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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영국의 아주 현실적인 ‘워킹 맘’ 이야기

2023.05.05

한국과 영국의 아주 현실적인 ‘워킹 맘’ 이야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한국과 영국의 ‘워킹 맘’은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필수적 돌봄
아들이 초등학교에 처음 등교하던 날, 수영복을 챙겨 집 근처 강가로 돌진한 나는 기쁨의 춤을 췄다. 그렇게 썩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상반신은 퉁퉁 불은 미트볼 스파게티처럼 보이는 데다가, 비키니 라인 관리에는 신경 쓴 지 오래인 나는 누가 봐도 전업주부였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런 것에 괘념치 않을 정도의 엄청난 안도와 자유, 흥분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더는 돌봄 비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아이 돌봄’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결국 사회 시스템에 대한 것이다. 돌봄은 우리가 병원, 다리, 전기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필수적이다. 누군가 나 대신 아이를 봐주지 않으면 그 어떤 부모도 제대로 일하거나 생활할 수 없다. 적당한 때 나타나는 아이 돌보미가 없으면 당신은 제시간에 강을 건너 출근할 수 없다. 아이를 맡아줄 사람이 없으면 외과 의사는 환자의 심장에 스텐트를 삽입하는 응급 수술을 하러 갈 수가 없다. 어린이집이 갑자기 쉬는 날 엔지니어는 당신이 사는 동네의 고장 난 전선을 고치러 갈 수 없다. 돌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한, 부모들은 일할 수 없다. 그리고 부모들이 집중해서 일할 수 없다면 사회에서 제대로 굴러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영국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돌봄 비용이 비싼 국가다. 스위스, 캐나다, 일본, 호주, 덴마크 혹은 유럽 어느 나라의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더라도 영국보다는 싸다. 내 친구는 최근 육아휴직 후 직장에 복귀했는데, 돌봄 비용을 따져보다가 엄청난 ‘현타’에 휩싸이고 말았다. 오후 3시에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게 해주는 직장은 없고, 양육비와 통근 비용, 가사 도우미에게 줄 임금을 제하고 나면 그녀의 손에 떨어지는 돈은 일주일에 겨우 20파운드, 3만2,000원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친구는 집과 회사를 오갈 때마다 무릎이 ‘덜덜’ 떨린다고 했다. 영국 사회 이동성 위원회(Social Mobility Commission)의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돌봄이 절실한 영국 노동 인구 여덟 명 중 한 명은 5파운드, 8,000원 정도의 시급을 받고 있다. 그리고 <너서리 월드(Nursery World)> 매거진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영국 노동자 두 명 중 한 명은 평균 임금의 60%를 받는 상대적 가난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돌봄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수많은 부모들이 눈물을 삼키고 있다. 하지만 돌봄 제공자의 처지 역시 녹록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탁아소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자신의 아이를 탁아소에 보내기에는 턱없이 적은 임금을 받는 아이러니. 돌봄 노동자들이 자신의 아이를 위한 돌봄 비용을 낼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건 사회가 잘못 굴러가고 있다는 명백한 경고 신호다.

어쩌다 일이 이 지경이 됐을까? 떠오르는 이유는 많다. 일단 정부의 지원금이 형편없이 부족하다. 영유아 돌봄 비용, 교육기관(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의 돌봄 서비스에 대한 줄어든 지원으로 빚어지는 부담은 부모에게로 고스란히 이양된다. 한겨울에 아이를 따뜻하게 재우기 위한 전기 사용료는 물론 물티슈, 기저귀, 간식, 보험료까지 전부 부모가 부담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가 돌봄을 전담하면 정부와 국가 차원에서 이뤄질 때보다 효율이 훨씬 떨어지는 데다 부모의 삶은 더 힘들어진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싱글이고, 왜 남의 아이를 돌보는 데 필요한 비용을 위해 세금을 내야 하는지 의문이라면, 아프지 않을 때도 왜 건강보험료를 내야 하는지 생각해보길 권한다. 아이가 있든 없든 우리 모두 돌봄에 대한 지원에 가담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돌봄 없이 부모는 일할 수 없다. 그 ‘부모’란 사람들은 당신이 매일 출퇴근길에 마주하는 지하철 기관사와 웨이터, 환경미화원, 의사들이다.

