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 “행복하려고 뭘 하지 말자. 행복하려면 그저 행복해야 해요” #오로라 어워즈
<보그 코리아>와 불가리가 ‘오로라 어워즈’를 통해 새로운 세대의 여성 인재에게 지지와 응원을 담아 여명처럼 빛나는 트로피를 건넨다.
2016년 일본을 시작으로 중국으로 이어지며 지난 2월 이탈리아에서도 열린 ‘오로라 어워즈’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한 여성의 업적을 기리고 삶의 방식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문화, 예술, 스포츠, 비즈니스, 사회 공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발된 여성은 꿈을 좇은 스토리만으로도 다른 여성에게 빛나는 영감을 불어넣는다. 어워즈는 이에 그치지 않고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전달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다음 세대로 이어간다.
한국에서 처음 개최하는 ‘오로라 어워즈’는 7개 분야에서 빛을 발하는 새로운 세대의 여성 인재에게 황금빛 트로피를 수여한다. 배우 이유미, 뮤지션 비비(BIBI), 미술가 이은새, 공예가 김옥, 스키 선수 최사라, 뷰티 브랜드 ‘멜릭서(Melixir)’ 대표 이하나,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지구샵’ 대표 김아리다. 오로라 어워즈 수상자 7인에게서는 더 나은 내일, 더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나갈 힘이 느껴진다.
작사, 작곡은 물론 프로듀싱 그리고 영화, 토크쇼까지 경계 없이 활약하는 비비는 그만의 감성으로 동시대적 공감을 얻어낸 신인류다. 과감하고도 서정적인 스토리텔링, 완벽하게 새로움을 제시하는 스타일과 화법은 매력까지 재능으로 여기게 만든다.
‘가면무도회(Animal Farm)’ 뮤직비디오를 보고 예전 광고 카피가 생각났어요. 유쾌 상쾌 통쾌! ‘Thanks to’에도 언급했지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을 ‘비비화’했더군요.
타란티노의 엄청난 팬이에요. 처음엔 가면무도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유쾌하게 풀려 했는데, 감독님의 조언대로 ‘이왕이면 싹둑싹둑’ 해버리기로 했죠.
뮤직비디오가 파격적이라 호불호가 갈리는데요. 인스타에도 이렇게 썼더군요. “뮤비가 뭘 뜻하는지를 모르겠다고요? 잘 보셨습니다. 별 뜻 없습니다.”
으하하, 맞아요. 그저 만들었을 뿐입니다.
‘가면무도회’ 가사에 집중해서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어떤 사회에서도 희생자는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요.
가사를 정말 많이 수정했어요.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하려니 가사가 세졌거든요.
“죽어라 불러라 거짓말의 노래를 / 죽어라 따라춰 악마들의 춤사위 / 성대한 잔치의 중심 / 커다란 단두대 아래 / 굴러다니는 목은 누구의 것.” 가사 초입부터 강렬한데요.
진짜 예술의 가치는 예술 자체보다 그걸 접하는 사람에게 피어나는 영감인 것 같아요. 제가 뭐라 뭐라 뜻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곡을 듣고 일어나는 감정을 오롯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음… 한때 제가 하는 일이 다 정의롭다고 여겼어요. 저만 그런 거 아니죠? 모두 각자 기준에서 옳다고 여기는 행동을 하잖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우리가 볼 땐 옳은 행동이지만 항상 그로 인한 피해자가 있어요. 우린 좋은 쪽으로 발전하고 진화한다고 여기지만, 언제나 피해자는 발생하고 있어요. 유토피아는 오지 않을 거 같아요.
내 행동을 돌이켜보고 신중해지자?
돌이켜보자는 의미는 아니에요. 한때 저는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근데 좋은 사람이란 기준도 예전과 지금이 다르고, 정말 착한 사람은 피해 입고, 가해자인 저는 잘 먹고 잘 살고 있었어요. 저는 모순덩어리였죠. 이 비겁한 녀석. 제가 엄청 싫어졌어요. ‘이 모순을 같이 인정하고 생각해봅시다’란 말을 꺼내고 싶었어요. 오래 해온 생각이에요. 늘 생각이 많죠? ‘투 머치 싱커’입니다.
그게 창작의 재료겠죠. 비비의 노래를 들을 때 행복 말고도 시고, 쓰고, 짠 감정까지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쓰든 달든 인생의 갖은 감정을 아름답게 푸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아름다움의 기준은 정해져 있지 않고요. 누군가 아름답게 느낀다면 음악을 계속해도 되겠지 싶어요.
가사도 그렇고 SNS를 봐도 글을 잘 쓰더군요.
할머니가 시인이세요. 어릴 때 같이 시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놀았어요. 시란 무엇인지, 어떻게 쓰는지, 글이 말이 되게 하려면 어째야 하는지 가르쳐주셨죠.
