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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모르는 야한 영화

2016.03.15

뭘 모르는 야한 영화

요즘 한국 영화는 여배우를 벗기고 또 벗긴다. 주인공의 심리묘사를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여성의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격정 멜로는 조금도 아름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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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한국 극장용 상업영화의 노출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히 ‘격정 멜로’의 탈을 쓴 시대극이 그 흐름을 주도했다. <방자전>, <후궁: 제왕의 첩>, <미인도>, <인간중독>, 여기에 <순수의 시대>와 <간신>이 정점을 찍었다. 아마 제작진은 작가주의 감독들의 영향력 아래 메이저 배우들이 등장해 섹스 표현의 한계를 확장시킨 몇몇 걸작에 고무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후궁: 제왕의 첩>은 장예모의 <황후화>나 펑샤오강의 <야연>과 스토리, 미술, 베드신 연출 등 많은 부분이 겹친다. <인간중독>의 미장센, <순수의 시대>와 <간신>의 섹스를 무기 삼은 여성 암살자 캐릭터는 <색,계>와 중첩된다. 하지만 원전과 아류의 차이는 극명하다.

<순수의 시대>에서 여주인공은 방탕한 왕족에게 유린당하고 가족을 잃었다. 그녀는 복수를 위해 역심을 품은 왕자 이방원과 손잡고 경국지색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원수의 아비 김민재(신하균)와 사랑에 빠져 파멸에 이른다. 문제는 주인공들의 심리 묘사를 핑계로 동원된 높은 수위의 베드신이 관객의 관음증을 자극하는 것 외에 아무런 역할을 못한다는 점이다. 이 방면에서 가장 높은 명성을 얻은 <색, 계>에서도, 베드신으로만 온전히 인물들의 감정을 설명하려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레스토랑에서 첫 데이트를 하는 신, 감독은 매우 정교한 쇼트 분할로 배우들의 작은 떨림, 시선의 방향, 옅게 배어 나오는 땀방울까지 포착해냈다. 그리고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반면, 인물들의 심리를 디테일하게 묘사하기에 <순수의 시대>는 너무 바쁘다. 스타일리시한 액션과 에로티시즘, 정치 서사를 모두 욕심낸 탓이다. 폭력, 섹스, 대의는 남성판타지를 완성하는 삼위일체다. 멜로를 지향하는 척하지만 이것은 철저히 남자의 시각에서, 남자들을 위해 쓰인 영화인 것이다. 결국 여주인공은 조선판 슈퍼히어로인 김민재라는 캐릭터를 위한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

여배우가 아낌없이 몸을 던질 때, 시각적 자극에 즉각 반응하는 남성들과 달리 여성 관객들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만일 그 장면이 필연성을 확보하고 캐릭터에 대한 공감을 유도하지 못한다면, 그녀들은 오히려 여배우라는 외부 맥락에 관심을 갖게 된다. 배우의 가족들이 걱정되고 그녀들의 수치심이 염려되는 것이다. 나아가 그 수치심에 감정을 이입하는 경우도 생긴다. 물론 예외도 있다. 90년대 엘리트 남성 예술가들은 금기에 대한 저항을 빌미로 ‘비치(Bitch)’들에게 숭배를 보내곤 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나 <거짓말> 같은 영화를 떠올려보자. 그 역시 남성 판타지였고, 당시로선 파격적인 이 영화들의 노출 신을 보며 캐릭터에 공감한 여성 관객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주인공들은 ‘비치’였고, 관객들은 애초에 타자가 되어 그녀들의 행태를 관람하는 역할이었다. 파격적인 노출로 화제가 된 라스 폰 트리에의 <님포매니악>도 그랬다. 여성 색정증 환자의 기행을 그린 영화다. 이 역시 섹스 신의 필연성은 갖췄으되 감정이입은 불가능한 경우다. 반면 <순수의 시대>는 ‘순수한 사랑’이라는 멜로의 보편 정조에 기반한 영화다. 타자화를 의도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의미다. 무엇보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나 <님포매니악> 같은 작품은 섹스 신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완성도나 주제 의식, 표현 방식에서 관객을 매료시키는 지점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 배우는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저걸 찍었나’라는 외부 맥락에 대한 쓸데없는 근심, 그로 인한 수치심은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한 편의 문제작 <간신> 역시 남성 판타지의 삼위일체를 담고 있다. 영화의 스토리는 파국의 원인이 되는 임숭재(주지훈)와 단희(임지연)의 사랑을 납득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어김없이 여주인공은 ‘보는’ 존재가 아니라 ‘보여지는’ 존재에 머문다. 두 여배우의 동성 섹스 신에 <뽕>이니 <어우동>이니 하는 80년대 토속 에로물처럼 여배우 가슴 좀 보여주다 갑자기 물레방아 돌아가는 장면을 인서트하는 식의 해학 따위는 없다.

일명 ‘보카시(색을 흐리게 하여 경계를 없앤다는 뜻의 일본어)’ 처리된 음모 부위를 비롯하여 여배우들의 신체 표면 거의 대부분을 볼 수 있다. 사상 최초로 배우들에게까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이 돌아간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17분에 걸친 동성애 섹스 신은 두 여주인공의 심리적 결합을 위한 은밀한 의식이자 아름다운 육체적 교감으로 묘사되었다.그 신의 여러 쇼트에서 우리는 두 여자의 눈에 비친 서로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체위만 흉내 내서 될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순수의 시대>가 조선조 최고의 야심가 이방원의 계략이라기엔 터무니없이 조잡하고 억지스러운 미인계를 가져와 헛웃음을 자아냈듯, <간신> 역시 야사 수준의 산만하고 개연성 없는 스토리로 피곤을 유발한다. 그리하여 다시, 위부 맥락으로 향하는 관심을 붙들 수 없다.

여배우의 이미지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것에 민감하던 페미니즘 비평은 더 이상 한국에서 인기가 없다. 에두아르트 푹스의 말마따나, ‘역사에 영구히 적용되는 모럴의 기준’ 역시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노출은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할 전략이다. 영화 하는 사람들이, 더구나 남자 캐릭터만 잔뜩 나와서 총싸움하다 깡그리 죽는 액션영화가 아니라 멜로를 만든다면서 여성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색, 계> 와 <님포매니악>, <가장 따뜻한 색, 블루> 같은 아름다운 작품을 보면서 한국 영화인들이 얻은 게 고작 노출 수위에 대한 용기뿐이라는 점도 슬프다. 그들에게 <극장전>의 명대사를 들려주고 싶다. “당신도 재미 봤죠? 이제 그만 뚝!”

    이숙명(영화 칼럼니스트)
    에디터
    조소현
    란제리
    아장 프로보카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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