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기 위해 입는 옷 #그 옷과 헤어질 결심
나는 옷 벗는 걸 좋아한다. 겨울이 좋은 이유를 굳이 꼽아야 한다면 입을 옷이 많아서가 아니라 벗을 옷이 많아서다. 출근길을 준비하던 아침의 분주함이 무색하게 저녁에는 ‘아, 드디어!’라는 마음과 함께 아주 느릿한 속도로 한 겹 한 겹 벗어 던진다. 모든 과정엔 ‘괜히’라는 말이 붙는다. 아우터를 벗을 땐 괜히 집 한 바퀴를 쓰윽 돌며 화분들이 잘 있는지 둘러본다. 셔츠를 입은 날엔 책장 앞에 서서 단추를 풀며 무작위로 꽂힌 책 제목을 괜히 속으로 읊어본다. 바지를 벗을 땐 소파에 기대앉아 괜히 TV 채널을 돌리며 지퍼를 내린다. 괜히 귤도 까본다.
옷 벗기를 가장 고대하는 순간은 스타킹을 신은 날이다. 부드럽지만 매끈하진 않은 그 이질적인 감촉은 15년 가까이 신어왔음에도 매번 적응이 안 된다. 너무 추운 날에는 직조된 가닥 사이로 바람이 숭숭 들어와 어째 안 신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불편한 만큼 옷 벗기의 쾌감은 배가된다. 우선 침대에 걸터앉아 스타킹을 돌돌 말아 던진다. 짱짱한 밴드의 자국이 배와 허리에 선명히 남아 있다. 이때 차가운 손으로 배를 한번 꼭 긁어준다(=천국). 유연하지만 단단하게 말린 스타킹을 다시 곱게 풀어 팬티 바람으로 세면대 앞으로 간다. 그러고는 샴푸를 조금 짜서 조물조물 빨기 시작한다. 이 단계에서 내가 반드시 하는 게 있는데, 세면대 앞에 선 채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다른 쪽 종아리를 슬쩍 비벼보는 거다. 그때 느껴지는 그 맨질함이란! 물론 한겨울에는 이 짓거리를 건너뛴다. 겨울엔 제모를 하지 않으니까.
혼자서 옷을 천천히 벗는 것보다 둘이서 급하게 벗는 걸 더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겨울에도 제모를 참 열심히 하던 시절이었다). 이번에 버릴 드레스는 그 시절, 그러니까 스무 살에서 스물한 살로 넘어가는 겨울에 샀던 옷이다. 소재는 니트, 컬러는 짙은 녹색이었다. 양 옆구리에는 타원형의 컷아웃 디테일이 있고 오른쪽 허벅지 부분에는 슬릿이 길게 난 맥시 드레스였다. 몸통은 어찌나 꽉 조이는지 마른 편임에도 일단 입으면 배에 늘 힘을 주고 있어야 했다. 무난한 블랙도 아니고 굳이 녹색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 영화 <어톤먼트> 속 키라 나이틀리의 녹색 드레스에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이걸 왜 한겨울에도 입었냐 하면 남자 꼬이려고 그랬다.