최근 정부가 그나마 해냈다는 생각이란 돌봄 노동자 한 명이 돌보는 아이 수를 최대 네 명에서 다섯 명으로 늘리자는 것이었다. 영유아 한 명을 돌보는 인력은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대부분의 부모와 돌봄 노동자들은 이런 처사를 원하지 않을뿐더러 이로 인한 세금 절약 효과는 미미하다.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에게 결코 만족스러울 수 없는 돈을 지급하면서 난방, 유지, 수리 비용에 많은 돈이 필요한 열악한 건물에서 살아가는 돌봄 노동자들이 하루 종일 다섯 명의 아이를 맡도록 한 이번 처사는 영유아 돌봄에 대한 정부의 이해도가 얼마나 낮은 수준인지를 보여준다.

게다가 모든 어린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집에서는 보모나 가정부를 들이는 일이 비용과 시간 관리 측면에서 훨씬 유리한 돌봄 방식일 수 있다. 돌봄 비용에 대한 좀 더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3년은 어느 때보다 물가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매달 고정적으로 빠져나가는 공과금이 치솟고, 정말이지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모들은 아이를 맡긴 부부에게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할 수 없고, 당연히 남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맘 편히 난방을 돌릴 수 없다. 시민 단체 ‘프레그넌트 덴 스크루드(Pregnant Then Screwed)’와 ‘멈스넷(Mumsnet)’에서 올해 진행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약 40%의 엄마들이 육아를 위해 실제로 근무 시간을 줄였으며(그 결과 당연히 고정 수입은 급격히 감소했으며), 43%는 현재 수입으로는 돌봄 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무차 현재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워킹 맘’이라는 공통분모로 친해져 종종 수다를 떨게 된 웨이트리스도 최근 또 다른 아르바이트를 추가했다고 고백했다. 그래야만 돌봄 비용을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돌봄이 경제와 복지로 직결되는 중요한 사회 인프라라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부모들은 월급과 돌봄 비용을 끝없이 저울질하며 돈과 시간, 몸과 마음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프레그넌트 덴 스크루드를 이끄는 단체장 조엘리 브리얼리(Joeli Brearley)는 강조했다. “단순히 부모에게 아이를 기를 돈이 더 필요하다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에요. 돌봄 비용에 대한 인식과 대응은 노동의 가치와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부모들이 직장을 유지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노동은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넬 프리젤 Nell Frizzell, 칼럼니스트

육아는 운발

지난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지켜보며 누아르 영화를 떠올렸다. “근로시간 단축제를 초등학교 6학년까지 상향할 테니 애 한번 낳아볼 텐가?” “훗, 웃기는 소리.” “그럼 0~1세 부모급여 월 100만원은 어떤가?” “100만원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네. 좀 더 강력한 걸 가져오게!” 으슥한 밀실 백열등이 깜빡거리는 찰나 최후의 공격이 들어왔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주지 않는 기업을 신고할 수 있는 전담 신고 센터를 만들겠네!” 주 69시간씩 일하는 싱글로 구성된 조직 내 유일한 워킹 맘으로서 육아휴직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상사를 정부에 신고하는 상상을 잠시 해봤다. 자기 육아휴직 쓰자고 상사를 자른 직원의 앞날은? 상상 속 장르는 순식간에 복수극으로 바뀌었다. 마지막 장면은 채용 조건에서 ‘여성’이란 항목을 아예 지워버린 인사 팀의 뒷모습일 것이다. 합계 출산율 0.78명이라는 수치 앞에서 모 정당이 ‘자녀 수에 따른 증여세 차등 감면’ ‘20대에 아이 셋을 낳으면 군 면제’ 같은 아이디어를 내놓던 날에도 열 살 된 내 아이는 알람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할머니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아빠 차를 타고 등교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방과 후 수업으로 한자를 공부하고 친구와 꼬치 어묵을 사 먹고 글짓기 학원에 갔다. 이어 영어 학원과 태권도 학원을 돌고 태권도 학원 차를 타고 저녁 6시에 귀가했다. 할머니가 차려준 저녁밥을 먹고 할아버지와 장기를 한 판 두었으며 할머니의 감독하에 숙제를 마치고 샤워까지 한 후 책을 읽었다. 아이는 일과가 끝날 때쯤 만성피로에 발을 질질 끌며 귀가한 나와 상봉했다. 스케줄을 나열하는 지금 대단히 수월하게 느껴지는데 이런 일상에 도달하기까지 10년간 우리 가족은 한 명도 빠짐없이 돌봄에 자신을 갈아 넣었다.

