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지는 럭셔리 패션을 어떻게 해석할까
패션의 미래인 Z세대는 럭셔리 패션을 어떻게 해석하며 수용할까.
답을 얻기 위해 까르띠에 인터내셔널 CEO와 북미 지사장이 <보그>와 대화를 나눴다.
프랑스의 럭셔리 비즈니스는 유서 깊은 역사를 지녔으나 MZ세대 고객층으로 인해 본질적 위기를 겪고 있다. 특히 시계와 주얼리를 아우르는 하드 럭셔리는 어떤 면에서 사치와 부를 상징하는 만큼 젊은 고객이 중시하는 지속 가능하며 윤리적인 기업 가치를 구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럭셔리 하우스는 빈부 격차, 블러드 다이아몬드 또는 인종차별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를 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까르띠에는 이런 사안을 정중하면서도 정면으로 마주한다. 미래의 고객과 패션 인재들, 럭셔리 비즈니스의 미래를 토론하기 위해 까르띠에 인터내셔널 CEO 시릴 비네론(Cyrille Vigneron)과 북미 지사장 메르세데스 아브라모(Mercedes Abramo)가 워싱턴의 조지타운 대학을 찾았다. 이곳에서 2021년 조지타운 대학과 까르띠에가 공동 진행한 대회 ‘Georgetown×Cartier Challenge’의 우승자로 <보그 코리아> 인턴 에디터로 일한 이주영과 대화를 나눴다. ‘럭셔리의 재해석(Luxury Reimagined)’이라는 이름의 이 대화는 럭셔리 패션 산업의 핵심 인물들을 캠퍼스로 초대해 학생들을 위한 이벤트를 기획하는 조지타운의 리테일 & 럭셔리 동아리(Georgetown Retail & Luxury Association)와 공동 진행했다.
VOGUE KOREA 이 자리에 도달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MERCEDES ABRAMO 럭셔리와 리테일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로드 앤 테일러 백화점 브랜드 경영진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호텔 경영 쪽으로 취직해 럭셔리 호텔 업계에서 8년쯤 일하며 남편을 만났고 그의 직장을 위해 프랑스로 옮겼죠. 프랑스에서 MBA를 마치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 럭셔리 업계를 선택했고 다른 브랜드에서 일할 때 까르띠에로부터 뉴욕 5번가 플래그십 매장 총괄을 의뢰받아 현재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VOGUE KOREA 일본 지사장으로 일한 아시아 시장 전문가로 유명한데, 그곳에서의 경험과 다시 유럽으로 돌아간 과정이 궁금합니다. CYRILLE VIGNERON 일본을 방문하는 건 외국인에게 늘 큰 충격입니다. 프랑스에서 지낼 때 일본인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언젠가 깜짝 이벤트로 일본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환경오염이 너무 심했고, 프랑스 에티켓과 일본식 예의범절이 너무 달라 당황했죠. 말 그대로 문화 충격이었어요. 오염 때문에 스모그도 많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경찰의 통제 아래 움직여야 했어요. 유럽으로 돌아온 후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예정이었죠.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일하다 럭셔리 시장에 진입하게 됐어요. 당시 상사가 나에게 선택의 기회를 줬고 내가 주얼리에 관심을 보이자 일본으로 가야 한다고 그러더군요. 문화 차이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었지만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일본은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였고, 그 나라에서 37세에 회장을 맡는다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였죠.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 일본에 갔을 땐, 저는 물론 일본도 많이 변화한 상태였어요. 일본 트렌드에 따라 옷 스타일도 바꾸고, 동료지만 나이가 저보다 두 배나 많은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는 법도 배우고, 문화 차이에 대한 제 시선이 바뀌자 아주 좋은 경험을 하게 됐어요. 아이들은 둘 다 일본인과 프랑스인 혼혈로,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경영도 경영이지만 양육을 통해 문화가 섞이는 걸 경험했어요. 목표 달성 후 프랑스로 귀국한 뒤, 또다시 충격을 경험했습니다. 동양 문화는 일을 끝까지 해결하려는 신념이 강한 반면에 프랑스에서는 일이 안 풀리면 금방 포기하고 말았으니까요. 8시 미팅을 원하면 일본에서는 8시 15분 시작으로 전해야 하고, 프랑스에선 7시 45분이라고 얘기해야 맞출 수 있어요. 이런 문화적 차이를 간파한 뒤, 오히려 유리하게 적용하는 요령도 생겼습니다.