위대한 선물이군요.
그렇죠. 할머니는 어릴 때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못하셨대요. 시대가 그랬으니까요. 그걸 제게 푸셨던 거 같아요.
비비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여성이겠군요.
맞아요. 할아버지는 아름다운 얼굴을 주셨고, 할머니는 시와 글 쓰는 법을 알려주셨죠. 요즘엔 시보다 제 영상을 더 많아 찾아보시지만요.
손녀가 방송에 나와서 옷도 과감하게 입고 말도 직설적인데, 반응이 어떠세요?
초기엔 “얘야, 옷 좀 제대로 입어라” 하셨는데 지금은 “고생이 많다” 하세요.(웃음)
‘가면무도회’가 담긴 정규 앨범 <Lowlife Princess ― Noir>가 11월에 나옵니다. 앨범명에 ‘누아르’가 붙었는데, 좀 더 엔터테인먼트적인 앨범인가요?
맞아요. 배우가 연기하면 보는 이도 당연히 연기로 받아들이잖아요. 근데 가수가 노래하면 ‘쟤는 정말 저런 애’라고 평가해요.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아서 제목에 ‘누아르’를 붙이고 제가 각본 쓰고 연기하는 것처럼 했어요. 구체적인 시대상과 스토리가 있어서 웹툰으로도 만들려고요. 불발될 수도 있지만요. 어쨌든 제 감정의 파편은 박혀 있어요.
앨범과 함께 비비의 캐릭터도 선보이려 하죠.
제가 캐릭터 초안도 그렸어요. 앞머리를 내려서 얼굴은 잘 안 보이지만 뒤에 비녀를 꽂고 있죠. 하트 모양 비녀에는 ‘사랑 애(愛)’ 자가 쓰여 있어요. 버려진 아기여서 얘, 쟤 불리다가 ‘애’가 됐는데, 그걸 자기가 사랑 ‘애’로 바꾼 거죠.
이번 앨범에 곡을 들려주는 것에서 더해 웹툰과 캐릭터 작업까지 함께 하려는 이유가 뭔가요?
프로듀서 더니드(The Need)가 준 곡들이 아주 좋았어요. 사람들에게 들려줬더니 대중성이 없대요. 내 귀에는 좋은데? 그럼 내가 대중성 있게 만들어야지! 직조장에서 천 짜내듯이 하나하나 스토리, 캐릭터 등을 만들었어요. 어디서든 보이게 해주마. 이런 마이너한 것도 사랑받게 하고 싶다. 사실 이것의 시작은 저예요. 저는 음지의 가수처럼 불렸어요. 어둡고 부적절하게 여겨지는 내 감정, 솔직함, 음악을 양지로 내보내고 싶었어요. 나는 이렇게밖에 못 만들지만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싶다면서요. 내 이야기를 그대로 하면 안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사람들이 사랑할 만한 캐릭터를 만들면 어떨까 했죠.
코첼라를 비롯해 크고 작은 무대에 설 때마다 화제예요. 특히 팬 서비스가 확실하더군요. 한 토크쇼에서 “무대에 올라가면 다시 태어난 것처럼 즐거워요”라고 했죠. 라이브가 두려워서 무대를 겁내던 시절도 있잖아요. 어떻게 극복했어요?
사람들 앞에서 까불고 노는 건 재밌었는데, 노래하는 건 부담스러웠어요. 무대에 올라가면 아드레날린이 너무 뿜어져서 기억이 안 날 정도인데 노래를 불러야 하잖아요. ‘삑사리’ 나면 어쩌지, 노래를 못하면 어쩌지 하면서 두려웠어요. 그래서 연습을 진짜 많이 했어요. 할수록 ‘제정신으로 노래하는 법’을 알겠더라고요.
요즘 러닝 머신 뛰면서 노래 연습한다죠?
숨이 껄떡껄떡 넘어갈 정도로 달리면서 노래해요. 그러면 무대에서 모래주머니 차다 벗고 노래하는 것 같아져요. 지난해 봄, 음악 방송 하러 다닐 때는 매일매일 달렸고, 요즘도 틈날 때마다 하려 해요.
노래 연습을 두고 “백 투 베이직,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말도 했죠.
사실 제가 가수라는 생각을 못했어요. 표현자, ‘Expresser’에 가깝다고 여겼어요.
싱어송라이터면서 뮤직비디오 기획, 연출에도 참여하고, 웹툰도 구상하니 직업란에 ‘표현가’도 어울리겠군요.
탤런트는 어떨까요. 안녕하세요, 탤런트 비비입니다. 지금 탤런트란 단어가 쓰이는 의미를 조금 바꿔보고도 싶어요. 다음엔 또 다른 단어로 저를 표현할 수도 있겠죠.
이젠 클럽에서 좀 불편하지 않아요? 내려놓고 놀기 힘들 거 같아요.