아이를 낳은 2013년. 나라고 정부 정책을 찾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돌봄 서비스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침침해진 눈으로 조건을 훑었지만 정부가 우선적으로 도와주고 싶어 하는 국민이 나는 아닌 듯했다. 아파트 청약을 신청해보려고 홈페이지에 접속할 때의 느낌과 정확히 일치했다.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국민으로 분류된 나에게 정부는 또 한 번 ‘네 힘으로 좀 더 애써봐!’라며 등을 떠밀었다.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친구는 나라가 검증한 아이 돌보미가 필요하다며 반년이 넘도록 매달 신청서를 작성했다. 육아휴직이 바닥나던 날 친구는 구청 직원으로부터 맞벌이 가산점 5점은 있지만 총점 16점은 되어야 할 거란 쓴소리를 듣고서야 무한 도전을 멈췄다. 물론 나는 진작에 사설 업체로부터 아이 돌보미를 소개받았다. 2023년 현재 아이 돌봄 서비스 비용은 가사 활동을 포함한 경우 시간당 1만4,400원, 포함하지 않은 경우 시간당 1만1,080원이다. 사설 업체의 경우 비용이 훌쩍 뛰어 내 월급의 상당액을 투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지 않은 금액처럼 느껴진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미성숙 생명체를 울리지 않고 방긋방긋 미소를 짓게 하면서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는 일은 정말이지 전문직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걸음마를 떼는 경이로운 순간이 찾아오자 나는 근처 어린이집부터 수색했다. 수만 가구가 거주하는 동네는 대대적인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 어린이집 다수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아이의 어린이집 대기 순번을 잊지 못한다. 홈페이지에 뜬 숫자는 자그마치 641번.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나 찾아올 것 같은 차례에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아이 돌보미 이모님과의 공동 육아 생활을 좀 더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역시 사설 업체인) 백화점 문화센터 수업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사 후 겨우 입성할 수 있었던 어린이집은 경영 악화로 금방 문을 닫았고 아이는 셔틀버스로 30분을 이동해야 하는 또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겨갔다. 무던하지 못한 아이는 낮잠을 자지 않았는데 그럴 때마다 어린이집은 아이를 빨리 데려가라는 압박을 여러 차례 건넸다. 사회가 감당하기로 규정한 어린이‘상’을 벗어날 때마다 아이는 당연하게도 가족이라는 개인의 영역으로 돌아왔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까지, 대한민국 돌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추첨’이다. 그러니까 ‘운’이 교육의 질을 좌우한다. 어린이집 이후 유치원 입시, 아니 추첨을 세 번 치렀으나 모두 떨어졌다. 어린이집을 1년 더 다녔고 또 한 번의 이사 후 모집 가능 인원이 두 명이었던 사립 유치원 추첨에서 1번을 뽑아서 꿈결 같은 유치원기를 보냈다. (당시 받은 추첨 종이를 나는 아직도 행운의 부적처럼 지갑에 넣고 다닌다.) 공립 초등학교에 진학했으나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사립 초등학교는 등교를 계속한다는 소문에 전학을 해보고자 또 추첨을 치렀다. (물론 모두 처참히 실패했다.) 남편도 나도 오후 1시에 퇴근할 수 없는데 초등학생은 점심밥만 먹고 나면 수업이 끝났다. 돌봄 교실, 방과 후 수업 모두 추첨에 운명을 맡겼다. 운이 좋은 학기는 학교가, 운이 모자란 학기는 사설 업체, 즉 학원이 돌봄을 대신했다. 이 나라의 양육은 도우미 주선 업체와 학원의 촘촘한 경제활동으로 무너지지 않았다. 추첨 운이 나쁠 때마다 정규직에서 프리랜서로, 다시 전업주부로 정체성을 바꾸는 친구들이 생겼다. 남자 지인 중에서는 은행에 다니는 친오빠만 육아휴직을 사용했고 그 대가로 지금도 승진에 애를 먹고 있다.

