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LoVe: 첫 컬렉션을 앞둔 퍼렐과 ‘보그’가 나눈 대화
퍼렐 윌리엄스는 주변이 시끄럽기를 원한다. 그가 루이 비통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이기까지 며칠 남지 않은 시점. 퐁네프 근처에 있는 스튜디오에서는 영상 촬영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카메라에 불이 들어올 때마다 디자인 스튜디오에는 정적이 흘렀다. 이것은 퍼렐이 원하는 게 아니다. 그런 분위기는 강압적이며, 진실하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퍼렐답지’ 않기 때문이다.
스튜디오가 다시 자연스럽게 시끌벅적해지며, 다섯 명 구성의 디자인 팀과 퍼렐이 나누는 대화와 그들의 타자 소리가 들리고, 다른 쪽에서는 루이 비통 하우스 다른 직원들의 대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2024 S/S 남성복 시즌 중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쇼는 퍼렐이 이끄는 루이 비통이다. 그리고 퍼렐은 주위가 떠들썩해지면 자신만의 ‘그루브’를 되찾는다. <보그> 카메라를 보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일이 아니고 꿈이죠. 제가 유일하게 할 일은 꿈에서 깨지 않는 겁니다.”
퍼렐과 그의 팀은 그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쭉 파리에 머물렀다. 이번 컬렉션의 주제가 ‘연인(Lovers)’이 될 거라고 밝힌 퍼렐(퍼렐의 고향 버지니아 역시 ‘연인을 위한 도시’로 알려진다), 버질 아블로의 뒤를 이어 루이 비통의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된 발렌타인데이부터 컬렉션을 준비해왔다. 그는 알렉상드르 아르노의 전화를 받고 “루이 비통의 CEO 피에트로 베카리(Pietro Beccari)가 당신을 원한다”는 말을 전해 들은 때를 잠시 회상하기도 했다.
그가 루이 비통의 수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모두 반긴 건 아니다. 그 자리가 ‘보수적 의미에서의 디자이너’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이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퍼렐이 정식으로 패션을 배우지 않고도 이미 2004년에 마크 제이콥스가 이끌던 루이 비통과 협업해 선글라스를 출시했다는 사실을 잊었다. 그들이 말한 것처럼 퍼렐은 ‘족보도 없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그의 패션 포트폴리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05년에는 니고와 함께 빌리어네어 보이즈 클럽(Billionaire Boys Club)을 설립했고, 아디다스와 함께 수년간 협업해왔으며, 티파니, 모이나, 샤넬, 몽클레르 같은 럭셔리 레이블 역시 그를 원했다.
퍼렐은 칼 라거펠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버질의 친구이기도 했다. 팜 엔젤스의 프란체스코 라가치(Francesco Ragazzi)와도 함께 일했고, 최근에는 콜레트의 설립자 사라 안델만(Sarah Andelman)과 함께 디지털 플랫폼 ‘주피터(Joopiter)’에서 주얼리 경매를 큐레이팅했다. 그가 패션계 전반에 걸친 네트워크를 자랑한다는 증거다. 패션에서 그가 가장 의지하는 사람은? 그의 ‘베스트 프렌드’ 니고다.
그와의 친분을 과시하듯 인터뷰를 위한 자리에서 퍼렐은 ‘I Know Nigo’라는 문구가 적힌 (니고가 설립한) 휴먼 메이드의 티셔츠와 루이 비통 컬렉션을 통해 곧 선보일 다미에 패턴 플레어 데님을 입고 있었다. 얼마 전 공개한 리한나의 캠페인을 제외하면, 그가 입은 플레어 데님은 그가 루이 비통에서 만들어낸 수많은 아이템 중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피스다. 스튜디오에는 그 외에도 몇 년, 아니 몇 개월 뒤 ‘아카이브 컬렉터’의 수집 욕구를 자극할 아이템이 널브러져 있었다.
스튜디오 밑에 위치한 루이 비통 건물 로비에는 엄청난 수의 남녀 모델이 대기하고 있었다. 캐스팅 오디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파리는 퍼렐의 첫 쇼가 루이 비통 하우스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참석자가 많은 쇼가 될 거라는 루머로 가득하다. 버질 아블로가 그랬듯, 퍼렐 역시 자신의 첫 쇼를 야외에서 선보인다.
