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 코리아>와 불가리가 ‘오로라 어워즈’를 통해 새로운 세대의 여성 인재에게 지지와 응원을 담아 여명처럼 빛나는 트로피를 건넨다.

2016년 일본을 시작으로 중국으로 이어지며 지난 2월 이탈리아에서도 열린 ‘오로라 어워즈’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한 여성의 업적을 기리고 삶의 방식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문화, 예술, 스포츠, 비즈니스, 사회 공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발된 여성은 꿈을 좇은 스토리만으로도 다른 여성에게 빛나는 영감을 불어넣는다. 어워즈는 이에 그치지 않고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전달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다음 세대로 이어간다.

한국에서 처음 개최하는 ‘오로라 어워즈’는 7개 분야에서 빛을 발하는 새로운 세대의 여성 인재에게 황금빛 트로피를 수여한다. 배우 이유미, 뮤지션 비비(BIBI), 미술가 이은새, 공예가 김옥, 스키 선수 최사라, 뷰티 브랜드 ‘멜릭서(Melixir)’ 대표 이하나,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지구샵’ 대표 김아리다. 오로라 어워즈 수상자 7인에게서는 더 나은 내일, 더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나갈 힘이 느껴진다.

김옥은 2000년 전부터 발전해온 우리 전통문화인 옻칠을 마감재가 아닌 표현재로서 예술에 적용한다. 장인으로부터 사사한 열정과 수천, 수만 번을 거쳐야 하는 과정을 거친 신비로운 결과물은 감동으로 찾아온다. 전통이 동시대에 유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개척자다.

로즈 골드에 말라카이트 장식, 다이아몬드 파베 세팅의 네크리스, 이어링, 링과 더블 로고 디테일의 ‘비제로원’ 브레이슬릿은 불가리(Bulgari), 벌룬 소매 드레스는 레지나 표(Rejina Pyo), 메리 제인 슈즈는 레이첼 콕스(Rachel Cox).

마을 어귀, 산사 입구에서 마주하는 돌탑은 길목을 오가는 이들의 염원을 담은 소망 탑이다. 김옥의 작업은 이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크고 작은 원기둥 형태로 구성된 오브제는 자연의 유형물이 그러하듯 사용자의 쓰임에 따라 의자가 되고 낮은 테이블이 된다. 흩어진 각각의 덩어리를 탑을 쌓듯 쌓아 올리면 그 자체로 멋스러운 조각품이다. 김옥은 이 신비로운 돌탑에 옻칠로 색을 입힌다. 신을 향한 구도의 마음과 시간의 더께를 입은 색의 덩어리는 오로라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작가는 사람들의 숱한 꿈과 희망이 쌓이고 세월의 빛이 스민 이 작업을 ‘머지 시리즈(Merge Series)’라고 명명했다. 여기엔 작가 본인의 소망도 포함된다.

작가로서 김옥의 시작은 늦은 편이다. 부산공예고등학교와 부산대학교에서 각각 도자와 목공예를 전공한 후 한동안 그는 공예와는 관계없는 일을 해왔다. 국내 패션 브랜드의 해외 영업직을 거쳐 영어 학원 강사로 일하던 그는 서른 살이 넘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아티스트로 살겠다고 다짐하고 나아가기까지 시간이 참 오래 걸렸어요. 덕분에 맷집이 좀 생겼죠. 돈이 없어도 별로 걱정이 안 되더라고요.(웃음)”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 아트 퍼니처 분야의 선구자 최병훈 교수의 지도 아래 작가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던 그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옻칠장 제1호 손대현 장인에게 옻칠을 사사했다. 왜 하필 옻칠이었을까? “방황하던 20대 시절의 저는 무엇 하나 지속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스스로에게 실망했다고 할까요? 이번에는 절대 중간에 포기하지 않겠다는 오기가 생겼어요. 오랫동안 쌓아갈 수 있는 나만의 것이 뭐가 있을까 찾다가 학부 때부터 관심을 갖던 옻칠을 떠올린 거예요.”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운영하는 ‘코우스’에서 손대현 장인에게 3년간 옻칠을 배우는 동안 그는 곤지암 작업실에서 숙식을 해결할 만큼 이 작업에 열과 성을 다했다.

유일하게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만 발견되는 옻칠은 습기와 불은 물론 부패로부터 물건을 보호해 한국에서는 약 2000년 전부터 옻칠 문화가 발전해왔다. 기능적 측면 때문에 주로 식기에 많이 사용해왔으나 그 형태나 표현 방식은 무궁하다. 건칠은 점토나 스티로폼 등으로 형틀을 만들어 삼베로 칠을 바른 후 탈환 작업을 거쳐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고, 나전칠기처럼 자개로도 표현이 가능하다. “재미있었어요. 옻칠을 마감재가 아닌 표현 재료로 보고 시도를 거듭했습니다. 유화나 아크릴 물감과 다른 특유의 반짝임과 색감, 채도를 지닌 우수한 물감이거든요. 옻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나만의 방식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 결과물은 추상회화에 가깝다. 파랑, 빨강, 노랑 같은 한 가지 색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만 가지 색과 질감을 덧입은 조각은 표면을 만져보면 놀랄 만큼 매끄럽고 은은한 빛을 발산한다. 사계절의 자연 풍경처럼 말이다. “2016년 졸업 전시를 앞두고 경남 양산의 통도사를 찾았을 때 돌탑과 우물을 보면서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오래된 우물, 그 아래 쌓인 낙엽, 물의 일렁임과 반짝임…” 그곳을 오간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담은 돌탑과 시간에 의해 색이 바래고 또 더해진 낙엽을 보며 작가는 그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여겼다. 이 오묘한 물의 반짝임과 빛의 번짐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한다.

