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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닥터 차정숙’을 온전히 즐길 수 없는가?

2023.04.28

왜 나는 ‘닥터 차정숙’을 온전히 즐길 수 없는가?

<닥터 차정숙>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온전히 즐기는 데는 몇 가지 윤리적 어려움이 따른다. <닥터 차정숙>은 어째서 ‘길티 플레저’의 영역에 머물 수밖에 없는가?

의대에 다니던 시절 갑작스러운 임신과 결혼 후 20년 넘게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다가 다시 전문의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는 ‘차정숙’ 역의 배우 엄정화

불행한 결혼 생활 끝에 가정에서 튕겨 나간 여자가 자기도 몰랐던 재주를 발휘해 사회에서 성공한다는 건 한국 드라마의 유구한 원형이다. 이 한국형 <인형의 집> 서사는 남편보다 능력 좋고 매력 있는 연하남의 사랑, 주인공을 평가절하하던 시집 식구들의 후회와 사죄 혹은 추락으로 마무리된다. 얼핏 가부장제로 인한 피해를 대리 보상하고 여성을 임파워링하는 내용 같지만, 여성의 행복이 남자의 사랑으로 완성된다는 인식은 고수된다. 드라마가 전업주부의 세계를 그리는 동안 주인공의 고난을 강조하기 위해 배치하는 악역 대부분은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다른 여성들일 수밖에 없다. 주인공이 시어머니, 시누이와 갈등을 빚을 동안 중재 역을 회피하는 남편이 문제의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하지만, ‘여적여’ 이미지는 고스란히 남는다. 우리는 가부장제가 대중문화라는 우물에 풀어놓은 이 독을 끝도 없이 들이켠다.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닥터 차정숙>도 이 익숙한 구도 위에 설계되었다.

<닥터 차정숙>은 한국형 <인형의 집> 서사에 코미디의 외피를 입었다. 차정숙은 남편(김병철)과 의대 동기였고 성적은 그보다 좋았지만 임신, 출산, 양육 때문에 전문의 과정을 포기했다. 현재 남편은 대학 병원 교수이고, 아들은 그 병원 레지던트다. 커리어와 맞바꾼 차정숙의 ‘의사 사모님’, ‘의사 어머니’ 타이틀은 그러나 빛 좋은 개살구다. 차정숙이 병에 걸리자 남편은 마지못해 간 이식을 해주기로 했다가 수술 당일 어머니를 방패 삼아 도망친다. 사람 목숨이 달린 심각한 사안이라 과연 코미디 소재로 적합한가 의문이 드는 에피소드다. 하지만 급히 구한 다른 간 기증자 덕에 죽다 살아난 차정숙은 남편의 배덕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언제 이혼할 거예요?”라는 담당의의 질문에 차정숙이 답한다. “결혼도 어렵지만 이혼은 더 어렵답니다.” 결국 차정숙은 이혼 대신 중단했던 전문의 과정을 다시 밟기로 한다.

차정숙의 남편으로 철저한 이중 생활을 즐기는 ‘서인호’ 역의 배우 김병철
차정숙의 남편 ’서인호’의 첫사랑이자 직장 동료로 차정숙과 대립 구도에 있는 ‘최승희’ 역의 배우 명세빈

<닥터 차정숙> 초반은 거의 가학적으로 느껴질 만큼 주인공에게 혹독한 상황을 연속으로 던져준다. 하지만 엄정화의 밝고 선명한 심리 묘사가 극의 분위기를 적절한 고도로 부양한다. 남편 역 김병철, 시어머니 역 박준금의 맛깔나는 연기는 뜯어보면 혐오스러운 이 캐릭터들의 등장을 기꺼이 기다리게 만든다. 여자에겐 무책임하고 가정에선 무용하고 병원에선 무능한 남편 서인호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의 연기를 하는 순간은 이 드라마의 중요한 웃음 포인트다. 그는 주변 여자들의 희생을 밟고 선 ‘잘난 남자’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시어머니 곽애심은 철없고 단순하고 까탈스럽고 이기적인 ‘늙은 공주’ 타입이다. 그는 차정숙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주요인이지만 차정숙이나 정숙의 친정어머니 오덕례(김미경)가 정색하면 움찔할 줄도 안다. 다들 보는 재미가 있는, 극적으로는 훌륭한 캐릭터들이다. 문제는 이 드라마의 모든 캐릭터가 그처럼 극적 재미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특히 여성 캐릭터들이 그렇다.

