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카포티가 폭로한 치명적인 스캔들, 시리즈로 탄생하다
감독 라이언 머피가 연출을 맡은 시리즈 <퓨드>. 첫 번째 시즌에서는 193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두 배우이자 오래 라이벌 구도를 이룬 베티 데이비스와 조안 크로포드의 불화를 다뤘다. 수잔 서랜든, 제시카 랭, 캐서린 제타 존스, 캐시 베이츠 등 스타들이 출연해 더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었다.
반가운 소식은 이번 후속작 <퓨드: 카포티 우먼(Feud: Capote’s Women)>에는 더 화려한 출연진이 나온다는 것. 첫 시즌이 그랬듯 이번 작품 역시 실화가 기반이다. 내용은 한 시대를 주름잡던 사교계 명사들의 스캔들을 적나라하게 담은 카포티의 소설 ‘라 코트 바스크 1965’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작품은 트루먼 카포티의 말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 미완성 유작 <응답받은 기도(Answered Prayers)>의 일부이기도 하다. 1980년대 할리우드의 전설부터 1990년대 잇 걸까지, 트루먼 카포티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화려한 인물과 캐스팅된 배우를 총망라했다.
베이브 페일리 역의 나오미 왓츠
가장 먼저 캐스팅된 배우는 바로 나오미 왓츠. 트루먼 카포티의 절친이자 전 <보그> 칼럼니스트 베이브 페일리로 분했다. 베이브는 CBS 설립자 윌리엄 S. 페일리와 결혼했지만 그의 불륜으로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을 했던 인물. 1975년 잡지 <에스콰이어>에 ‘라 코트 바스크 1965’가 실린 후 그녀는 카포티와 연락을 끊었다. 카포티가 베일에 가려진 남편의 불륜을 만천하에 드러냈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 폐암으로 투병 중이던 베이브는 1978년 세상을 떠났다. 트루먼 카포티는 장례식에 초대받지 못했다.
C. Z. 게스트 역의 클로에 세비니
영원한 뉴욕의 잇 걸, 클로에 세비니보다 이 인물을 멋지게 표현할 배우가 또 있을까? 배우이자 칼럼니스트였던 C. Z. 게스트는 앤디 워홀, 살바도르 달리 같은 전설적인 아티스트의 뮤즈이기도 했다. 독립적인 이미지가 강한 클로에처럼 C. Z. 게스트 역시 자발적인 아웃사이더였다. 그녀와 폴로 챔피언이었던 남편 윈스턴 게스트는 ‘라 코트 바스크 1965’가 공개된 후에도 여전히 트루먼 카포티와 가깝게 지낸 극소수의 사교계 명사였다.
리 라지윌 역의 칼리스타 플록하트
드라마 <앨리 맥빌>의 히로인 칼리스타 플록하트는 재키 케네디의 옷 잘 입는 여동생이자 폴란드 왕자와 결혼했지만 1975년에 이혼한 인물, 리 라지윌을 맡았다. 리는 ‘라 코트 바스크 1965’에서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처음부터 트루먼 카포티의 편에 선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후에 카포티의 알코올중독 때문에 사이가 멀어졌다.
슬림 키스 역의 다이안 레인
영화 <언페이스풀>의 호연으로 오스카상 후보에도 올랐던 베테랑 배우 다이안 레인은 슬림 키스로 변신한다. 슬림 키스는 더없이 우아한 자태로 여러 번 잡지 커버를 장식하기도 한, 시대를 풍미한 패션 아이콘이었다. 슬림은 남편이자 유명한 영화감독 하워드 혹스에게 세기의 배우로 꼽히는 로렌 바콜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녀가 할리우드 스타로 발돋움하는 데 일조한 결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카포티는 ‘라 코트 바스크 1965’에서 슬림을 결혼과 이혼을 수없이 반복한 인물로 표현했고, 그 후 둘은 절교했다.
조앤 카슨 역의 몰링 링월드
<조찬 클럽>, <핑크빛 연인> 등에서 사랑스러운 매력을 발산한 배우 몰링 링월드는 조앤 카슨을 연기한다. 조앤 카슨은 그 유명한 <투나잇 쇼>의 진행자, 자니 카슨의 전처였다. 카포티와 조앤은 1972년, 그녀가 두 번째 이혼을 한 후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조앤은 ‘라 코트 바스크 1965’ 발표 후 사교계에서 버림받은 카포티를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 머물게 했다. 1984년 카포티가 숨을 거둔 장소도 그곳이다.
