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뉴욕 2023’에서 만난 ‘스카이 캐슬’
‘프리즈 뉴욕 2023’이 열린 ‘더 셰드’. 그곳 8층을 디지털 아티스트 식스엔파이브가 천공의 성 라퓨타로 만들었다.
‘프리즈 뉴욕 2023’에서 만난 아티스트에게 이렇게 물었다. “최근에 화낸 적 있나요?” 아이보리색 피케 셔츠 사이로 천체망원경 문신이 있는 그가 사람 좋게 웃으며 답했다. “예술과 태권도를 한 덕분이죠. 무엇보다 제게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곧 명상입니다.” 그의 이름은 디지털 아티스트 식스엔파이브(Six N. Five). 자연과 건축에서 영감을 받아 3D 렌더링 등을 활용해 평온하고 서정적인 이미지와 영상을 구현해낸다. 식스엔파이브란 이름도 6시로 상징되는 일상의 압박에서 5분을 지나 창작과 명상, 예술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그는 아트 바젤, 바르셀로나 모코 뮤지엄, 스톡홀름 사진 미술관 등에서 전시했으며, 최근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11의 월페이퍼를 작업했다. 노트북을 열 때마다 그의 작품을 만나는 셈이다.
‘프리즈 뉴욕 2023’에서 식스엔파이브는 LG전자와 협업해 ‘어몽더스카이(Among The Sky)’ 시리즈를 선보였다. LG 올레드 TV를 디지털 캔버스 삼아 작품을 상영했고, 이 중 3점을 NFT화해 미국에서 선보인 NFT 아트 거래 플랫폼 ‘LG 아트랩’을 통해 판매한다. LG전자는 지난 2월 ‘프리즈 LA’에서 아티스트 배리 엑스 볼(Barry X Ball)과 협업해 NFT 작품을 선보였다. 식스엔파이브는 최신 기술로 자연적이면서 영적인 체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27개국 67개 갤러리가 참여한 ‘프리즈 뉴욕’의 부스를 뒤로하고 그의 천공을 멍하니 바라보는 관람객을 보면 성공한 듯싶다.
‘어몽더스카이’ 시리즈에선 푸른 하늘, 몽글몽글한 구름, 눈부신 빛 등이 펼쳐진다. 작품을 만들 때 단순한 것에서 출발한다. 이번엔 ‘하늘’이었다. 자연 소재를 오래 탐구해왔지만 하늘은 처음이었다. 나무, 건축처럼 땅 위의 것은 다뤘지만 이제야 고개를 든 것이다. 하늘에는 경계가 없다. 그 광활함은 인식의 한계를 넘어 신선한 여정을 의미한다. 나는 운 좋게도 디지털을 통해 원하는 것을 창조할 수 있기에, 나만의 구름을 모델링해보고, 태양과 구름을 특정 상황에 놓기도 하고, 구름 건물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호기심과 질문이 합쳐져 ‘어몽더스카이’가 나왔다.
이번 시리즈 말고도 ‘명상의 시간’이 떠오르는 차분한 분위기의 작품을 해왔다.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 혹시 고립된 자연환경에서 자랐나? 자연과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는다. 그 장엄함을 재해석하기 위해 15년간 여러 분야를 결합해왔다. 예를 들어 이번에 전시한 작품 ‘Outside’는 건축물이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에 얽히면서, 인간이 만든 세계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조화롭게 펼쳐진다. 무엇보다 내 작품의 기원은 명상과 평화를 추구하는 마음이다.
언제부터 명상을 해왔나? 가부좌를 트는 것만이 명상이 아니다. 작품을 만드는 여정이 곧 명상이다. 캔버스에 나무를 스케치하고 작품을 최종 수정하는 과정마다 나와의 대화로 시작해 명상으로 이어진다. 무언가를 창조하면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
창조 과정에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가 따를 텐데 고요한 명상이 가능한가? 세상에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전쟁, 경기 침체, 사회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무언의 압력을 매일 직면한다. 이 때문에 심신에 타격을 입고 관계를 망치기도 한다. 우리는 안식을 찾기를 소원하며 그 방법을 찾아나선다. 누군가는 약의 도움을 받고, 어렵게 휴가를 낸다. 나는 운 좋게도 이 직업을 찾아냈다. 예술 작업이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나를 평온에 들게 하면서도 성찰과 자아 인식의 순간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타인에게도 이런 느낌을 전할 수 있길 바란다.
