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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사람들’이 역대 최고의 넷플릭스 시리즈인 이유

2023.04.13

‘성난 사람들’이 역대 최고의 넷플릭스 시리즈인 이유

4월 초 공개된 <성난 사람들>은 제작사 A24 특유의 신선한 테마와 감각적인 연출로 넷플릭스 역대 최고의 쇼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건 아시안 아메리칸 컬처의 새로운 챕터다.

‘성난 사람들’ 포스터

도급업자 대니(스티븐 연)와 사업가 에이미(앨리 웡)는 각자의 이유로 위기에 봉착했다. 두 사람은 주차장에서 우연히 시비가 붙은 것을 계기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수전을 벌인다. 집에 몰래 찾아가고, 기물을 훼손하고, 평판에 흠집을 내고, 신분을 감춘 채 서로의 주변인에게 접근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가 동류임을 알아챈다. 그들은 사회의 억압과 가족의 기대, 스스로의 지향 때문에 평생 뒤집어쓰고 있던 가면을 서로의 앞에서만은 훌훌 벗어던지고 마음껏 호흡한다. 대니가 즉물적인 하층계급 친구들 사이에서 내면의 붕괴를 토로하지 못하고 홀로 죽음을 고려할 때, 에이미는 아등바등 노력해서 다다른 상류사회의 허위의식에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에 심취한 에이미의 주변 사람들은 걸핏하면 ‘정신의 연결’을 강조하는데, 이 작품에서 가장 강력하게 정신적으로 연결된 커플이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하는 대니와 에이미라는 건 아이러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드라마의 멋진 점이다. 이 작품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로드 레이지라는 소재를 폭력의 쾌감과 연결 짓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기묘한 성적 긴장으로 몰고 간다. 또 이야기의 점층적 확장을 통해 아시안 아메리칸의 정신세계를 깊이 들여다본다. 배우들의 능청맞은 연기, 재치 있는 대사, 향수를 유발하는 1990년대 팝 음악은 이 뒤틀린 사이코드라마에 중독적인 오락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뿌듯하게도, 여기엔 아시아인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디테일이 잔뜩 숨어 있다.

한국계 미국인 ‘대니’를 연기한 스티븐 연
사실상 집안의 가장인 워킹맘 ‘에이미’를 연기한 앨리 웡

<성난 사람들>은 미드 <데이브>의 이성진 작가가 크리에이터로 제작 전반을 이끌고, 배우 스티븐 연이 주연을 맡았으며, 역시 한국계인 조셉 리가 에이미의 일본인 남편 역으로 출연하고, ‘페이스북 본사 벽화를 그렸다가 주식 부자가 된 화가’로 더 유명한 데이비드 최가 대니의 위험한 친척 아이작으로 출연하는 등 한국인들에게 유독 화제가 될 구석이 많다. 말하는 밥솥, 안마 의자, 카톡 연결음, LG 가전제품에 대한 자부심 따위가 튀어나올 때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물론 드라마 자체는 보다 넓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나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이민 1세대의 고군분투를 다루었다면 <성난 사람들>은 걸작 애니메이션 <터닝 레드>와 마찬가지로 북미 이민 2세대의 현실을 풍자한다. 후자의 주인공들은 법적으로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고 그들이 나고 자란 사회의 가치관에 충분히 동화되어 있다. 하지만 윗세대의 동양적 가풍, 아시아인에게 기대되는 스테레오타입 따위가 여전히 그들에게 억압으로 작용한다. 극 중 중국, 베트남 서민 부부에게서 태어난 에이미가 조지(조셉 리)와 결혼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조지는 서양 사회에서 오래전부터 차별은커녕 신비화의 대상이던 ‘일본인’ ‘예술가’의 아들이다. 조지의 선불교적 평온함 역시 서구 사회의 ‘신비로운 아시안’ 스테레오타입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작가는 조지 캐릭터를 통해 이 스테레오타입을 보기 좋게 비웃는 동시에 에이미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을 위해 달려온 사람이라는 걸 드러낸다. 에이미가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할 때마다 분노는 일시적인 감정이라는 둥, 감사 일기를 쓰자는 둥 태평한 소리를 해서 속을 뒤집어놓던 조지는 “그 한국인은 네가 일본인인 게 싫은 모양이던데”라는 에이미의 한마디에 버튼이 눌려 대니를 보러 나선다. 에이미는 조지 가족의 고급 취향과 안전한 울타리를 제 능력으로 지켜주면서도 그들을 원망하긴커녕 저자세를 취한다. 그들이 에이미가 꿈꾸던 세계로 가는 열쇠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관계에서 에이미를 짓누르는 유교적 가치관도 엿볼 수 있다.