퍼렐의 ‘본업’은 프로듀서이자 가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프로듀싱한 곡이 쇼장에서 재생될 것이라는 힌트를 흘렸다. 그가 버지니아의 가스펠 합창단 ‘보이스 오브 파이어(Voices of Fire)’와 함께 작업한 ‘Joy (Unspeakable)’ 같은 기존 곡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는 컬렉션의 사운드트랙이 ‘매우 서정적일 것’이라고도 전했다.
루이 비통의 모노그램이 그려진 커피 잔을 든 채 퍼렐이 소파에 앉아 있다. 지난 몇 달간 자신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동안, 뒤편 창문에서는 쿠사마 야요이의 거대한 동상이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의 대화는 이렇게 흘러갔다.
내일 있을 쇼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
일종의 ‘몰입형 예술’이라고 할까? 하우스의 구성원이 내게 보내준 지지와 사랑, 30년간 내가 받은 팬들의 사랑에서 영감을 받았다.
‘몰입형 예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우리를 둘러싼 커뮤니티, 그곳의 공기, 장소까지…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다. 모두가 다양성(Diversity)을 이야기한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 역시 그렇기 때문에, 나의 쇼 역시 아주 다양할 것이다. 다들 얘기하기 좋아하는 또 다른 주제 포용성(Inclusion)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쇼는 남성복 컬렉션이지만, 모든 사람을 위한 옷을 선보인다.
건물 1층에서 여자 모델이 여럿 오가는 것을 봤다.
당연하다! 나는 ‘사람’을 위한 옷을 만드니까.
친구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컬렉션 역시 주위 사람들과 함께한 협업으로 봐도 될까?
그렇다. 내 삶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협업 프로젝트’다. 다른 이들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내가 가진 최고의 재능이다. 루이 비통은 내가 아이디어와 비전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인 동시에 최고의 장인들이 모인 곳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로부터 색다른 방식, 과정, 시선에 대한 ‘속성 강의’를 받았다. 나는 내가 다른 이들과 함께 일하는 방식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루이 비통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캑터스 플랜트(Cactus Plant) 팀, 스타일리스트 매튜 헨슨(Matthew Henson), 아틀리에의 모든 이와 ‘협업’ 관계에 있다. 이들 모두가 장인이다. 루이 비통 같은 하우스에서는 트렁크 자물쇠 하나에도 장인의 손길이 닿아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장인들은 절대 실수하는 법이 없다.
그 말처럼 당신은 온갖 장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거기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
비전. 그리고 아주 세세하고 세밀한 사항을 조정하는 것. 자그마한 디테일은 때론 원대한 비전만큼 중요하다.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줌인’ 또는 ‘줌아웃’ 할 수 있는 능력은 필수다.
퍼렐은 컬렉션이 ‘4K’일 거라고 얘기했다. 쇼를 보는 이들이라면 누구든 얇은 실 한 올까지 일일이 ‘줌인’ 할 수 있음은 물론, 끝까지 ‘줌아웃’을 통해 모티브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보탰다. 그가 다미에 패턴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봤는지는 쇼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컬렉션에 숨은 개념이나 느낌은?
사랑 그리고 편의. 나에게 편리함은 럭셔리의 동의어다. 디자인 관점에서 보는 편의, 편의 그 자체를 디자인하려 했다.
세간에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를 해보자. 지난해 11월 스킨케어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그때도 루이 비통과 대화가 오갔나?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 루이 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건가?
별거 없다. 그냥 ‘할래?’라는 전화를 받았을 뿐이다.
전화한 사람은 누구였나?
알렉상드르 아르노다. 우리가 함께 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그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그때도 내가 루이 비통의 디렉터가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나는 형제 같은 니고가 적임자라 여겼다. 알렉상드르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결국 그들이 니고를 선임한 줄 알았을 정도니까!
니고는 겐조에서 맡은 일을 다 한다.
