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너머, 조기석이 창조한 환상 <Fantasy>
조기석은 단순히 ‘포토그래퍼’라는 직함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다. 자신이 원하는 비주얼을 위해 모든 시각적 방식을 동원하는 전방위 아티스트에 가깝다. 사진, 영상, 그래픽 디자인, 드로잉, 아트 디렉팅과 패션 브랜드 쿠시코크(Kusikohc)의 디렉터라는 그의 이력과 무엇보다 그의 작업물이 이 사실을 증명한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던 조기석은 스톡홀름에서 먼저 성공적인 전시를 마친 후, 드디어 서울에 환상과도 같은 사진을 펼쳐놓았다.
조기석의 사진에선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친숙한 대상을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초현실적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현재와 미래를 향한 작업물은 으레 두 가지로 나뉜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하지만 조기석의 작업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세계가 공존하면서 현실의 모든 경계를 넘나든다. 작가는 신체, 꽃, 나비, 기계와 같이 우리 주변에 있는 대상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한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피사체를 절묘하게 배치해 세상과 동떨어진 환상을 만들어낸다. 조기석이 창조한 환상은 인종, 국적, 자연과 인간, 생명과 금속 같은 모든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Fantasy’예요. 쿠시코크의 이전 컬렉션 제목도 ‘Fantasy To Live’였는데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메인 이미지를 정했어요. 그 이미지를 혼자 바라보던 중 문득 ‘환상’이란 키워드가 떠올랐죠. 말씀하신 대로 쿠시코크 컬렉션의 주제에도 환상이 들어 있어요. 컬렉션의 주제는 그때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뒀는데, 당시에도 환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거죠. 결국 지금이나 그때나 제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가 환상인 것 같아요.
오히려 국내 첫 전시라는 점에 놀랐어요. 지난해 스톡홀름 포토그라피스카(Fotografiska)에서 열린 <Coexistence(공존)>와 이번 전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스톡홀름 <Coexistence> 전시에 비해 이번에는 조금 규모가 작은 작업을 많이 준비했어요. 사진을 찍은 지 10년 정도 되니까 아카이브라 할 수 있는 작업이 많아졌죠. 앞으로 더 큰 전시를 국내에서 열 예정인데, 이번 <Fantasy>는 그 예고편이자 제 작업을 더 밀도 높게 볼 수 있는 공간이에요.
전시는 세 파트로 나뉘어 있어요. ‘Coexistence’, ‘Flower Study’, ‘Untitled’에 대해 각각 설명해주세요.
‘Coexistence’는 양면성이라는 주제로부터 시작된 작업이에요. 어릴 적에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는데, 그 후부터 사람들을 만날 때 긍정적이고 외향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했죠. 그렇게 외부 생활을 하다가 집에 들어가면 정반대로 말 한마디 없이 우울하게 지냈어요. 그런 양면적인 모습이 ‘무엇이 나일까’라는 고민을 하게 만들었죠.
그러다가 결국엔 그런 다양한 모습의 파편이 합쳐진 게 나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리고 우리 시대에 공존하지만 서로 어울리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이 합쳐질 때, ‘현시대의 어떤 아름다움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그 생각의 결과물이 ‘Coexistence’예요.
‘Flower Study’도 비슷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합치는 것에 중점을 뒀어요. 인간과 꽃을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가면서 여러 가지 메이크업과 몸의 형태 같은 다양한 것들을 공부하기 위해 시작한 작업이에요. 사진 작업 중 처음 시작한 시리즈이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작업물이기도 하고요.
‘Untitled’는 말 그대로 무제죠. 어떤 계획도 하지 않은 채, 평소 생각하는 키워드로 즉흥적으로 만들었어요. 그 당시 내가 하고 싶은 말,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을 담은 작업이에요.
작품에서 꽃, 벌과 나비, 신체와 기계가 자주 등장해요. 그중에 가장 애착이 강한 대상은 뭘까요?
꽃과 신체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의 표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가장 말하고 싶은 대상이기도 하죠.
얼마 전에 발표한 로우클래식의 필름 <Butterfly>의 디렉팅도 맡았어요. 영상 중간에 “나비가 나한테 수호신인가?”라는 대사가 나오죠. 자전적인 이야기였을까요?
그건 제가 아닌 배우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나온 대사예요. 최근에 영상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영화에 관심이 생겼어요.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는 아직 미숙하다고 느껴서 배우의 이야기를 듣고 시나리오처럼 활용하고 싶었죠. 배우에게 자기 자신을 찾아가던 과정의 이야기를 묻고, 그 대답을 제 방식대로 해석하고 풀어낸 것이 <Butterfly>예요.
그렇지만 제게도 나비는 중요한 존재예요. 어릴 적부터 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곤충이었으니까요. 또 나비는 동양화와 우리 주변에서 문양과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는 매개체이기도 하잖아요. 나비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가장 직접적인 곤충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언제나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매개체를 변형하고 이용하는 작업을 좋아하는데, 나비라는 소재도 꽃처럼 아름다움이라는 명사에 잘 맞는 소재라고 생각하죠.
지금과 같은 작업물을 내놓기까지, 다양한 브랜드, 매체와 진행한 경험이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요?
해외 매체와 작업하면서 다양한 주제를 풀어내곤 했죠. 평상시 생각하지 못한 접근법과 방식을 겪으면서 오히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더 정확히 알게 됐죠.
기억에 남는 건 2018년에 홍콩 스타일리스트 ‘퍼페투아 입(Perpetua Ip)’과 만들었던 개인 작업이에요. 처음으로 제 아이디어와 계획을 적극적으로 패션 화보에 풀어낼 수 있었죠. 진정한 ‘협업’의 의미를 알게 해준 작업이었어요. 제 생각을 패션에 접목할 수 있다는 것, 그 깨달음을 지금의 작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어요.
원하는 시안을 찾지 못해 본인이 직접 촬영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지금의 작업물이 그 시안과 가까워졌나요?
정확하게는 원하는 시안을 찾지 못한 것은 아니었어요. 아트 디렉터로 활동할 때는 다른 포토그래퍼와 작업을 하곤 했는데, 그런 시간이 쌓이다 보니 제가 정확히 말하고 싶은 것들을 만들기가 조금 어려웠죠. 결국 제가 원하는 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저잖아요. 그런 생각으로 직접 촬영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쿠시코크의 첫 컬렉션 사진이에요. 그렇게 사진을 찍어가면서 지금은 제 생각에 더 가깝게 표현할 수 있게 됐죠.
사진을 시작하던 그 시절과 지금의 목표가 달라졌나요?
그때나 지금이나 목표는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이 분야에 처음 관심을 갖고 멋지다고 생각하던 사람과 작업에 대한 동경을 바탕으로 생긴 초심, 환상과 신념을 잃지 않은 채 평생 하고 싶은 작업을 만들고 싶어요.
* 10 꼬르소 꼬모 서울에서 매해 10월에 열리는 ’10 on 10’을 기념한 조기석의 국내 첫 전시 <Fantasy>는 11월 20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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