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와 김경욱의 원칙
남이 하지 않은 것 중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 코미디언 김경욱이 지켜온 원칙이다.
다나카. 코미디언 김경욱이 창작한 이 부캐가 유튜브를 넘어 예능 프로그램까지 뜨겁다. 다나카는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 유흥업계 종사자로서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을 보고 무서워하고, 꽃을 ‘꼬츠’로 발음하는 왜색 짙은 인물이다. 그가 착용한 진품으로 보이지 않은 루이 비통 벨트, 조르지오 아르마니 티셔츠까지 세기말 가부키초 거리에서 본 것 같다. 다나카 캐릭터를 시작한 4년 전부터 이 의상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유튜브 채널 ‘나몰라패밀리 핫쇼’에는 2018년 다나카가 한국 관광 컨셉으로 촬영한 ‘멋’이라는 뮤직비디오가 올라와 있다. 그리고 2022년 ‘하늘이시여, 이렇게 재미있는데 왜 알아주지 않으십니까?’ 원망할 때쯤 반응이 왔다. 왜 지금일까? 김경욱도 시기에 대해서는 답을 찾는 중이지만 확신은 있었다. “다나카라는 친구에게 믿음이 있었습니다.” 김경욱은 부캐를 만드는 다른 개그맨처럼, 다나카를 자신과 별개의 인물로 이야기한다. “다나카는 사전 정보가 있어야 웃을 수 있는 캐릭터잖아요. 만인에게 사랑받진 않아도 소수는 ‘찐팬’으로 남을 거라 생각했어요. 열 명 중 한 명이라도 포복절도하면 충분히 행복하거든요. 그 팬은 제가 하는 것들을 지켜봐줄 거잖아요. 무엇보다 저는 다나카를 무척 좋아합니다. ‘멋’ 영상을 만들면서도 아주 재밌었어요.” 코미디언의 부캐를 보면 관찰력에 놀라곤 하는데, 다나카 역시 말투부터 걸음걸이, 손짓 하나까지 ‘다나카스러워서’ 종종 진짜 일본인으로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노트에 관찰 일기를 쓰는 스타일은 아니고,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습득한 거예요. 어느 날 일본을 걷다 다나카처럼 생긴 인물을 발견했어요. ‘좀 놀리고 싶다’로 출발했고 자연스럽게 다나카라는 캐릭터의 이미지와 습성을 하나씩 만들어갔죠. 이걸 내뱉으면 안 될 만큼 쌓였을 때 다나카가 나온 거죠. 일본어 역시 제가 일본 코미디언을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익힌 상태였고요. 재차 말하지만 다나카를 무척 좋아했어요.” 이것이 김경욱의 코미디 원칙이다. “남들이 안 하는 것 중에서 내가 좋은 것을 하자! 제가 좋아하는 걸 했기에 다나카를 몰라주던 시절도 그리 슬프지 않았어요.” 김경욱은 지금 주목을 받아서 다행으로 여겼다. “나이 마흔에 잘돼서 다행이에요. 오랫동안 내공도 쌓였고, 인생 경험을 통해 혼자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아 고마워할 줄도 알죠. 타인과의 대화, 조언, 인연이 쌓여서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어요. 어릴 때 너무 잘됐으면 자만심에 빠져서 주체가 안 되고, 또 지금보다 너무 늦게 관심을 받았다면 지쳤을 수도 있죠. 20년 차, 좋은 타이밍에 주목받은 것 같아요.”
다나카는 지난여름 200석 규모의 극장에서 팬 미팅을 이틀간 치렀고, 1월 28일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라이브 인 서울 다나카 콘서트(Live in Seoul Tanaka Concert)’를 연다. 최신곡 ‘와스레나이’를 비롯한 노래와 게스트 공연을 함께 할 예정이다. “아마 이 기사가 나갈 즈음엔 매진이 예상됩니다.(웃음)” 그는 나몰라패밀리 시절부터 80여 곡을 발표하며 코미디와 음악을 접목시켜왔다. 크루가 보낸 비트에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정도라고 했지만 작곡, 작사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노래를 내는 이유는 하나예요. 코미디 공연을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죠. 코미디는 언어의 장벽을 느낄 수 있는 분야인데 노래는 그것을 조금 뛰어넘더라고요. 글로벌한 관심도 받고 싶거든요. 시간이 걸려도 괜찮아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그가 롤모델 중 한 명으로 꼽는 이는 ‘펜-파인애플-애플-펜(PPAP)’이라는 중독성 있는 노래로 빌보드에도 오른 일본 코미디언이자 가수 고사카 다이마오의 부캐 피코타로다. 김경욱은 그의 끈기를 닮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조사를 해요. 그가 50세가 넘어서야 주목받았더라고요. 그간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대중은 ‘PPAP’ 하나로 갑자기 잘된 줄 알지만 정말 꾸준히 작업해왔어요. 그런 것들이 쌓여서 ‘PPAP’가 잘된 거죠. 반응이 없다고 포기할 게 아니라 그분처럼 계속 좋아하는 걸 하다 보면 잘된다고 생각해요. 요즘 세계는 하나의 망으로 연결돼 있잖아요. 김경욱이란 코미디언도 노래든 콘텐츠든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다 보면 더 많은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게 되겠죠.”