작업 과정은 물론 수월하지 않다. 첫 난관은 옻독이다. 옻나무 진은 독성이 있어 제아무리 전문가라도 가려움을 이겨내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체력 소모도 엄청나다. 기울어진 형태의 금속 백골이 완성되면 사포로 표면을 손질한 후 흙과 생칠을 섞은 토회를 만들어 겉에 바른다. 그리고 말린다. 다시 사포질을 하고 토회를 바르고 건조 과정을 최소 서너 번 반복해 울퉁불퉁한 질감이 완성되면 다음은 색을 입힐 차례다. 수백 번의 칠을 더해 레이어를 쌓고 말리고 다시 벗겨내는 작업은 수백 번 거듭된다.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온 후에야 작업은 종료된다. 옻칠은 건조할 때 온도와 습도도 중요해 작업실에 별도의 옻칠장도 두고 있다. “습도가 높으면 채도가 낮아져요. 여름엔 그래서 계속 제습을 해줘야 하죠.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한순간도 안심할 수 없어요.” 여러 날에서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는 동안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작가의 행위는 구도자의 자세와 다름없다. “무의식이 하는 일이라는 게 있다고 하잖아요. 작업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몰라요. ‘내가 이걸 어떻게 했지?’ 싶을 때도 있어요(웃음).” 이 지난한 과정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건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료들과 작가의 작업을 믿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다. “오는 12월에 열리는 공예트렌드페어엔 저를 포함한 여성 작가 다섯 명이 팀을 만들어 전시해요. ‘크래프트우먼쉽(Craftwomanship)’이라고 장인 정신을 뜻하는 크래프트맨십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작업을 지속하는 여성 작가들이 많지 않다 보니 저희의 존재를 알리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옥의 작품은 2018 밀라노 가구 박람회는 물론 지난해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해당 전시에 참여하기까지의 과정도 꽤 극적이었다. 당시 디자인 마이애미의 디렉터 질리안 초이(Jillian Choi)로부터 직접 참여 제안을 받은 그는 문화 재단이나 여타의 지원 없이 혼자 힘으로 전시를 준비했다. 작은 용기와 우연한 인연이 만들어준 기회였다. “2018년 팔판동 갤러리 도스에서 전시를 열 무렵, 컨템퍼러리 디자인 플랫폼 세이하이투(Say Hi To)의 큐레이터 크리스틴 드 라 발리에르(Kristen de la Vallière)가 한국에서 강연을 한다고 SNS에 포스팅을 올렸더라고요. 재미있는 전시가 있으면 DM을 보내달라고 적혀 있길래 메시지를 보냈죠. 모르는 사이였어요. 그런데 정말로 제 전시 오프닝에 온 거예요. 그리고 초이와 함께 다시 전시장을 방문했어요. 그렇게 제 작품을 소개하게 된 거죠.” 코로나로 인해 마이애미 전시에 참여하지 못한 김옥은 바젤에서 다시 한번 제안을 받고 적극적으로 도전했다.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글로벌 패션 브랜드에서 바로 작품을 구매하는 등 성과는 컸다. 김옥의 주요 수집가 중에는 글로벌 에듀테크 기업을 이끄는 여성 리더도 있다. 빌 게이츠와 대담을 진행하기도 한 멋쟁이 할머니다. <AD> 매거진에 실린 김옥의 인터뷰를 보고 연락을 취해온 컬렉터는 매년 꾸준히 작품을 구입하며 작가에게 힘을 실어준다.

요즘 그는 디자인 마이애미/바젤 온라인 숍에서 소개할 벤치를 만들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 앉는 우물가의 큰 돌을 연상시키는 반원 형태 벤치는 이제까지 한 작업에 비해 스케일이 크다. “늘 하고 싶은 작업을 하면서 사는 삶을 꿈꿨는데 그 소망은 이뤘어요. 이제는 새로운 단계로 옮겨갈 차례죠.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아직은 저도 모르겠어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옻칠을 거듭하며 마음과 시간을 쌓는 일. 이를 통해 김옥이 만들어내는건 우리가 잊고 있던 어떤 ‘가치’다. 보통 사람들의 성실한 하루와 생활의 지혜, 희로애락이 깃든 것들의 총체를 문화나 전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거창한 무엇보다는 작은 염원의 탑, 소망의 형태, 삶의 빛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 김옥이 옻칠로 정성껏 쌓아 올린 탑은 긍정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OK(옥)’라는 김옥의 영어 이름처럼, 만사 오케이.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