단순한 이미지가 반복되기도 하지만, 달의 나들이를 담은 단편영화 같은 작품도 있다. 스토리텔링은 어떻게 하나? 작품마다 작업 방식이 다르다. 어떤 것은 정적 이미지에 가깝다면, 어떤 것은 짧은 애니메이션처럼 움직이기도 한다. 공통점이라면 단순한 도형과 기본적인 상황을 시작점으로 잡는다는 것이다. 관객에게 더 명확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달이 지는 모습처럼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을 가져온다. 하지만 익숙한 풍경을 그대로 가져오긴 싫다. 비틀어야 한다. 모양이나 색깔의 변형은 기본이고 의외의 움직임과 스토리텔링을 도입해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프리즈 뉴욕 2023’의 전시 디스플레이를 직접 구상했다. 영상 작품 옆에 대형 거울을 함께 배치한 이유는? 디지털과 물리적 세계, 현실과 가상,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경계를 다루고 싶다. 거울을 설치함으로써 관람객이 어디까지가 작품이고 어디까지가 거울 세계인지, 무엇이 현실의 연장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질문하기를 바랐다. 관람객이 보다 동적인 몰입의 경험을 했을 거라고 믿는다.
이번 전시 외에 애착이 가는 프로젝트는? 상업적인 협업 중에 꼽는다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11의 배경화면을 만든 것이다. 매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컴퓨터를 켜고 내 작품을 본다니 예술가로서 놀라운 경험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내가 탐구하고 싶은 영역을 전적으로 응원해줬다. 의뢰지만 의뢰가 아닌 것이다. 과거에 몇몇 업체는 나를 도구처럼 대했다. 모양과 색을 지정해주고 그대로 작업해오라는 식이었다. 말 그대로 재생산이었다. 더 이상 도구가 되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협업할 대상을 선택할 때 나의 창의적인 시각을 믿어주는지가 중요한 요건이다.
아티스트로서 달성하고 싶은 목표는? 이 직업이 세상에 유용한 이유 하나를 꼽는다면, 누군가에게 1분 정도의 평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영역을 계속 탐구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술은 발전하고, 모두가 얘기하는 인공지능 역시 미래를 바꾸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순이다. 이것들이 내게 영감을 줄 것이다.
AI 시대에 아티스트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역사를 거슬러보면 새로운 발견은 언제나 있었다. 그것이 처음 등장할 때 대부분 두려워했다. 계산기가 발명되자 사람들은 산수를 못하게 될 거라고 했다. 카메라가 등장하자 그림은 한물갈 거라고도 했다. CGI가 나왔을 때 사진가들은 자기 일을 뺏길 거라며 걱정했다. 하지만 화가와 사진가 모두 굳건히 존재한다. 내가 CGI로 작업한 작품을 보고 처음엔 다들 ‘나사(항공우주국)’를 보듯이 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아티스트가 AI를 가능성 있는 도구로 보고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 나는 새로운 기술을 예술적 목적의 도구로 쓰고 싶다. 기술은 목적에 따라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그간 인간 행동 때문에 많은 과학기술의 기본 원칙이 훼손됐다. 하지만 제대로 사용한다면 세상을 더 낫게 만들 것이다.
디지털 시대 이전에 태어났다면 어떤 예술을 하고 있을까? 정원사가 됐을 거다. 식물과 교감하는 직업이라면 뭐든 괜찮다. 지금 내 스튜디오에도 많은 식물이 있다. 컴퓨터 앞에서 오랜 시간 작업하다 중간중간 그들과 함께 휴식한다. 그래서 식물을 키운다기보다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러고 보니 식물 문신도 보인다. 천체망원경, 태권도라고 쓴 글자 등 의미 있는 문신이 많은 것 같다. 작은 스티커처럼 내 몸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삶의 다양한 순간을 새긴 것이다. 부모님께서 해주신 말씀, 아내와 아이를 가지려 노력할 때의 마음, 25년간 배운 태권도에 대한 추억, 꿈을 찾고자 하는 의미로 선택한 천체망원경 등이 있다.
작품도 사람도 평온한 비결은? 아이를 기르고, 집을 짓고, 스튜디오를 관리하고, 작품을 만들고, 어떻게 무리 없이 다 해내느냐고 사람들이 묻곤 한다. 예술 작업이 명상의 일환이어서인지, 25년간 태권도를 한 덕분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감정을 다스리고 균형을 맞추려 노력할 뿐이다.
이제 나도 예술과 태권도를 해봐야겠다. 찬성한다(웃음).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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