단순히 맡은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성과를 내고 있지 않나! 아까 어떤 생각을 갖고 컬렉션을 구상했는지 물었을 때 ‘사랑’이라고 답했다. 강렬한 햇빛이 당신을 비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당신은 그 빛으로 무엇을 하겠나? 나는 지금의 자리까지 오도록 도움을 준 모든 이에게 그 빛을 돌려주고 싶었다. 나를 늘 지지해준 파리지앵 친구들처럼 말이다. 그들과 함께 버지니아에서 열린 ‘Something in the Water 2023’ 축제를 즐겼다. 버지니아는 연인을 위한 도시 아닌가. 연인. 그 단어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참 강렬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 있으면 미움도 있기 마련이다. 당신이 루이 비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되고 나서, 많은 이가 하우스의 결정을 비판했다. ‘퍼렐은 패션 스쿨을 졸업하지도 않았잖아!’가 주된 비판의 요지였다.
이것부터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 그런 비판은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것 역시 분명하다. 줄리아드 음대를 졸업하지 않은 내가 음악으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는 사실. 흑인으로 태어난 이들은 그런 것에 익숙하다. 이건 네가 해도 돼, 이건 네가 하면 안 돼… 하지만 결국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이거다. “놀랐지? 나도 놀랐어. 말보다는 결과로 보여줄게.”
당신은 패션 스쿨을 졸업하지는 않았지만, 칼 라거펠트와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그에게 배운 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당연하다. 패션 하우스란 일종의 오케스트라와 같다.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란, 그 오케스트라를 이루는 섹션을 모두 관장하는 사람이다. 작곡처럼, 컬렉션에도 지형적 요소가 여럿 숨어 있다. 앞서 언급한 ‘줌인과 줌아웃’ 개념이 중요한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퍼렐의 루이 비통’을 구성할 여러 요소를 처음 소개하는 컬렉션은 더더욱. 다양한 코드, 리벳, 버튼, 지퍼, 사이즈, 백의 셰이프 같은 자그마한 디테일까지 말이다.
멋들어진 비유 같지는 않지만, 앨범의 전체 톤을 예고하는 ‘오프닝 트랙’ 정도로 생각해도 될까?
아주 훌륭한 비유다. 어떤 ‘구조’가 있어야만 한다. 나의 첫 컬렉션은 정보 전달이 주된 목적이다. ‘나와 루이 비통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거야’ 같은 정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기 전, 루이 비통 하우스에 대한 생각은 어땠나?
루이 비통은 언제나 최고였다. 2003년 뉴욕 57번가의 루이 비통 매장에서 마크 제이콥스를 처음 만나 선글라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부터 그랬다. 그는 선글라스를 함께 디자인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와우, 그럼요! 니고도 이런 선글라스를 디자인했는데, 그가 함께해도 될까요?”라 답했다. 나처럼 음악 하는 사람에게 패션에 관련된 무언가를 창조할 기회가 주어진 최초의 사례로 기억한다. 단지 브랜드의 옷을 입거나, 그것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거나 하는 것 말고 말이다. 마크 제이콥스 덕분에 그 길이 열렸다. 아르노 패밀리 역시 이런 아이디어에 열려 있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지휘 아래 마조레 호수에서 열린 루이 비통의 2024 크루즈 쇼에 참석했다. 여성복을 총괄하는 제스키에르와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나?
제스키에르는 전설적 인물이다. 시간 날 때마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루이 비통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흡수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나는 학생의 자세로 하우스에 처음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컬렉션을 통해 내가 2월 14일부터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모두와 함께 나눌 생각이다. 내가 음악을 만들 때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우리가 지금 앉아 있는 스튜디오는 절대 실패할 일 없는 디자이너로 가득한 무기고와 같다. 저 문 너머에는 또 다른 디자인 스튜디오가 있다. 내가 음악을 디자인하는 스튜디오 말이다. 컬렉션을 준비하며 엄청나게 많은 곡을 녹음했다.
쇼의 사운드트랙을 당신이 작곡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될까?
그렇다. 사운드트랙 역시 쇼만큼 감성적일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 발생하지 않나.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래,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 운명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바람이 어떻게 불든 크게 개의치 않는다. 단지 이 순간에 감사하고, 흥분할 뿐이다.
본 기사는 <보그 비즈니스>에서 최초 공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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