그런 빛깔의 옷을 입으면 나도 제임스 맥어보이 같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운 좋게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다가 맞이한 내 스무 살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별로였고 지루했다. 감각의 자극은 게으르고 미성숙한 스무 살이 권태를 해소하는 가장 쉬운 선택이었고, 그중 가장 빠른 효과를 볼 수 있었던 ‘활동’이 남자 만나기였던 것이다. 지금은 이런 날씨에 네 겹 이상 껴입지 않으면 절대 외출하지 않는 종교에 가까운 철칙을 갖고 있지만, 그때는 드레스 한 벌에 코트만 입고도 잘만 쏘다녔다. 밤마다 이 옷을 입으며 ‘제발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하며 나갔던 시절이다. 그렇다, 슬프게도 이 옷은 햇빛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오직 ‘최대한 많은 남자를 만나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적으로 놀러 다니기 시작했고 이 드레스는 승률 100%를 자랑하는 효자템이었다. 잘 어울리고 말고를 떠나서 몸매가 훤히 비치는 소재에 노출까지 있으니(그땐 노출이 있어야 야한 건 줄 알았다), 이 옷차림에 몇 가지 제스처만 더하면 정말 쉽게 내가 원하는 결론으로 치달을 수 있었다. 불투명한 스타킹과도 찰떡이었다. 떠올려보면 가관도 그런 가관이 아닐 수가 없다. 하이틴 영화 속 프롬 파티에서나 볼 법한 그 조악한 드레스를 입고, 어설픈 화장을 한 채 기껏 간 곳이 동네 클럽이나 바라고 부를 수도 없는 술집이라니(그래도 헌팅 포차는 안 갔다). 이런 꼴을 한 채, 말도 안 되는 내 플러팅을 받아준 이들도 참 웃기는 사람들이다. 한겨울에 옆구리와 허벅지를 드러낸 여자애를 마주한다면 일단 무섭다는 생각부터 들 것 같은데, 그때 그 남자들의 성의 없는 안목에도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
재미있는 기억은 많지만 늘어놓고픈 추억은 별로 없다. 내가 나를 그리 아끼지 못했듯 이 옷도 그리 아껴주진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여러 의미로 최대한 빨리 벗을 수 있는 옷이라서 자주 입었던 것뿐. 바로 떠오르는 기억이라면, 모르는 남자가 등 뒤에서 토를 ‘발사’해서 뒷부분에 토가 튀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왜 자꾸 이상한 냄새가 나지?’ 중얼대며 동네방네 돌아다녔던 것, 빨리 벗겠다고 스타킹이랑 같이 잡아당기다가 옆구리에 난 타원형 구멍이 눈에 띄게 커졌던 것, 술이 덜 깬 채 눈도 안 뜨고 옷을 입다가 그 구멍에 머리를 욱여넣어서 구멍이 더 커졌던 것 같은 순간 정도다.
수선과 드라이클리닝 값이 옷값을 넘어섰을 때쯤 또 꼬이고 싶은 남자가 나타났다. 난 게으른 스물한 살이니까 그와 세 번째 만남에 또 뻔하게 그 옷을 입고 나갔다. 그날은 웬일로 아침까지 옷을 벗을 일이 생기지 않았다. 얘기가 안 끊겼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술 먹고 노가리 까는 게 훨씬 자극적이었다. 대놓고 시그널을 보내도 별 반응이 없길래 심지어 감동까지 했다. ‘날 이렇게 대하는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 같은 건 아니었고 굳이 따지자면 올리비아 핫세류에 가깝다. 첫 번째 남편인 딘 폴 마틴과 결혼 후 토크쇼에 출연한 그녀는 왜 이 남자를 선택했냐는 질문에 자기 눈동자 색깔을 맞힌 유일한 사람이어서라고 대답했다. 다른 남자들은 모두 그녀의 가슴을 쳐다보기 바빴기 때문에 눈동자 색깔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아, 나와 자려는 남자가 아니라 나와 대화하려는 남자라니. 너무 짜릿해, 새로워! 그날은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었고, 그 후로 우리는 몇 번의 만남을 더 가진 뒤 연애를 시작했다. 이 옷에 얽힌 좋은 추억은 이뿐이다. 그 뒤로는 한 번도 안 입었다. 급하게 옷을 벗는 것보다 천천히 옷을 벗는 걸 더 즐기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버릴 옷을 정리하며 이 옷을 발견했을 때, 나는 길에서 오랜만에 (안부는 묻지만 연락처는 절대 묻지 않는) 동창을 마주쳤을 때와 비슷한 정도의 반가움이 일었다. 애인에게 기억나냐며 옷걸이를 흔들어 보였다. 애인은 무심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한참을 추억에 젖어 그날의 기억을 늘어놓자 애인이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건데, 너 그 옷 진짜 안 어울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날 나는 엄마 옷을 빌려 입고 나온 애 같았으며 화장은 또 왜 그렇게 한 건지, 이미 술에 취한 게 분명한데 갖은 치명적인 척은 다 해서 정말 짜증 났고 꼴불견이었다고 했다. 정신 나간 애인 줄 알고 집에 돌아와 만날지 안 만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했다. 나는 또다시 감동했다. 이번에도 역시 올리비아 핫세류였다. 아아, 그는 구멍이 숭숭 나 속살이 훤히 비치는 내 옷을 보지 않고 내 정신 나간 모습을 봐준 유일한 남자였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더욱 일말의 미련 없이 그 옷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버리기 전에 괜히 한번 입어보긴 했다.
#그 옷과 헤어질 결심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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