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발렌티노의 압도적인 전시
미래를 지향하는 패션은 필연적으로 그 과거와도 긴밀히 연결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브랜드가 발렌티노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엘파올로 피촐리는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그의 아틀리에가 일군 메종의 유산과 긴밀하게 교감한다. 그리고 그들이 탐구해온 압도적인 아카이브를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다.
10월 28일부터 도하 M7에서 열리는 <포에버 발렌티노(Forever Valentino)> 전시는 카타르 크리에이츠(Qatar Create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하우스의 특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자리다. 예술 감독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와 이번 전시를 통해 큐레이터로 데뷔한 언론인 겸 작가 알렉산더 퓨리(Alexander Fury)가 피촐리와 함께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이 드림 팀은 보편적인 전시 구성의 틀을 깨고 발렌티노가 뿌리내린 도시, ‘로마’라는 장소에 초점을 맞췄다. “저는 발렌티노가 이렇게 특별하고 독보적인 것은 로마의 꾸뛰르 하우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마는 제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 전시가 보여주는 로마는 엽서나 우리 고정관념의 로마가 아닌 실제 삶의 터전인 도시, 특히 메종 발렌티노의 고향인 로마다. 피촐리는 로마를 진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영국 시인 바이런은 로마를 ‘영혼의 도시’라고 일컬었는데 어쩌면 이것이 <포에버 발렌티노> 전시가 보여주는 로마에 대한 가장 간결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는 정서적이고 포용적인 디자인을 통해 발렌티노의 헤리티지를 탐구하는 피촐리와 닮았다.
이번 전시는 발렌티노 직원들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팔라초 미냐넬리 본사 광장에 있는 이고르 미토라이(Igor Mitoraj)의 조각상이 관람객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이 조각은 과거의 파편을 현대의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퓨리는 설명했다. 가라바니와 피촐리가 이어온 동시대 작품과 과거의 아카이브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관람객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할 수 있게 이끈다. 이 공간을 포함한 이번 전시는 오뜨 꾸뛰르와 레디 투 웨어 디자인을 모두 선보인다는 점에서 더 뜻깊다.
그다음으로 나오는 곳은 사방이 새하얀 아틀리에 공간이다. “꾸뛰르 아틀리에의 색은 화이트입니다. 바닥마저 하얗죠. 핀이 떨어질 때 찾을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저 상징적인 이유가 아니라, 지극히 단순하고 기능적인 이유입니다.” 피촐리는 설명했다. 이 전시실에서는 드레스 완성 과정을 통해 옷의 구조를 좀 더 자세하게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피촐리는 이 공간에서 고객과 메종, 옷 사이에 존재하는 개인적인 관계와 친밀함 역시 담아내고자 했다. 이는 2023년 봄 컬렉션에서도 엿볼 수 있다. “7월에 스페인 광장 계단에서 쇼를 선보였어요. 스페인 계단은 모두에게 거대한 유적지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커피를 마시러 가는 곳이라는 점에서 친근하죠.”
‘카프리초 로마노’ 전시실에서는 공간은 물론 전시 의상 모두 흑백의 팔레트로 완성했다. 영화에 경의를 표하며 디자인한 공간으로 더 은밀하고 친밀하게 다가온다. 천장에 매달린 하얀 드레스에는 동영상을 투사해 아틀리에를 벗어나 환상 속으로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 공간에서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이동하는 순간이 이 전시장에 꽤 많습니다. 이런 환상과 현실이 저에게는 꾸뛰르의 리듬과 같습니다.” 퓨리는 덧붙였다. “꾸뛰르 쇼는 환상이지만, 고객에게 입히는 순간 현실이 됩니다. 그런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디바 전시실에는 발렌티노 드레스를 입은 셀러브리티의 사진이 벽을 가득 채우고 그 주변으로 드레스가 전시되어 있다. 셀러브리티를 위해 디자인한 룩을 통해 여성과 여성의 사회적 역할의 변화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창작자로서 할 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연관된 아름다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름다움에 대한 저의 비전은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가진 것과는 다를 겁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기 때문이죠.” 1960년대에는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재클린 오나시스를 비롯한 유명인 고객을 아내나 연인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것이 급진적이었다고 피촐리는 설명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실루엣과 재단을 통해 새로운 여성을 표현하면서 당대 도발적인 면모를 보였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여성으로서 새로운 방식을 정의하고, 모든 사람의 고유함을 빛내는 아름다움을 정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의 관점은 서로 다르기도 하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뿌리와 상징은 비슷합니다.”
핑크 PP 컬러로 칠한 퍼레이드관은 더글러스 쿠플랜드(Douglas Coupland)의 워드 아트(Word Art)가 눈길을 끈다. 이 작품은 말 그대로 대화를 보여주는 문자로 이루어졌는데 이번 전시의 체계를 이루는 신조 중 하나인 동시에 전시를 통한 정체성 구축과 성찰을 담았다. 발렌티노 고유의 핑크 색조는 2022년 가을 컬렉션에서 처음 소개했다. 피촐리는 좀 더 새로운 것을 찾던 중, 핑크 PP 컬러가 개성을 표현하는 방식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람들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는지는 물론 핑크색 자체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지 생각했다.
그다음은 발렌티노의 보석 같은 걸작을 볼 수 있는 분더카머(Wunderkammer) 전시 공간이다. 일부 작품은 천장에 걸려 있는데, 이것은 편견을 없애는 또 다른 전시 방식이다. 그리고 창고를 본뜬 아카이브실은 관람객이 서랍을 열어가며 숨어 있는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체험형 공간이다. 피촐리는 발렌티노의 역사를 포용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전임자인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와 함께 했던 디자인, 그들의 전임자 알레산드라 파키네티의 디자인을 아우르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포에버 발렌티노>는 피촐리의 작업 과정을 어느 때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여준다. 지금껏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은밀한 런웨이 노트(Cahiers des Défilés)와 공개한 적 없는 꿈의 책, 사진, 드로잉을 디자인과 함께 전시했다. “이 작업에는 저 자신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을 보여주는 것이 다소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필터를 걷어내는 길’이라고 피촐리는 설명한다. 이 감상적이고 은밀한 전시실을 나서면 스페인 광장을 재현한 공간이 나온다. ‘로마의 대화(Roman Conversations)’라고 불리는 이 공간에서는 ‘르네상스’ 색조라고 부르는 드레스 60여 벌을 통해 색채의 힘을 탐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옷의 색채만이 아니다. 다양한 문화와 민족을 나타내기 위해 다섯 가지 피부색의 마네킹을 사용하기로 했다. “저는 이런 다양성을 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가 여전히 갖지 못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기 때문에, 다른 문화에 대한 평등과 존엄을 전하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해 중요했습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피엘파올로 피촐리는 1948년 세실 비튼이 발표한 찰스 제임스의 드레스를 입은 백인 모델 사진을 2019년 봄 꾸뛰르 컬렉션에서 유색인종 모델로 재현한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피촐리 특유의 포용적이고 감성적이며 ‘로마적’인 방식은 로마라는 도시와도, 메종 발렌티노와도 떼어놓을 수 없다. <포에버 발렌티노>전은 메종과 피촐리의 포용적 가치를 깊이 알아볼 수 있는 압도적인 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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