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조명이 만드는 일상의 드라마

2023.05.31

조명이 만드는 일상의 드라마

모델이자 작가인 소피 달이 직접 얘기했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크고 작은 조명이 소박한 일상에 드리우는 극적인 희망과 낭만, 환상에 대하여.

빛과 그림자. 이 두 요소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기까지, 우리 곁에 앞다투어 공존해왔다. 동화책에서도 빛과 그림자는 항상 극명하게 대립하지 않는가. 피터팬이 자신의 그림자를 잃어버렸을 때 빛에 둘러싸인 웬디가 차분하게 그걸 다시 꿰매주었고, <비밀의 화원>에서 병약한 귀공자 콜린은 환한 바깥세상을 목격하기 전까지 어둠 속에서 시들어갈 뿐이었다.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과 시인 루미(Rumi)는 삶에 빛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칼 융(Carl Jung)은 “어둠이 있어야 행복한 삶도 존재한다”고 했고, 몇몇 위대한 조명 디자이너는 빛의 균형을 이루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빛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그림자가 있는 곳을 응시해야 한다.

우리 집 부엌에는 음침한 곳이 꽤 많다. 안으로 움푹 들어간 캐비닛의 그늘진 부분과 아연 상판을 놓은 아일랜드 식탁의 음울한 색조, 새까만 선반을 융이 보았더라면 매우 흡족해했을 것이다. 1981년부터 건축적 관점으로 공간의 빛을 디자인해왔으며 현재 존 컬런 라이팅(John Cullen Lighting)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는 샐리 스토리(Sally Storey)는 내 주방을 보고 흥미로운 주장을 쏟아냈다. “조명은 몹시 강력한 역할을 하지만 과소평가되는 인테리어 요소입니다. 조명의 메커니즘을 온전히 이해하고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아주 어렵기 때문이죠. 조명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번거로운 실험을 거듭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저는 조명을 여러 겹으로 된 빛으로 이해하고 활용합니다. 서로 다른 빛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내고 각각의 강도를 조절함으로써 완벽한 분위기를 창조하는 거죠.”

내 삶에서 유독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 대부분은 빛과 관련된다. 밤중에 부둣가에 앉아 바라보는 배는 항상 달빛을 받아 반짝였고, 파티의 어둑한 간접조명은 여지없이 분위기를 한층 그윽하게 만들었다. 유서 깊은 성당에서 촛불 수백 개가 너울거리며 이루는 평온한 풍경은 또 어떤가. 20세기 초 야수파 화가들 역시 스치는 빛을 캔버스에 담아내기 위해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콜리우르(Collioure)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동틀 녘엔 살굿빛 일출을 그리고, 밤이면 짙푸른 남색 하늘 아래 삼삼오오 모여 기쁨의 춤을 추는 낭만주의자들이었다.

오랫동안 조명은 도구일 뿐이며 비교적 다루기 쉬운 인테리어 소품이라 생각했다. 간접조명이나 무드 등 하나로 집 안의 못난 부분을 말끔하게 가릴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값싸고 강력한 빛으로 한때 각광받은 LED 조명은 생김새는 물론 그것이 내뿜는 차디찬 빛깔까지 전부 끔찍이도 싫었다. 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된 텅스텐 조명 하나가 있었는데, 구식에다가 너무 위험하다며 전기 기술자에게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받은 후 나는 아예 집의 주요 조명을 통째로 손보게 됐다. 그 후 시공을 마친 기술자가 눈이 부실 정도로 쨍한 빛으로 꽉 찬 거실을 자랑스럽게 소개할 때의 절망감이란. 우아한 패턴의 소파가 놓인 거실은 덕분에 조악한 산부인과 진료실처럼 보였다. 곧바로 더 따뜻한 색감을 내뿜는 전구로 갈아 끼우기는 했지만 분명 첫인상은 많은 것을 망쳐놓았다. 난 여전히 거실 등은 켜지 않고 간접조명에 의지한 채 살고 있다.

빛은 전부다. 키 큰 창문으로 시시각각 달라지는 햇빛이 한 줌의 과장도 없이 포착되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거실, 벽난로와 책장이 노란 불빛을 주고받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미카 에르테군(Mica Ertegun)의 서재, 런던 애너벨스(Annabel’s) 클럽 라운지에서 여러 사람의 로맨틱한 순간을 밝혀주는 핑크빛 조명… 적절한 위치에서 적절한 밝기를 내뿜는 조명을 마주할 때의 황홀경은 아름답게 꾸민 공간을 바라볼 때의 희열을 넘어선다.

음침한 우리 집 부엌을 보자마자 조명의 중요성을 설파하던 샐리는 다양한 묘책을 내놓았다. 그녀가 태양광처럼 일직선으로 내리쬐는 디렉셔널 라이트의 마법을 보여주던 때가 생각난다. 바닥에 드리운 꽃잎처럼 보드라운 미색의 빛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 집 부엌은 다이닝 룸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로, 아치형 천장 아래 펼쳐져 있다. 이 독특한 공간에서 어떻게 조명을 균형감 있게 설치해야 할지 오랫동안 망설이던 차에 샐리는 과학 수사를 방불케 하는 치밀한 전략으로 근사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녀는 먼저 선반의 사각지대에 띠 조명을 부착했다. 그리고 칙칙한 색상의 캐비닛 안쪽에 가리비 문양으로 번쩍거리는 디자인 조명을 두었으며, 지붕을 받치는 들보에 은은한 무드 등도 설치했다. 아이디어 시연을 위해 한시적으로 탄생한 광경은 더없이 따뜻하고 아늑해서 평생 붙잡아두고 싶을 정도였다.

존경하는 미국의 촬영감독 고든 윌리스(Gordon Willis)는 예술적인 조명은 “특출한 정신과 의사와 같다”고 말한 적 있다. 타인을 감동시키고, 그들을 원하는 방식대로 조정하고,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드리우기 때문이라고. 윌리스의 말을 듣자마자 의붓아버지 패트릭 도노번(Patrick Donovan)이 살던 첼시의 리젠시 빌딩이 떠올랐다. 도노번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주 가파르고 어두운 돌계단을 올라가야 했는데 문을 열면 항상 빛과 웃음, 밴 모리슨(Van Morrison)의 따뜻한 음악 속으로 풍덩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집 안 곳곳에 드리운 작은 조명은 빅토리아풍 누드화와 유명 화가들의 우아한 드로잉 작품, 펑크 사진을 주목하게 했고, 밤이 되면 앨버트 브리지(Albert Bridge)의 샛노란 조명이 창문 위를 아름답게 수놓았다. 엄마가 의붓아버지와 이혼한 후에도 청소년기의 나는 그 따뜻함을 종종 그리워하며 지친 선원의 발이 다시 항구로 향하듯 자꾸 그 근처를 서성였다. 이제 패트릭은 우리 곁에 없지만 나는 그 집에 가득하던 빛을 기억하며 그의 따스한 환대에 영원히 감사하며 지낼 것이다. VL

SOPHIE DAHL
사진
COURTESY OF HOUSE &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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