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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우주 최고의 라스트 댄스

2023.05.12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우주 최고의 라스트 댄스

이토록 멋진 트릴로지 피날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가 남긴 우정과 사랑과 헌신과 용기에 대하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Guardians of the Galaxy)’는 ‘우주의 수호자’라는 거창한 이름과 참 어울리지 않게 오합지졸 같은 우주 자경단이다. 틈틈이 사분오열하는 팀워크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지만 함께한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첫 만남은 사나웠고, 한때는 서로 죽이려 드는 사이이기도 했지만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세월을 건너는 사이 관계도 퀀텀 점프하듯 돈독해지고 성숙해졌다.

여전히 짓궂고 때때로 위험천만하지만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염려하는 사이라는 건 누구보다 그들 스스로가 잘 안다. 그리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이제 더 이상 우주를 떠도는 자경단이 아니다. 그들은 과거 콜렉터(베니치오 델 토로)의 본거지였던 노웨어에 정착해 팀 가디언즈의 본부를 꾸리고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든다. 그렇게 평화롭고 순탄하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패터슨>이 아니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가오갤 3>는 지난 두 편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과거에서 시작된다. 1편은 스타로드이기 전에 지구인이었던 피터 퀼(크리스 프랫)이 우주로 납치된 유년 시절을, 2편은 스타로드의 친부이자 뒤늦게 셀레스티얼이라는 정체를 드러낸 에고(커트 러셀)가 지구에 머무르던 시절을 각각 플래시백 형식으로 제시하는 오프닝 시퀀스와 함께 시작됐다. 3편의 오프닝 시퀀스 역시 예전에 알려주지 않았던 과거형 플래시백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가오갤 3>는 피터 퀼과 무관한 로켓(브래들리 쿠퍼)의 과거로부터 시작되는 첫 번째 <가오갤>이다. 우주를 씹어 먹을 듯한 언변으로 사납게 총질을 해대는 터프한 지금의 로켓이 아닌 평범하고 순진한 눈망울의 라쿤 시절 로켓으로부터 <가오갤 3>는 시작된다. 영화가 선택한 첫 넘버도 심상치 않다.

언제나 인상적인 올드 팝과 올드 록 넘버가 즐비한 주크박스 영화였던 지난 두 전작과 마찬가지로 <가오갤 3> 역시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고 싶은 노래가 거듭 등장한다. 하지만 ‘Come and Get Your Love’나 ‘Mr. Blue Sky’ 같은 경쾌한 넘버로 시작된 전작들과 달리 <가오갤 3>는 상대적으로 우울하고 루스한 라디오헤드의 ‘Creep’으로 시작된다. 심지어 어쿠스틱 버전의 ‘Creep’을 듣고 흥얼거리는 건 피터 퀼이 아니라 로켓이다. 전작에서 박살 난 워크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욘두(마이클 루커)가 지구에서 구해왔다는 MP3 기기 ‘준(Zune)’으로 더 많은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참고로 준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2006년에 출시한 MP3 기기로 애플 아이팟의 경쟁 모델이 될 것 같았지만 끝내 대중화에 실패해 단종됐다. 지구에서 루저처럼 버려진 기기가 우주를 건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보이지 않는 멤버가 된 셈이다.

“친구 구하러 가자!”는 대사처럼, <가오갤 3>에서 팀 가디언즈의 여정은 우주나 세상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오갤 3>는 로켓을 구하기 위해 떠나는 친구들의 우정 어린 모험이자 로켓의 과거로 향하는 서사다.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로켓의 몸속에 치료를 막는 킬 스위치가 내장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디언즈는 48시간 안에 킬 스위치 작동을 멈추고 로켓을 살리기 위해 우주로 날아간다.

피터 퀼과 드랙스(데이브 바티스타), 맨티스(폼 클레멘티에프), 그루트(빈 디젤), 그리고 과거에는 적이었지만 이제 한 팀이 된 네뷸라(카렌 길런)는 로켓의 몸에 킬 스위치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은하계의 생명공학 회사 오르고의 본사 오르고스코프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한 우여곡절 끝에 가모라(조 샐다나)가 합류하고 덕분에 피터 퀼의 동공과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 그리고 사경을 헤매는 로켓을 살리려는 가디언즈의 활약이 펼쳐지는 사이사이마다 로켓의 과거가 플래시백 형식의 교차 편집으로 삽입된다. 그때마다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도 함께 찾아온다.

