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비전 프로가 패션에 끼칠 영향은?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주변 환경이 거대한 컴퓨터 스크린으로 변하고, 눈과 손은 컴퓨터 마우스로 변하는 마법. 최근 공개된 ‘애플 비전 프로’ 이야기입니다. 팀 쿡은 애플 비전 프로를 처음 소개하며 “디지털 콘텐츠를 현실과 혼합하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된다”고 말했는데요. 애플은 내년 초 출시될 비전 프로가 90만 대 이상 팔릴 것이란 야심 찬 전망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업계에서는 이미 애플 비전 프로와 공간 컴퓨팅이라는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토론이 활발한데요. 그렇다면 패션계에서는 어떨까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시장이 활성화된 이래 패션은 끊임없이 이를 활용할 방법을 모색해왔습니다.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는 2013 S/S 컬렉션에서 ‘구글 글래스’를 쓴 모델을 런웨이에 등장시켰고, 구글 글래스로 해당 컬렉션의 백스테이지 영상을 촬영했죠. 2019년에는 구찌가 스냅챗과 협업해 스마트 안경을 출시했고, 발렌시아가, 프라다, 톰 브라운 등은 메타에서 아바타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을 출시하며 지난해 초 불어온 메타버스 열풍에 탑승하기도 했습니다.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지난 3월에는 제2회 메타버스 패션 위크가 열리기도 했고요.
애플 프로 비전의 등장에 따라 패션 브랜드는 더욱 열렬히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의 세계를 탐구함은 물론, 소비자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며 좀 더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전망입니다.
디즈니는 애플과의 협업을 통해 애플 프로 비전으로 디즈니+의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요. 디즈니가 선보인 영상에는 미키 마우스가 평범한 거실에서 뛰노는 모습이 담겨 있었죠. 애플 프로 비전을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이 완전히 새롭고 개인적인 공간으로 변모했고요. 패션쇼 현장에 카메라를 설치하면 파리나 밀라노에 가지 않고도 거실 소파에 앉아 눈앞에서 쇼를 보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뜻입니다. 전통 방식의 런웨이 쇼에서 벗어나, ‘디지털 온리’ 쇼를 고려하는 브랜드 역시 생겨날 테고요.
공간 컴퓨팅이 상용화된 세계에선 쇼핑 역시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띨 겁니다. 이커머스 플랫폼은 ‘무한 스크롤’을 해야만 하는 현 구조에서 벗어나, 더 다이내믹하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소비자에게 제품을 선보일 수 있겠죠. 공간 컴퓨터로 정교한 아바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한 ‘가상 피팅’ 서비스를 도입하는 플랫폼 역시 출현할 테고요. 소비자들이 지닌 톱과 팬츠 사진을 찍은 뒤, 이를 애플 비전 프로에 3D 이미지처럼 저장할 수 있다면? ‘온라인 쇼핑’ 중 찾은 제품을 그 위에 투사하며, 보다 현명한 구매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겠죠. 반품과 환불 횟수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요.
그렇다면 오프라인 매장의 미래는? 사실 많은 브랜드가 이미 ‘오프라인 매장의 온라인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요. 베벌리힐스, 런던, 밀라노 등에 위치한 랄프 로렌 플래그십 스토어의 버추얼 웹사이트에서는 매장의 ‘온라인 투어’가 가능함은 물론, 판매 중인 제품 가격까지 모두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패션 브랜드를 위해 AR 및 VR 서비스를 제공하는 옵세스(Obsess)는 버추얼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사용자의 웹사이트 체류 시간이 61% 증가했고, 주문당 결제 금액 역시 26% 증가했다는 통계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공간 컴퓨팅의 탄생은 분명 오프라인 매장의 온라인화를 가속화하겠죠.
애플의 세계 개발자 컨퍼런스에 참석해 애플 비전 프로를 직접 착용해본 <BBC> 기자는 “애플 비전 프로가 ‘넥스트 아이폰’이 될 수도 있다”는 평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헤드셋 형태의 VR 기기가 성공을 거둔 사례가 없다는 점, 3,499달러라는 무시무시한 가격을 예로 들며 애플 비전 프로의 성공을 장담할 순 없다고도 말했죠.
애플 비전 프로처럼 전례 없는 기술을 도입한 기기가 직면하는 문제는 대부분 이렇습니다. 사용자를 절대적으로 늘리기 위해서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필수적이지만, 개발자와 브랜드는 사용자가 어느 정도 확보되지 않은 기기에 최적화된 서비스나 콘텐츠 제작에 투자할 이유를 찾지 못하죠. ‘콘텐츠’, ‘적당한 수의 유저’라는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하는 겁니다.
애플이 자사 게임 서비스 ‘애플 아케이드’의 100여 가지 게임을 애플 비전 프로에서 플레이할 수 있음을 발표한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초기 사용자층이 즐길 만한 콘텐츠를 제공하며 유저 베이스를 공고히 하고, 이를 토대로 더욱 다양한 외부 콘텐츠 개발자를 끌어오기 위한 움직임입니다. 당연하게도, 소파에 앉아 생생하게 ‘집관’하는 패션쇼 역시 자본이 풍부한 하우스 브랜드의 투자가 없다면 꿈만 같은 일입니다. 결국 공간 컴퓨팅이 세상, 아니 패션을 바꾸기 위해선 패션계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죠. 애플 또한 디자인에 유의해야 패션계를 바꿀 수 있을 겁니다. 우스꽝스러운 외양의 웨어러블을 쓰고 싶어 하는 ‘패션 피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 사진
- Courtesy Photos,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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