앤 우드워드 역의 데미 무어
할리우드의 보물과도 같은 배우 데미 무어는 이번 시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자 사교계의 명사 앤 우드워드를 맡았다. 앤 우드워드는 하노버 은행의 상속자, 윌리엄 우드워드 주니어와의 결혼으로 한때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애초에 많은 이가 그 결혼에 반대했으며 심지어 두 사람은 각자 바람을 피운 전적도 있다. 1947년 윌리엄은 앤에게 이혼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고, 1955년 앤은 자택에서 윌리엄을 총으로 쏴 살해했다. 그녀는 윌리엄을 강도로 오해해서 생긴 실수라고 주장했다. 대법원도 이 사건을 돌발적인 과실로 판단했지만 그 후 앤은 사교계에서 추방됐다.
덧붙이자면 ‘라 코트 바스크 1965’가 만천하에 공개됐을 때 이미 앤의 존재감은 희미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카포티가 결혼으로 신분 상승을 하고, 권력을 가진 남편이 이혼하려 하자 한밤중에 총을 쏴 살해한 흙수저 출신의 동명 인물 앤을 작품 캐릭터로 등장시키면서 그녀는 다시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앤은 ‘라 코트 바스크 1965’가 발표되기 며칠 전 청산가리를 먹고 생을 마감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앤이 작품이 공개되기 전에 미리 원고를 읽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케리 오셔 역의 엘라 비티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배우, 아네트 베닝과 워렌 비티의 딸로 알려진 엘라 비티. 이제 막 줄리어드 스쿨을 졸업한 그녀가 카포티의 연인이었던 존 오셔의 딸, 케리 오셔 역으로 스크린에 데뷔한다. 케리 오셔가 열한 살이었을 때, 그녀의 아버지 존은 카포티의 비즈니스 매니저였다. 하지만 그 후 둘은 사랑에 빠졌고 존은 그와 함께하기 위해 가족을 버리기에 이른다. 게다가 가족에게 마땅히 해야 할 재정적 지원마저 거부했다. 앞길이 막막하던 그의 딸 케리는 카포티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고 카포티는 케리가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카포티는 케리의 이름이 다른 모델과 다를 것 없이 평범하다고 생각해 ‘케이트 해링턴’이라는 활동명을 따로 지어주었다. 이는 케리의 할머니 케이트와 어머니의 결혼 전 성인 해링턴을 합친 이름이다.
그 후 케리는 뉴욕에서 일하는 내내 카포티의 집에 머물렀고 카포티는 그런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 앤디 워홀이나 리처드 아베돈 같은 저명한 인물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케리 역시 카포티가 숨을 거둘 때까지 늘 가까이에서 자리를 지켰다. 후에 딸 이름을 트루먼이라고 지을 정도로 카포티와는 각별한 사이였다.
윌리엄 S. 페일리 역의 트리트 윌리엄스
드라마 <에버우드>로 큰 사랑을 받은 배우 트리트 윌리엄스는 앞서 말한 CBS의 설립자이자 베이브 페일리의 남편, 윌리엄 S. 페일리를 맡았다. ‘라 코트 바스크 1965’를 읽다 보면 윌리엄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인물이 등장한다. 뉴욕 주지사의 아내와 하룻밤을 보낸 뒤 이를 은폐하려는 시드니 딜런이 그 주인공이다. 윌리엄의 숱한 염문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해당 내용이 공개되고 나서는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였다. 가장 분노한 건 윌리엄의 아내 베이브였다. 그 분노의 대상은 애석하게도 남편이 아닌 카포티였다. 베이브는 카포티와 연을 끊었지만, 윌리엄은 그의 전화를 딱 한 번 받아준 적이 있다. 그는 폐암 투병 중인 베이브를 돌봐야 하기에 시간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트루먼 카포티 역의 톰 홀랜더
그렇다면 대망의 트루먼 카포티는 누가 맡았을까? <어바웃 타임>, <킹스맨>, <오만과 편견> 등에서 맛깔나는 연기를 보여준 배우 톰 홀랜더다. 소설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인 콜드 블러드>로 대성공을 거둔 후 뉴욕 사교계의 사랑을 듬뿍 받던 카포티가 한순간에 모두에게 버림받는 비극적인 모습을 담아낼 예정이다. 안타깝게도 트루먼 카포티는 59세의 나이에 정맥염으로 인한 합병증과 약물중독으로 사망했다. ‘라 코트 바스크 1965’가 발표된 지 채 10년도 안 됐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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