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막내아들’이 송중기를 이용하는 법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아쉬움을 느낀다. 지금의 나를 결정하는 게 과거의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 그렇다. 웹툰과 웹소설에서 주목받는 장르인 ‘회귀물’은 바로 그 ‘아쉬움’을 ‘무기’로 역전시킨다. ‘이세계’에서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또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게임을 할 수 있는 ‘이세계’에 떨어진 남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1·2·3화를 보고 나면 이 드라마의 제작진은 ‘회귀’를 통해 다른 게임을 벌이려는 것처럼 보인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시작과 함께 순양그룹 미래자산관리팀장 윤현우의 오피스 라이프를 보여준다. 다른 직원보다 일찍 출근해 자기 계발에 힘쓰고, 매사 두세 수를 내다보는 치밀함을 갖추고 있지만, 그는 사실 그룹 오너 일가의 ‘머슴’이다. 아마도 제작진은 윤현우의 고통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송중기를 더 망가뜨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너 일가의 지시에는 어떤 질문도 갖지 않는 사람, 그들을 위해서는 머리가 깨지는 것도 참을 수 있는 사람, 그들을 위해서라면 화장실까지 고쳐줄 수 있는 사람. 송중기의 외모를 가진 남자가 변기에 매달려 끙끙대는 모습을 보는 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충성을 다하던 윤현우는 역시 오너 일가의 필요에 따라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1987년의 한 소년으로 회귀한다. 그는 순양그룹 선대 회장의 막냇손자 진도준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윤현우 자신이 1987년의 진도준으로 회귀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 전혀 다른 색깔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표면적으로는 윤현우가 자신을 죽인 순양그룹의 일가로부터 그룹을 빼앗아 복수하는 이야기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어린 진도준이 직접 진양철(이성민) 회장과 거래를 트는 순간부터 이 드라마는 한국의 현대사와 재벌의 성장사를 과감하게 그려낸다. DJ-YS 단일화 결렬과 노태우의 당선, 삼성 이병철 회장의 반도체 신화, 분당 개발 등등. 그 시절 ‘한보철강’에 해당하는 회사도 언급되고 있으니, 곧 진도준은 IMF 시대를 이용해 재산을 더 많이 불리게 될 것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이때 실제 현대사를 상기시키는 정도에서 나아가 대하 사극을 연출하는 태도로 순양그룹 일가를 조명한다. 진양철 회장을 연기하는 이성민을 비롯한 배우들의 존재감이 그만큼 크다. 송중기가 이 드라마의 판타지적 설정을 이해시킨다면, 순양그룹 일가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이야기 속 공간과 시대에 대한 사실감과 무게감을 더한다고 할까. 특히 진양철 회장이 “니 혹시 미래를 아는 거 아이가?”라고 물었을 때, 진도준이 “미래가 아니라 할아버지 마음을 알고 있었어요”라고 답하는 장면이 강렬했다. 이 드라마의 제작진은 한국 재벌의 실체적 욕망을 그려보자는 의도로 윤현우의 복수극을 가져온 게 아닐까 싶었을 정도다.
하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이 2화에서 보여준 무게감과 긴장감을 언제까지 지켜갈지는 알 수 없다. 3화에서 이미 불안한 조짐이 나왔다. 영화 <나홀로 집에>를 수입하거나 <타이타닉>에 투자해 돈을 번다는 게 2화에 비하면 너무 순진한 설정이라 ‘현타’가 와서 ‘짜게 식었다’고 할까. ‘회귀물’ 장르의 웹소설이 인기를 얻는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이 언제나 쉽게 승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장르의 웹소설을 완성도의 개념으로 평가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웹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TV 드라마로서 성공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더더욱 ‘현타’를 관리해야 할 것이다. 판타지 드라마지만 사실적으로. 주인공이 항상 이기는 이야기여도 맥 빠지지 않게. 그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가 <태양의 후예>와 <빈센조>를 통해 가장 판타지적 남성을 연기해온 송중기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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