사에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직접 생산, 연마한다. 어떻게 빌딩에서 다이아몬드를 제조할까. 1세대 기법은 천연 다이아몬드가 지하에서 높은 열과 압력으로 만들어지듯이 고온고압(HTHP, High Temperature High Pressure)이다. 요즘엔 주로 화학기상증착법(CVD, Chemical Vapor Deposition)을 이용한다. 쉽게 말하면 기체에서 분리된 탄소가 씨앗(얇게 커팅한 다이아몬드)에 막을 층층이 형성한다. 이때 주입하는 메탄가스, 탄소 등의 재료와 양 같은 ‘레시피’는 업체마다 비밀이다. KDT 다이아몬드에서는 초창기에 씨앗을 천연 다이아몬드로 했으나 현재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사용한다. 1캐럿의 원석을 생산하기까지 400시간, 장인들의 연마를 거치면 약 한 달이 소요된다(동시에 30개를 키울 수 있다). “오랜 시도 끝에 성공했어요. 저희뿐 아니라 어느 업체도 ‘레시피’를 공개하지 않을 겁니다. 계속 연구해야죠. 무엇보다 다이아몬드는 키우는 것이 절반, 연마사의 역할이 절반입니다. 다이아몬드의 99%를 인도에서 연마하는데, 저희는 인도의 장인 세 명이 본사에서 직접 연마까지 해 완성작을 선보인다는 의미가 큽니다.”
다이아몬드만의 얘기가 아니다. 환경을 위한 주얼리는 거스를 수 없는 트렌드다. 에코,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브랜드가 내놓은, 깡통과 동전을 녹여 만든 반지, 낡은 실크 스카프를 엮은 목걸이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버려진PC, 휴대폰 등에서 금을 채집해 주얼리를 만들 수 있다. 연간 전 세계 e-폐기물은 5,000만 톤이다. 폐기물 1톤당 300g의 금을 얻을 수 있다! 바위 1톤을 파헤쳐서 나오는 금은 9g이다. 주얼리 브랜드 라일리(Lylie)의 설립자 엘리자 월터는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금의 미래는 땅속에 있지 않아요. 쓰레기 매립지에 있죠.” 라일리는 휴대폰, 랩톱, 그래픽 카드에서 채취, 가공한 금속으로 제품을 만든다. 웨딩 반지 한 개를 위해 보통 17.5개의 휴대폰이 필요하다. 영국 정부가 소유한 조폐국(The Royal Mint)도 올해 e-폐기물로 만든 주얼리 컬렉션을 처음 선보였고, 판도라는 일부 주얼리를 전자 폐기물로 만들 거라 발표했다. ‘No Waste’의 약자를 딴 네덜란드 브랜드 노와(NoWa)는 이미 2019년 휴대폰 재활용을 공언했다. 이는 폐기물의 화학물질로 인한 환경오염을 막고, 재활용을 도울 뿐 아니라 금 채굴이 일으키는 해악도 줄일 수 있다. 금 채굴은 토양을 파헤칠 뿐 아니라 금 추출에 필요한 수은과 청산가리 등이 식수를 오염시키고 주변을 사막화한다. 그곳 주민들은 쫓겨나고 생태계 파괴로 이어진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e-폐기물 주얼리, 모두 찬성이다. 하지만 뭐든 과잉생산은 또 다른 쓰레기 무덤일 뿐이다. (VK)
- 포토그래퍼
-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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