상관없어요. 무단 횡단을 하거나 쓰레기 버릴 때 누가 절 본다면 곤란하지만요.(웃음) 게다가 요즘엔 술도 잘 안 마시고요.
금주도 노래를 더 잘하려고 결심했나요?
술은 마실 땐 좋지만 다음 날 너무 우울해져요. 안 좋은 생각이 멈추지 않아요.
송중기 배우와 함께한 영화 <화란>의 촬영을 마쳤죠. 이전에 영화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에 출연했을 때 못 알아봤어요. 그만큼 잘했어요.
멋모르고 촬영했는데, 고마워요.
연기도 표현하는 거니까 재밌었나요?
네. 근데 촬영본을 보면 너무 못해서 큰일 났다 싶었어요. 이래서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노는 거구나.
연기를 계속하고 싶나요?
김형서(비비의 본명)란 백지에 새로운 걸 입혔다 벗겼다 하는 느낌이라 좋아요. 작품마다 캐릭터가 바뀌니까 숨통이 트여요. 같은 걸 반복하면 힘들거든요. 제가 끈기도 없고 참을성도 없어요. 맨날 작심삼일이에요. 3일마다 다시 결심하는 게 최선이에요.
새로운 거 하려면 두렵잖아요. 불확실하니까.
음…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니까 괜찮나 봐요. 여기서 연예인을 관둔다고 해도 괜찮아요. 제 인생을 그대로 살아갈 거 같아요. 나 잘리면 어떡하지? 실수한 거 들키면 어떡하지? 이렇게 계속 불안해할 수 없잖아요.
언제부터 이런 태도를 가졌나요?
중·고등학생 때도 그렇긴 했어요. 근데 데뷔하니까 무섭더라고요. 잘못을 들키면 어떡하지? 나 못하면 어쩌지? 이런 걱정이 극에까지 치달으면서 불안 장애, 번아웃 등이 왔어요. 이제는 괜찮아졌어요. 기왕 태어난 거 떳떳하게, 멋있게 살자. 안되면 다른 거 해도 돼! 쉽게 그만두겠다는 게 아니고 무엇이 닥치든 두려워하지 말자, 지금에 충실하자란 마음이에요. 이렇게 된 데는 명상의 도움이 컸어요.
명상을 시도해봤는데 집중이 힘들더군요.
5분 호흡 명상부터 시작했어요. 이걸 하면 머리부터 단전까지 씻은 듯 시원해져요. 전엔 가슴에 복숭아씨가 낀 것처럼 뻑뻑하고 아파서 울곤 했거든요. 미래와 과거에 사로잡혀서요.
현재를 살지 못했군요.
네. 근데 명상으로 복숭아씨가 사르르 녹아서 염증이 완화된 거 같아요.
열다섯 살 때 마이크를 사고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가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라고 한 적 있어요. 결핍이 채워지던가요? 그래도 또 다른 결핍이 생기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예술가였지만 예술을 하지 못하는 결핍이 있었죠. 저는 예술가가 되었지만, 예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결핍이 생겼죠. 창작의 고통이란 말을 하잖아요. 앨범마다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쏟아붓고 힘들게 만들었어요.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는데요. 제가 ‘선택한 괴로움’이었어요. 요즘엔 뭐랄까, 내 결핍을 너무 창작에만 의존했나 싶어요. 예를 들어 ‘인생은 나쁜X’란 곡을 두고 못된 연인 같다고 말한 적 있어요.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상대가 자꾸 시련을 줘요. 싸우다가 화해하고 다시 사랑하고. 이 과정에 중독되죠. 화해하고 사랑할 때가 사람들에게 내 작업물을 보여줬을 때의 기쁨이에요. 근데 그냥 살면 지루해지니까 다시 싸움을 걸고, 다시 화해하고 다시 싸우고. 이걸 반복하면서 살아 있음을 느끼죠. 그게 나와 음악의 관계 같았어요. 다음 앨범 작업은 다르게 해보려고요. 그때 <보그> 인터뷰를 다시 하면 후기를 들려드릴게요. “불가능했습니다”라고 할 수도 있어요.
우리는 흔히 행복한 인생을 바라잖아요. 왠지 비비는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늘 의문이었어요. 나는 왜 행복할 수 없지? 왜 늘 외롭고 화가 나 있을까. 이걸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릴 때는 외부에 절대적인 불행 요소가 있었어요. 근데 독립하고 내 삶을 알아서 사는데도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어느 날 깨달았어요. 행복하려고 뭘 하지 말아야 한다. 행복하려고 돈 벌어도 안 되고, 인기를 바라서도 안 돼. 인기를 얻고 돈을 벌어도 불행할 거야. 행복하려면 그저 행복해야 해. 저 행복한 거 좋아해요. 너무나. 그게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해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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