김경욱은 2001년, 19세에 SBS 개그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데뷔했다. 약 5년 뒤 개그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김태환, 고장환과 함께 나몰라패밀리 코너를 진행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컬투패밀리처럼 코미디와 음악 활동을 함께 했는데, 2006년 첫 싱글을 냈고 빅뱅, 이효리 등과 1위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나몰라패밀리를 하기 전에도 누군가 보면 무명이었지만, 저를 갈고닦는 시기라고 여겼어요. 나몰라패밀리가 잘되면서 바빠졌죠. 당시는 코미디 코너가 잘되면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도 인기를 얻었어요. 지금은 유튜브, OTT 등 많은 콘텐츠가 쏟아지니까 생명력이 매우 짧아졌죠. 그걸 알기 때문에 늘 준비해왔어요. 인기는 오르면 내려가기 마련이니까, 바닥에 그냥 내리꽂히기보다는 천천히 낙하산 타고 내려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죠.” 그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 방송 출연이 줄었어도 힘들어하기보다 대학로에서 <핫쇼>라는 코미디 공연을 이어갔다. “20대에 충분히 얻을 거 얻었다 싶었어요. 30대에 대학로 공연을 시작해서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7~8년 정도 했어요. 컬투 형들처럼 많은 사람 앞에서 코미디뿐 아니라 노래와 쇼를 선보였죠. 부귀영화를 누리진 못해도 즐거웠어요. 이렇게 오십 살까지 공연만 하고 살아도 되겠다 싶었죠. 공연장에서 우리 땀 냄새와 숨소리를 느낀 관객의 애정은 정말 진해요. 그래서 유튜브 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우리는 무조건 공연이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고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죠. 그 유튜브도 우리가 좋아하는 걸 하자가 중심이었어요.”
현재 김경욱은 ‘나몰라패밀리 핫쇼’ 채널에서 네 개의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다. 다나카를 비롯해, 1호선에서 물건을 파는 53세 김홍남, 일론 머스크 영상에 전라도 사투리를 더빙한 ‘나 일론 머스크’, 최근 다나카의 콘서트 의상을 스타일링하기도 한 디자이너 김건욱이다. 초대받지 않은 서울 컬렉션을 찾아가 DDP 앞에서 삼각김밥을 먹는 짠한 디자이너 김건욱은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무릎을 치는 웃음 포인트가 있다. 주머니는 가난하지만 꿈과 자부심이 가득한 이 청년의 기백이 밀라노 컬렉션까지 이어지길 응원하게 된다. 디자이너 김건욱도 코미디언 김경욱의 패션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나왔다. 그의 사복 패션은 인스타그램만 봐도 다양하다. <보그> 촬영일엔 최근 구입했다는 고프코어 룩으로 나타났다. “디자이너 김건욱도 다나카처럼 사전 배경이 있으면 더 와닿을 수 있죠. 덕분에 패션계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많이 와요. 그들을 만나서 ‘이런 패션 세계도 있구나’ 많이 배우고 그걸 콘텐츠에 접목할 수 있어서 좋아요. 실제 김건욱 디자이너가 쓰는 모자를 론칭하는 등 여러 재미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어요. 디자이너 김건욱이 안쓰럽다면서 브랜드를 론칭하면 적극 돕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요.(웃음)”
김경욱은 지금 가장 뜨거운 메타코미디에 들어갔다. 메타코미디에는 피식대학, 숏박스, 엄지렐라, 김해준 등 지금 MZ세대의 지지를 받는 코미디언이자 크리에이터가 소속돼 있다. “메타코미디에 열다섯 살 차이 나는 후배도 있어요. 그들에게 원로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요. 후배들이 볼 때 부끄럽지 않은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요. ‘와, 이 선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대단하네?’ 이런 코미디를 하고 싶어요. 후배들에게 제 콘텐츠가 고루하게 느껴지면 솔직하게 피드백해달라고 하죠. 물론 제 개그에 대한 근본은 어딜 가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앞서 말했지만 남들이 안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 그것이 젊은 세대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것일 수 있다! 앞으로 코미디를 바탕으로 음악, 영화, 광고 등 여러 분야에서 창작 활동도 하고 싶어요. 코미디언이자 창작자로서요.” 그렇다면 인간 김경욱의 목표는?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치면 귀찮아지잖아요. 다나카로 반응이 오니 약간 게을러지더라고요. 그 전엔 잃을 게 없어서 도전을 많이 했는데, 관심을 조금 받는다고 새로운 걸 안 하고 같은 문법을 반복할까 봐 걱정돼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에 새로운 것을 계속 던지고 싶어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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