한국 사회는 양육의 책임과 비용을 결국 가정이 다 짊어진다. 노역의 당사자는 나를 키운 엄마, 엄마의 자매, 엄마가 아는 동생, 누군가의 아이를 봐주던 이모 같은 중년 여성이다.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워킹 맘의 커리어와 자녀 수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한다. 양가가 지방인 경우, 아이가 여럿인 경우, 이들의 건강이 악화되는 경우… 대한민국의 가정은 속절없이 뿌리째 흔들린다. 모두가 촘촘히 연결돼 있다. 아이 돌보미 이모님의 딸이 아이를 낳았을 때, 이모님 남편이 중병에 걸렸을 때 등 우선 돌봐야 하는 대상에 문제가 생기면 돌봄의 균형은 무너지기에 나는 아이의 유아기 내내 늘 모두의 안녕을 간절히 바랐다.

숱한 알파 우먼의 인터뷰를 읽을 때마다 허탈했기에 ‘감사하게도 친정어머니가 근처에 사셔서 아이들을 모두 키워주셨어요’라는 말만은 하고 싶지 않지만 내 아이 역시 친정어머니가 키워주셨다. 처음부터 엄마 집에 아예 아이 방을 만들고 주말마다 엄마 집에 갔고, 몇 년이 지나서는 아예 살림을 합쳐버렸다. 스스로를 온전히 책임지는 자립을 꿈꾸던 나도, 자식의 독립 후 자유를 누리던 엄마도 본심을 외면하고 불편함을 꾸역꾸역 인내함으로써 국가가 부재한 돌봄을 힘겹게 해나갔다. 얼마 전 황혼 육아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해 조부모 돌봄수당 지원법이 발의된 모양이지만 단순히 소액 지원일 이 법의 혜택은 크게 기대되지 않는다. 인구 절벽을 해소하기 위해 일본은 4월부터 아이 한 명당 50만 엔, 492만원의 지원금을 대겠다고 하고, 우리 정부 역시 경매하듯 지원금을 조금씩 올리며 출산을 권장하지만 정말이지 이 돈은 돌봄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뉴스에 나오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언제든 긴급 돌봄이 가능하게 하겠다길래 시범 기관을 검색해보면 집으로부터 수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다. 긴급한 상황에서 아이는 과연 혼자 그 거리를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2025년부터는 초등학교에서 저녁 8시까지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용하는 학생이 우리 아이 혼자라면? 덩그러니 부모를 기다리는 경험을 한 아이가 과연 다음 날에도 그 경험을 자처할지 의문이다. 어떤 정책이든 시행착오를 겪고 정착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이미 10년을 버텨온 지금, 이후에도 이어져야 할 돌봄에 획기적으로 도움이 될 국가 정책을 기대할 여력은 없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살아볼까’ 고민하던 10년 전을 떠올려보면 선거 공약 같았던 엄마의 호언장담 “낳기만 해! 엄마가 다 키워줄게”가 있었다. 그리고 여타 정치인과 달리 엄마는 실제로 그 공약을 지켰다. 그 사이 회사는 육아휴직을 쓰는 선배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않음으로써 직원의 육아에 기여할 바가 없음을 몸소 보여줬고, 사회는 출산을 적극 권하지만 ‘맘충’ ‘노키즈존’ 같은 단어를 신나게 생산해내며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민폐도 끼치지 않길 요구했다. 우연히 여자라는 신체를 가졌고, 어쩌다 아이를 출산한 조소현이라는 개인은 스스로를 바쳐가며 돌봄에 기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이를 키우며 내 세상은 넓어졌고 환희에 찬 순간도 수없이 많이 맞이했지만 육아의 짐이 모두 나의 것인 사회는 날 불행하게 했다. 나아지고 있지만 서울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여전히 ‘우리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고 ‘남의 일’이다. 누구도 돌봄 없이 어른이 되지 못하지만 이 사회는 자주 그 사실을 외면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뉴스에서는 저출생의 원인에 대한 또 다른 황당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10년 전 엄마로부터 들었던 호언장담을 국가로부터 듣게 되는 날이 오면 출생률은 반등할까? 아이가 잠든 후 졸면서 시청했던 영화 <길복순>의 대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사람 죽이는 건 심플해. 애 키우는 거에 비하면.” 조소현 프리랜스 에디터 (VK)

아트워크
Sol Co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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