지난 두 편의 전작에서 로켓의 과거를 정면으로 그리거나 상세하게 설명하진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있다. 1편에서는 콜렉터를 찾아간 노웨어의 술집에서 드랙스와 술을 마시다 취해서 소동을 일으키던 로켓이 자신을 뜯어내고 조립해서 지금 같은 괴물로 만든 누군가를 지칭하며 “난 이렇게 되게 해달란 적 없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2편에서는 로켓이 욘두와 언쟁을 벌이는 장면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욘두는 “난 널 잘 알아. 왜냐면 나랑 똑같으니까!”라고 말하며 로켓을 만든 과학자들이 어린 시절 자신을 노예로 팔아치운 부모처럼 자신들에게 관심이 없는 존재였다고 말한다.

이처럼 명확하진 않아도 어둡고 우울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로켓의 과거사는 두 편의 전작을 통해 간접적으로 복선처럼 제시되었다. <가오갤 3>는 비로소 그 복선의 실타래를 풀고 본격적으로 사연에 귀를 기울이는, 로켓을 위한 대단원이다. 그리고 가디언즈가 당도하는 목적지 ‘카운터 어스’에는 MCU 역사상 가장 혐오스러운 빌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하이 에볼루셔너리(추쿠디 이우지)가 있다.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지금까지 등장한 마블 영화를 통틀어 가장 극악한 분노를 야기하는 빌런이다. 물론 마블 영화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상을 남긴 빌런으로 여전히 타노스를 꼽아야 하겠지만, 타노스는 죽이고 싶은 존재라기보단 비범한 면모를 지닌 강적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사랑받기도 했다. 멋진 영웅처럼 멋진 악당 역시 팬덤을 형성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블 영화는 영웅 캐릭터에 비해 빌런 캐릭터의 존재감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는 단순히 강한 적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죽이고 싶은 분노를 야기하는 악인이 부재한 듯 보인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가오갤 3>의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전형적인 혐오주의자이자 차별주의자로 죽여야 할 명분이 차고 넘치는 악 그 자체다. 그는 ‘불완전한 생명체를 완벽한 존재로 바꾸는 것’이 진화라고 믿고 이를 행한다. 다양한 종의 동물이 그가 믿는 진화를 이루기 위한 실험체로 동원되고 거침없이 소모된다. 로켓 역시 그중 하나였다.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실험체가 되어 89P13이라 불리며 두 발로 걷고, 앞발을 손처럼 쓰고,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고, 높은 지능을 얻게 된다. 그리고 하이 에볼루셔너리를 아버지라 믿고 따랐다.

푸른 하늘을 나는 로켓을 보고 스스로 지은 이름처럼 로켓은 실험체를 모두 폐기하려는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계획을 피해 우주선을 타고 날아간다. 그 이름은 원래 아버지처럼 따랐던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건설한다는 신세계에서 친구들을 우주선에 태워 하늘을 날고자 지은 것이었다. 하지만 함께 우주로 비행할 친구들은 사라지고, 혈혈단신 도망자가 된 로켓은 그렇게 홀로 우주로 날아간다. 환희가 아닌 분노와 절망이 로켓의 우주선을 띄워 올렸다. <가오갤 3>는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특히 기존 마블 영화와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파토스를 전하는 영화다.

물론 <가오갤 3>는 언제나 그러했듯 팀 가디언즈 특유의 백치미 넘치는 개인기와 엉망진창 팀워크로 끊임없이 유쾌함과 쾌활함을 제공하는 영화다. 하지만 <가오갤> 시리즈는 매번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클라이맥스로 반짝이는 여운을 남기곤 한다. <가오갤>에서는 그루트의 헌신적인 ‘위 아 그루트’ 시퀀스가, <가오갤 2>에서는 욘두의 희생과 라바저스 장례식 시퀀스가 절정의 눈물 포인트를 제공했다. 그리고 욘두의 장례식을 바라보는 로켓의 이례적인 눈물로 끝맺는 2편의 엔딩 시퀀스는 <가오갤 3> 감상 이후 의미심장한 장면으로 복기될 수밖에 없다.

<가오갤 3>는 로켓의 절절한 과거사로 거듭 심금을 울린다. 드러나지 않았던 주요 캐릭터의 비극적인 과거사는 이 작품의 결말을 전작들과 조금 다른 양상으로 몰고 가는데 <가오갤 3>의 쌈박한 카타르시스는 영화가 거듭 제시하는 로켓의 지난 파토스를 통해 축적된 감정을 바탕으로 일거에 폭발한다. 사실 슈퍼히어로 장르 영화의 주요 캐릭터로 말하는 라쿤과 나무 인간이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가 <가오갤> 프랜차이즈의 독특한 정체성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로켓과 그루트는 중요한 캐릭터였고, 그런 두 캐릭터가 등장부터 듀오로 활동해온 전력은 그 자체로 미스터리한 호기심을 자아내는 면이 있었다. 캐릭터 설정을 떠나 누가 봐도 약하게 느껴지는 존재가 만만치 않은 ‘깡다구’로 날고 기는 히어로 세계관을 휘어잡는다는 설정 자체로부터 발생하는 쾌감이 이 프랜차이즈를 독특한 매력으로 이끄는 구심점 노릇을 해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매력을 거듭 즐기고 <가오갤>을 애정해온 관객이라면 로켓의 애통한 전사에 적지 않은 통증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성질로 되레 매력을 어필해온 로켓이 고통스러운 과거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를 숨기기 위해 위악적인 삶을 살아왔고, 그로 인한 통증을 여전히 감내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가오갤>의 활약상에 꾸준히 열광한 입장에서 진동하는 마음을 느끼게 할 것이다. 결코 울지 않을 것 같은 친구가 우는 모습처럼 마음을 흔드는 것도 없는 법이다.