대니는 대니대로 자신의 가부장 이상을 좇다가 산산조각 난 상태다. 그는 효심 지극한 장남이다. 하지만 부모의 사업은 그의 교우 관계로 망해버렸고, 그가 온갖 굴욕을 참아내고 돈을 모아 부모를 위해 지은 집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그는 동생 폴(영 마지노)의 존경을 갈구하지만 폴은 그를 밀어낸다. 사실 이 형제 관계에 더 의존하는 쪽은 베짱이 같은 폴이 아니라 어린 시절 불링을 당하면서 폴을 유일한 친구처럼 여긴 대니다. 폴은 대니가 ‘항상 가족을 위해 일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 여기고, 대니의 전 여친은 ‘내가 만나본 사람 중 가장 좋은 남자’라는 식으로 대니를 이상화한다. 무능하지만 착한 사람, 그게 대니의 이미지다. 하지만 실상 대니는 폴을 곁에 두기 위해 비열한 짓을 하고, 자신의 실책을 덮기 위해 끔찍한 거짓말도 한다. 그의 가면도 에이미의 그것 못지않게 숨 막힌다.

<성난 사람들>은 ‘아시아인은 감정 표현을 하지 않고 컴플레인에 소극적이다’라는 선입견에 대한 속 시원한 분풀이처럼 보인다. 작품이 성난 대니와 에이미를 중심에 두고 해부하는 동안 미국 문화의 주류였던 백인들은 배경으로 타자화된다. 이 전복이 <성난 사람들>의 진정 신선한 점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비중 있게 등장하는 백인은 에이미의 사업 상대인 조던(마리아 벨로)이다. 돈이 썩어나게 많은 이 금발 백인 여성은 에이미의 사업체를 사준다는 미끼로 그를 데리고 논다. 이그조틱한 것을 수집하고 말도 안 되는 것에 정신적 의미를 부여하며 계급의식이 뚜렷한, 백인 상류층의 허위의식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는 에이미가 고요하고 불교적인 인물이라고 칭찬하지만 실상 그것은 그런 존재로 있으라는 역할 부여다. 나아가 ‘네가 이러저러한 행동으로 나를 기쁘게 하면 네가 원하는 것을 내주지’라는 조던의 태도는 동양인 이민자를 영원한 이방인 취급하며 그들을 수용하거나 거부할 권력을 행사하는 미국 주류 인종 전반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조던이 애완 인간처럼 끼고 다니던 동양인 여성 나오미(애슐리 박)에 의해 우스꽝스럽게 망가지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불손한 기쁨을 안겨준다. 이런 유의 독한 유머 감각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이 아메리칸 컬처의 토양에서 자라난 것이라는 명백한 표식이기도 하다. 아시안 아메리칸은 자주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못한 것 같다는 기분을 토로하는데, 이 작품은 모두에 속해서 매력적이다.

안타깝게도 대니와 에이미는 너무 멀리 가버린다. 엔딩에 이르면 과연 저들이 법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건 절망. 하지만 가면무도회는 끝났고 그들은 서로에게 뱃속까지 토해내 더 이상 가릴 게 없다. 이건 희망. 이제 그들은 어떻게 될까? 그들이 서로에게 만족하고 같이 사는 건 상상이 안 된다. 그들은 아마 계속 거짓말을 하고,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세상 모든 것에 분노를 품은 채 살아가지 않을까. 당신의 상상은 무엇인가. 인물들의 보이지 않는 인생까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 그게 좋은 작품의 관건이다. <성난 사람들>은 그런 드라마다. 애초에 앤솔로지로 기획된 드라마지만 다음 시즌을 기대하는 팬들도 생기고 있다. 그 요구에 성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미지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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