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님과 불로 그린 회화,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친절한 도슨트
산문 같은 전시가 있는가 하면 시 같은 전시도 있습니다. 태국 출신의 젊은 현대미술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의 강렬한 시어를 읽다 보면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데님을 주된 소재로 활용한 그의 ‘역사 회화’는 단순한 추상화가 아닙니다. 표백한 데님을 불에 태우고 흡사 신(神)이 인간계를 내려다보는 듯한 시점으로 그 과정을 촬영한 후, 그 이미지와 타고 남은 데님의 파편을 표면에 배치해 회화의 터치를 더하는 방식으로 완성합니다. 데님이 불타는 순간과 불타고 남은 흔적, 회화 작업의 끝과 촬영을 통해 기록이 시작되는 시점 등 다양한 층위의 시간대가 작품에 응축된 거죠. 영상 퍼포먼스, 설치, 회화 등 다채로운 매체를 넘나들며 기억과 서사, 삶과 죽음 등 본질적인 물음을 제시해온 작가는 특히 필연적인 파괴 과정을 거쳐 생성되는 작업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아냅니다.
10여 년 전부터 작가에게 데님은 서구의 글로벌화와 자신의 관계성을 잘 보여주는 재료였습니다. ‘역사 회화’라는 제목 역시 데님이라는 소재의 역사성에서 기인합니다. “작가들끼리 이야기하곤 합니다. 캔버스에 회화를 그리는 건 그 자체로 우리를 서구 역사에 편입시키는 행위라고요. 그래서 그런 저에게 캔버스가 아닌 데님을 활용해 회화를 그리는 방식은 저 자신과 서구권·비서구권의 관계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재료와 방식이라 생각했습니다.” 현재 뉴욕과 방콕을 오가며 작업 중인 작가에게 정체성이란 어쩌면 가장 근원적인 문제였을 겁니다. 더욱이 우리 몸에, 일상에 직접 맞닿은 소재인 데님을 표백하면, 흙과 같은 특이한 텍스처가 변모한다는 사실, 가장 가까운 피부의 물성에서 가장 멀어진 흙의 물성으로 변이하는 데님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상징이죠.
데님이 서구화와 문화적 헤게모니를 일컫는 물질이라면, 작가에게 불과 재는 보다 존재론적 요소입니다. 불은 세계를 이루는 태초 혹은 근간을 상징하죠. 간담회에서 그가 언급한 대로, 불은 인간 역사에서 신성한 의미부터 세속적 의미까지, 변혁과 파괴, 소멸과 탄생 등 모든 순간을 공유해왔습니다. 재로 귀결되는 과정은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혁명을 연상시킨다는 면에서 정치적 잠재성을 가지며,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 작업의 테마와도 같은 불을 사용해 회화 작업을 하면서, 저는 불이 과정으로서도, 주제로서도 작품 자체보다 중요합니다. 이 두 가지가 분리될 수 없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 회화의 입체성은 단순한 콜라주의 방식이 아니라, 과정과 주제가 한 몸이 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나 다름없습니다.
무엇인가 불타고 난 자리에는 반드시 재가 남기 마련이죠. 작가는 회화 아래에 재를 형상화한 바닥을 구현했습니다. 풀풀 날리는 재가 아니라 세월을 거쳐, 시간을 초월해 급기야 땅처럼 굳어져버린 물성의 재입니다. 갈라진 땅을 밟고 서 있다 보면 죽음과 소멸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역사는 한 번도 그 상태에 머문 적이 없지요. 작가는 재로 뒤덮인 땅의 가장자리에 자신의 기도문을 새겨둠으로써 재탄생과 재창조의 희망을 시사합니다. 작가가 가장자리의 땅에 숨겨둔 기도문은 (그의 영상 작업에서 그렇듯) 역사와 현재에 대한 생각이 얽힌 이번 전시의 자막 혹은 내레이션이 되어줍니다.
“태초에 발견이 있었다. / 잠을 방해하는 새로운 악몽 / 혼란에 질서를 부여할 필요 / 우리는 외면당한 기도를 통해 이 세상을 만들어나간다. / 격변 너머에 광휘 있고 / 통합에 대한 향수 / 애도의 땅에서 / 공기에, 잡을 수 없는 것에, 당신을 맡긴다. / 유령은 갖지 못한다, 아무것도.”
세상의 모든 이미지는 작가의 영혼이 깃들어야만 상징으로 남고, 작가의 상징은 세상과 나누어야 기도문이 되어 울려 퍼질 수 있습니다. 전시장에서 공명하는 위의 기도문은 작가가 예술에 대해 느끼는 바를 의미하는 동시에 “현재 그리고 공동의 이야기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감각과 시간의 개념이 녹아든 문장이라 하더군요. 무엇보다 이 영민한 작가는 자신의 기도가 “지켜지지 않는 약속 혹은 지켜지더라도 완벽하게 지켜지지 못할 약속”일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미지와 상징, 기도는 그렇게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고 기대며 존재하기에,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는 앞으로도 신성과 세속 사이에서 서성거리며 미술가로서 작업을 계속해나갈 겁니다. 그러므로 거대한 설치 작업과도 같은 이번 전시의 제목 ‘이미지, 상징, 기도’는 작가에게는 미술을 하는 이유가, 우리에게는 미술을 보는 이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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