로켓뿐만 아니라 <가오갤 3>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 또한 시리즈를 거듭하며 성장하고 성숙해졌다. 타노스에 대한 분노를 자매에 대한 적개심으로 환원하며 살아온 네뷸라도, 아내와 딸을 잃은 상실감에서 비롯된 분노를 품고 물불을 가리지 않던 드랙스도, 타인의 감정을 읽고 조종할 수 있는 태생적 능력으로 되레 소극적인 삶을 살아오던 맨티스도, 전소된 뒤 환생하듯 자라 질풍노도의 유년 시절을 뒤로하고 다시 의젓하게 큰 그루트도, 모두가 여전히 가끔씩 어리석고 바보 같은 실수를 자초하거나 여전히 부족한 인내심으로 성질을 부리기도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한 팀이자 가족으로 거듭났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가모라를 잃은 상실감에 시달리는 피터 퀼을 걱정하는 가디언즈의 멤버들은 진정한 원팀으로 거듭난 동시에 저마다 갖고 있던 결핍과 한계와 상실과 허무를 함께 극복하고, 그럼으로써 보다 성숙한 존재가 됐다는 사실이 명료하게 전해진다. SF와 액션, 어드벤처 등 범우주적 활극으로 점철된 스페이스 오페라로서 스펙터클을 선사하는 동시에 사랑과 우정과 성숙과 연대로 마음에 방점을 찍는다. 덕분에 이 시리즈를 꾸준히 아껴온 팬 입장에서 <가오갤 3>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들과 함께 지나온 세월에 대한 경이적인 보상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팀원 크래글린(숀 건)과 코스모(마리아 바칼로바)를 주목하게 만드는 방식 역시 탁월하다. 전편에서 욘두의 후계자로 지명받은 크래글린은 욘두가 휘파람으로 조종하던 화살을 물려받은 뒤 이를 사용하려 해보지만 거듭 실패한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깨달음을 얻고 비로소 화살을 다스리는 데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염력을 부려 친구를 구하는 우주견 코스모는 ‘좋은 개’라는 지위를 되찾는다.

그렇게 서로 짓궂게 놀리고 바보처럼 굴지만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결정적인 순간을 꽉 채우고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며, 그렇게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서로를 위로한다.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표정으로 웃겨주다가 세상에서 가장 속 깊은 마음으로 울리는 친구이자 가족이자 우정이자 사랑이자 헌신이자 용기. 시각적으로는 인간의 현실로부터 가장 멀리 날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감정적으로는 인간 본연의 모든 노스탤지어를 건드리는 스페이스 오페라. 이 시리즈에 열광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결코 싫어하거나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빌런처럼 등장하지만 끝내 선한 내면에 어울리는 편에 서는 아담 워록(윌 폴터)은 시리즈의 피날레를 위한 액세서리처럼 쓰인 경향도 있지만 결국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는 팀의 포용력을 대변하는 마지막 존재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루트가 아담 워록에게 “누구든 한 번은 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전하는 “아임 그루트”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제임스 건은 과거 트위터에 쓴 문제적인 멘션 때문에 <가오갤 2> 이후로 이 시리즈를 지휘할 권한을 박탈당했다. 하지만 지난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며 기다린 끝에 다시 재능을 이어갈 기회를 얻었다. 애초에 구상했던 트릴로지를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오갤 3>는 이 프랜차이즈가 루저를 위한 두 번째 기회에 관한 영화라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만드는 듯하다. 사랑받지 못한 존재들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기회를 주는 영화라는 사실이 제임스 건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를 통해 보다 선명해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완벽하게 만든다’는 헛소리로 ‘원래대로를 싫어하는’ 차별주의자와 혐오론자에게 경종을 울리는 초전박살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덕분에 이렇게 한심한 루저들을 한데 모아 마음을 사로잡고 울리고 웃기는 재능이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것이 실로 아쉽지만, 이렇게 벅찬 마음을 한껏 띄워 올리는 멋진 피날레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도 그 자체로 귀하게 여겨진다. 그야말로 우주 최고의 라스트 댄스, 이렇게 멋진 트릴로지와 피날레를 만날 기회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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