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아를 바라보는 법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배우 방민아도 그렇다.
배우 방민아를 좋아하기 시작한 때는 영화 <최선의 삶>(2021)부터다. 나의 10대에 위로차 보내고 싶은 멋진 작품에서 고등학생 세 친구(방민아, 심달기, 한성민) 모두 복잡한 감정 연기를 이상적으로 해냈다. 특히 친구와 미묘한 밤을 보내고 의도치 않게 내몰리는 강이에게 감정 이입하는 관객이 많았다. ‘강이 역의 저 배우가 어딘가 익숙한데…’ 하다가 영화 중반이 지나서야 방민아를 알아봤다. 방민아는 “저도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라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방민아는 정도만 다를 뿐이지 현장에서 늘 웃고 있다.
영화 개봉 즈음 <최선의 삶>을 연출한 이우정 감독을 만났다가 “첫 촬영일에 강이의 가장 행복한 얼굴과 슬픈 얼굴을 보면서 ‘나만 잘하면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들은 기억이 난다. 그녀는 배우들을 한참 칭찬하다 갔다. 방민아 역시 “다들 한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정말 신기하고도 고마운 작품이었어요”라고 회상했다. 무엇보다 방민아는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한다. 오랜 시간 대중에게 완벽한 메이크업과 무대의상을 보여야 했던 그녀가 민낯에 헝클어진 머리로 촬영하면서 자유를 느낀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몇 번이나 될까. 그것을 일에서 느꼈다니. “본연의 모습으로 일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오면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물론 기쁘고 영광스러운 순간도 많았지만 화장실에서 메이크업을 지우면서 ‘이게 나인데, 나는 어디에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제가 선크림만 바르고 찍겠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엄청 말렸죠. ‘그래도 주인공이 예뻐야 하지 않니?’라면서요(웃음). 하지만 전 강이라는 인물이면서 나 자신으로 서고 싶었어요.”
자유로운 만큼 깊게 몰입해 심적으로 혹독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방민아는 강이에 이입하기 위해 어린 시절의 아픔을 상기하며 촬영했고, 영화를 끝낸 후에는 가벼운 작품을 보며 일상을 회복하려 애썼다. 근래는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연기할 때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예능 프로그램도 <유 퀴즈 온 더 블럭> <스트릿 우먼 파이터> <피지컬: 100>처럼 다양한 직업군이 출연하는 형식을 좋아한다. “이제는 많이 괜찮아졌고, 다시 간지러운 부분을 긁고 싶어요.” 방민아는 작품을 말할 때 간지럽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최선의 삶>은 자신의 첫 독립 영화다. 영화 <홀리>(2013)에서 발레리나를 소원하는 소녀로 출연한 적 있지만 그녀의 기준에서는 작은 상업 영화에 가깝다. “<최선의 삶>으로 몸소 부딪치고 나서 독립 영화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어요.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주는 것이 독립 영화라고 생각해요. 상업적으로 담지 않는 이야기, 때로는 불편한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다루죠. 누군가는 왜곡해 받아들일 수도 있는 주제지만, 이런 부분을 긁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이 독립 영화의 힘이라 믿어요.”
3년 전 작품을 계속 얘기하는 이유는 이 작품이 방민아에게 터닝 포인트기 때문이다. SBS 20부작 드라마 <미녀 공심이>(2016)의 주연으로 호평받았지만, <최선의 삶>을 본 사람이라면 이 작품으로 방민아를 배우로서 확고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국내외 영화제에서도 신인 연기상을 다수 수상했다. 방민아의 몇몇 가치관이 변한 시기도 우연치 않게 이 영화를 만나고 나서다. “이때부터 연기가 진짜 재밌어졌어요. 사실 그 전에는 촬영장 가는 게 무섭기도 했거든요.” 일에 대한 만족도도 100%를 찍었다. “일이 아주 재미있어요. 어릴 때 이 질문을 받았더라면 아마 만족도가 70~80% 정도라고 할 거예요. 나머지 20~30%에 매달려서 왜 이렇게 힘든지 많이 고민했죠. 하지만 100%라 믿고 일하니까 정말 그렇게 됐고, 행복해졌어요.” 포기하는 법도 배웠다. “안되는 걸 계속 잡고 있으면 힘들어요. 우선 내버려뒀다가 나중에 다시 시도하고, 또 안되면 ‘그래, 이게 최선이니까 우선 밀고 가자’라고 생각해요. 기회가 오면 그때 고치고 바꾸면 되죠.”
방민아는 지난해에만 네 편의 작품을 촬영했다. 2022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이기도 한 <오랜만이다>, 배우 엄정화와 함께한 코믹 영화 <화사한 그녀>, 웹툰 <찌질의 역사>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드라마, 3월에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딜리버리맨>이다. 방민아는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제 꿈이 다작 하는 배우였거든요(웃음).” 물론 쉽지 않은 시간도 있었을 테지만 그것을 굳이 되새기는 타입은 아니다. “바라던 일을 하나씩 이루고 있어요. 때론 맞게 가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니까 맺어지더라고요. 아까 사진 촬영을 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보그>를 정말 사랑하는데 드디어 내가 화보를 찍고 있구나.”
방민아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걸스데이 멤버로 데뷔했다. 13년여의 활동 기간 동안, 걸스데이가 인기 그룹일 때도 카메오에 가까운 작은 역할부터 꾸준히 했다. 작은 역할을 꾸준히 해온 이유를 물었다. 방민아는 질문이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 부분은 크게 생각해본 적 없어요. 역할이 크든 작든 그냥 연기를 하고 싶었으니까요. 초창기엔 제가 봐도 너무 못하니까 욕심이 생겼어요. 거기서 멈추면 못한 채로 끝이잖아요. 계속 열심히 해서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함께 영화를 촬영한 엄정화 선배도 이런 조언을 했다. “가수와 배우 생활을 다 해보셨기에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중에도 ‘멈추면 안 돼, 계속 저어. 그러다 보면 네가 원하는 하나는 분명히 와’라는 말이 정말 와닿았어요. 결심했죠. 포기하지 말고 절대 주저앉지 말자, 내 모든 걸 다 쏟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계속 가자.”
이제 30대, 구태의연하지만 앞자리가 바뀐 느낌을 물어도 될까? “아직까지 정한 건 없어요. 저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죠. 하나 분명한 건 쉬지 않고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힘든 기억은 굳이 떠올리지 않을 거고, 때론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낙담하지 않을 거예요. 극복은 아니에요. 그냥 같이 가는 거죠. 일이 있다면 행복할 수 있어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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