차정숙의 시어머니는 정숙이 전문의 과정을 시작해 자신을 수발드는 데 소홀하자 갖은 심통을 부린다. 정숙의 고등학생 딸 이랑(이서연)은 엄마가 오빠 입시 때처럼 자기를 시중들지 않는다고 짜증 낸다. 정숙의 병원 직속 선배 전소라(조아람)는 정숙을 대놓고 무시하고 막말을 해댄다. 여성 간호사들은 정숙이 담당의나 남편이나 아들과 말을 섞을 때마다 쑥덕거리면서 스캔들을 만든다. 정숙의 남편의 전 애인이자 현 불륜녀 최승희(명세빈)는 의사씩이나 되어서는 “그 남자와 한번 살아나 보고 싶다”며 점집을 들락거린다. 이 여자들은 하나같이 싸가지가 없고, 이기적이고, 남자들과는 잘 지내면서 다른 여성에게는 가혹하다. 만일 현실에서 어떤 인간이 자기 주변에 이런 여자들밖에 없다고 하소연하면 우리는 두 가지를 의심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인간이 더럽게 재수가 없거나, 사실 주변 여자들은 멀쩡한데 그 인간 자신이 이상하거나. 그 정도로 차정숙 주변엔 최악의 여자들만 모여 있다.

우리는 그 여자들을 안다. 많이 봤다. 현실에서는 모르겠고 미디어에서 많이 봤다. 유튜브 유머 채널에서, 페이스북 상업 광고 페이지에서, 인터넷 게시판과 카페에서, SNL ‘MZ 오피스’에서, 매달, 매주, 매일, 매시간 이런 개념 없는 여자들에 관한 콘텐츠가 쏟아진다. 그게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미디어들이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 간의’ 갈등이 돈이 된다고 판단한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TV 드라마에나 간간이 등장하는 정도면 모르겠으되 콘텐츠 대홍수 시대를 맞아 온 천지에 공기처럼 떠도는 ‘무개념녀 혼내준 사이다썰’을 호흡하며 살다 보니 슬몃 걱정이 되는 것이다. 과연 이래도 되나?

‘닥터 차정숙’의 여성 캐릭터들은 단지 극적 재미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배경이다. 개개의 콘텐츠를 접할 때, 수용자들이 먼저 이입하는 것은 당연히 주인공이다. <닥터 차정숙>을 보며 우리는 차정숙의 성공을 응원하고, 그가 ‘무개념녀’들에게 일으킬 변화를 기대하고, ‘무개념녀’들에게도 사실은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와 미덕이 있다는 걸 발견할 때마다 감동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인공에게 이입할 때, 다른 시청자들 역시 주인공에게 이입한다. 그리고 우리를 타자화한다. 다른 누군가가 차정숙에게 이입해 자신의 배경으로 존재하는 다른 여성 중 하나인 ‘나’의 디폴트값을 개도나 응징의 대상인 ‘무개념녀’로 설정한다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게 지금 미디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한 명의 여성인 나는, 타인의 배경으로서의 나는, 끝없이 싸가지가 없고 이기적이고 남자들과는 잘 지내면서 다른 여성에게는 가혹한 ‘무개념녀’로 이미지화된다. <닥터 차정숙> 한 편에 그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드라마 자체는 즐길 거리가 많은 재미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그렇다 보니 무려 엄정화, 즉 한국 여성들에게 큰 지지를 받는 대형 스타이자 싱글 중년 여성의 롤모델이자 우리 시대 엔터 산업 트렌드에 중요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배우를 캐스팅한 작품에서까지 이런 내용을 봐야 한다는 게 고통스럽다.

당신이 차정숙의 시어머니라면, 차정숙의 딸이라면, 그의 동료 여의사라면 어떻겠는가. 평생 가족을 뒷바라지하다가 수술 후 아픈 몸을 이끌고 보통의 사회생활보다도 고된 의사 수련 과정에 나섰을 때, 그를 응원할까 원망할까. 당신이 그의 남편의 불륜녀라면, 그 남자가 만들어낸 이 난장판을 보고도 여전히 차정숙을 미워할 수 있겠는가. 아마 많은 여자들이 이 드라마 속 여자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답할 것이다. 여성들의 연대, 의리, 공감, 돌봄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여자들이라면 ‘무개념녀 혼내준 사이다썰’ 따위에는 영향받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버스 정류장에서, 전철역에서, 카페에서, 백화점에서, 회사에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마주친 다른 여자도 나와 같을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누가 여자를 여자의 적으로 만들고 불신을 조장하는가. 진위 모를 ‘무개념녀 혼내준 사이다썰’에 피로와 모욕감을 느끼는 대중으로서, 나는 이 드라마 후반부가 지금까지보다는 신중한 방향으로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나는 차정숙이다. 동시에 나는 다른 차정숙들의 애심, 덕례, 승희, 소라, 이랑이다. 여성의 인생 역전을 다룬 드라마에서까지 여성 일반의 이미지를 희생시키는 부조리는 그만둘 때도 되었다.

사진
JTBC '닥터 차정숙' 공식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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