VOGUE KOREA 시계와 주얼리를 아우르는 하드 럭셔리는 패션이 주가 되는 소프트 럭셔리와 어떻게 다른가요? MERCEDES ABRAMO 소프트 럭셔리는 패션과 트렌드에 민감하며 디자인 단계에서 매장에 진열하기까지 시간이 짧아요. 하드 럭셔리는 장인 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간극이 훨씬 길죠. 모든 시간에서 하드 럭셔리가 깁니다. 고객이 보석이나 시계 구매를 결정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그 시계를 착용할 수 있는 기간, 트렌드 변화의 속도, 부품 하나하나를 장인 정신으로 만드는 제작 시간까지. CYRILLE VIGNERON 우리는 시간이란 개념을 평면적으로 여기곤 하지만, 모든 동물의 수명이 다르듯 모든 비즈니스의 시간도 달라요. 하루살이와 인간의 수명 차이처럼 자연스럽게 업계마다 다른 성향을 갖기 마련이죠. 하드 럭셔리로 치면, 가장 짧게 잡는다고 해도 제품을 만들기까지 2년이 걸립니다. 고객과 관계를 맺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년 정도, 고객이 우리 제품을 착용할 수 있는 시간은 평생이죠. 시계나 주얼리의 디자인과 품질이 제품 수명을 결정하고, 하드 럭셔리는 몇 세대에 걸쳐 대물림할 수 있는 투자 가치마저 지닙니다. 그래서 소프트 럭셔리처럼 시간을 단축하기 힘든 산업입니다.
VOGUE KOREA 코로나로 인해 까르띠에는 어떤 어려움을 겪었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갔나요? CYRILLE VIGNERON 코로나로 인한 피해는 시간 개념에 관한 제 철학과 일치한다고 봅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지체된 세계적 공급망은 타임라인이 짧은 업계에 가장 큰 타격을 가했고, 우리처럼 생산 시간과 소비자 구매 결정 시간이 긴 기업은 비교적 피해가 적었습니다. 패션계만 봐도 패스트 패션의 몰락에 비해 샤넬이나 에르메스 같은 스테이블 패션 브랜드는 타격이 덜했어요. 아울러 팬데믹 이후 전 세계 공급망이 정상화되는 시기에도 하드 럭셔리가 소프트 럭셔리보다 회복이 수월했어요. 어찌 보면 코로나로 인해 지속 가능한 업체는 강해지고, 그러지 못한 시장은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죠.
VOGUE KOREA MZ세대 고객은 지속 가능을 중시하고 소비를 줄이는 데 신경 쓰며 윤리적 소비를 실천합니다. 럭셔리 시장은 이런 트렌드를 어떻게 반영합니까? 과연 럭셔리 시장은 지속 가능한가요? CYRILLE VIGNERON 소비를 줄이는 트렌드는 ‘디컨섬션 운동(Deconsumption Movement)’으로 불립니다. 공리주의 철학을 가진 사람이라면 필요하지 않은 소비는 끊을 거예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필요한 소비를 끊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요. 우리가 가장 줄여야 할 소비는 에너지, 물, 음식 등 삶에 꼭 필요한 천연자원이니까요. 미국인은 유럽인이나 아시아인보다 30% 더 많은 음식을 섭취해요. 모두가 일본인만큼 적당량의 음식을 섭취한다면 식량 배급과 환경오염 등 음식 관련 문제가 사라질 거라는 연구도 있었어요. 우리는 모두 비슷한 인간의 몸을 지녔으며 이성적으로 따지면 과식할 이유가 없죠. 공리주의 철학을 따르면 안 되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예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요소는 사실 생존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것들이죠. 자아실현, 사랑, 미술, 스포츠, 문화, 문학과 커뮤니티 덕분에 행복하긴 하지만 불필요한 요소죠. 저는 럭셔리 역시 이 부문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하드 럭셔리를 만드는 일은 시간이 지나도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입니다. 더 많은 세대가 물려받아 쓸 수 있도록, 또 쓰기 원하도록 까르띠에는 품질과 디자인에 투자하고 지속 가능하며 재활용 가능한 원료를 쓰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디컨섬션 운동으로 인해 패션 매출은 하락하겠지만 하드 럭셔리는 오히려 지속 가능한 제품에 속하니 문제가 없을 겁니다. 미얀마산 원석의 노동 착취 문제로 사용 금지를 선언한 지 오래고 현재 까르띠에가 사용하는 금 90% 이상은 재활용한 것입니다. 더 착한 제품과 더 투명한 제작 과정, 고객과 더 진실한 관계 구축으로 까르띠에는 매해 더 지속 가능한 브랜드로 변화하고 있어요.
VOGUE KOREA 럭셔리 소비는 특권층과 깊이 얽혀 있다고도 볼 수 있죠. 까르띠에는 럭셔리 비즈니스에 다양성을 포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MERCEDES ABRAMO ‘까르띠에 여성 이니셔티브(Cartier Women’s Initiative)는 15년이 넘은 프로그램이며 매년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가들이 변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2006년에 시작했으며, 국가 및 분야와 상관없이 여성이 운영하거나 여성이 소유한 비즈니스를 대상으로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와 환경적 영향력을 갖출 수 있게 지원하죠. 전 세계 소상공인을 상대로 열리는 공모전은 사회적 가치를 창조해내는 브랜드를 평가해 일곱 개 지역에서 우승자를 선발해 상금을 지급하고 기업 간의 공동체를 형성해 사회적 기업과 여성 리더들을 지지합니다. 최근에는 우승자들에게 세계 최고의 경영 대학원 INSEAD에서 수강할 기회와 함께 벤처 캐피탈과 미팅을 주선하는 등 지속적으로 변화할 기회를 선물했습니다. 또 까르띠에 내부에서도 여성 경영진을 늘리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제가 입사할 때만 해도 여성 대표들이 거의 없었고, 제가 북미 지사장으로 승진한 첫 여성이었습니다. 지금은 저를 비롯해 50% 이상의 지사장이 여성입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더 다양한 사회계층의 고객과 직원을 영입하려고 합니다. 까르띠에 안에서 존재감이 덜한 인종이나 사회계층을 보충하기 위해 여러 대학과 협업도 하죠. CYRILLE VIGNERON 제가 처음 까르띠에에 입사한 30년 전에는 22개국 지사장 중 한 명만 여성이었습니다. 2016년에는 25개국 가운데 다섯 명뿐이었죠. 전보다 다섯 배로 늘었지만, 실질적으로 여성 임원이 5%밖에 되지 않는 걸 보고 더 적극적으로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여겼어요. 성 평등을 위해 인류는 200년을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변화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내부적으로 문제가 되는 요소를 찾아내는 부서를 설립해 더 효과적인 정책을 펼쳤습니다. 원래 여자가 맡기에 너무 위험하다고 인식되는 지역에서도 여성 지사장을 배출할 수 있게 내부적으로 조치했습니다. 러시아에는 보편적으로 강한 남성 대표가 필요하며 일본에서는 동양의 나이 서열 때문에 강하고 나이 많은 남성이 필요했죠. 러시아는 현재 젊은 여성 대표가 부임했고, 성차별이 심각한 중동 지역에서도 까르띠에 대표는 여성입니다. 일본에서는 40대 여성 대표가 60대 남성 기업가들 사이에서 활약 중이고, 이런 명확한 지원을 통해 까르띠에뿐 아니라 이 모든 지역의 경쟁 기업 사이에서도 더 많은 여성 대표를 배출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백화점 문화와 회식 문화로 인해 어려울 거라는 인식이 있었죠. 현재 본사의 많은 직원이 여성이며 세계적으로도 절반의 대표가 여성입니다. 미국, 북미와 중국 등 큰 시장을 여성 지사장들이 맡고 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도 매우 뿌듯합니다.
VOGUE KOREA 테크놀로지와 AI 개발로 인해 럭셔리 업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매장 내 경험과 제품 착용 경험이 중요한 만큼 온라인 커머스의 발달은 여러 면에서 하드 럭셔리 비즈니스에 유리하지 않을 수 있어요. 이에 따라 까르띠에는 어떻게 변모하고 있나요? CYRILLE VIGNERON ‘더 많은 이노베이션이 필요하다’ ‘젊은 고객층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테크놀로지를 더 수용해야 한다’ 같은 디지털 시대에 흔히 유행하는 고정관념은 하드 럭셔리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우리만의 스타일과 역사를 희생하며 변화를 추구하는 일은 6년 전에 멈췄습니다. 까르띠에를 사랑하는 고객은 나이와 상관없이 까르띠에의 정체성과 문화유산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트렌드 반영은 원치 않아요. 새로움을 개발하는 것보다 역사를 재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습니다. 이노베이션은 뜻과 목적이 명확해야 유용해요. 7년 전, 커넥티드 워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하지만 우리 제품은 오래 지속됩니다. 탱크는 100년, 러브는 50년, 저스트 앵 끌루 역시 1960년대에 뉴욕에서 디자인해 60년이 지났어요. 커넥티드 기술을 이용해 시계를 제작한다면 꾸준한 수리와 교체가 필요합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등 테크놀로지 제품 역시 의도적으로 생명 제한이 있도록 설계해 과소비를 유도하죠. 제 블랙베리가 아이폰보다 몇 배는 오래 작동했을 겁니다. 꾸준한 교체나 업데이트는 지속 가능하지 않아요. 금속과 광물 등 천연자원을 쓰는 제품은 최대한 오래 지속되고 소비 사이클도 늘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솔라 패널을 넣은 무브먼트 워치를 개발해 배터리 없이 16년간 지속되도록 만들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은 발달하고 다음에 시계를 구입할 땐 수명이 20년, 35년 등으로 계속 늘어날 겁니다. 까르띠에는 브랜드 가치와 일치하는 혁신만 추구합니다. AI 역시 공급망의 생산력을 최대화하기 위해 활용하고 있습니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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