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럭셔리’를 트렌드라 할 수 있을까?
‘조용한 럭셔리’는 아마도 올해 패션계에서 가장 지겹게 사용되는 말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조용한 럭셔리란, 피비 파일로의 복귀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지금 ‘올드 셀린느’를 향한 뜨거운 관심과 1990년대에 대한 노스탤지어로부터 탄생한 ‘미니멀리즘의 아류’에 불과하다.
최근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수많은 ‘전문가’들이 조용한 럭셔리 트렌드에 부합하는 컬렉션을 분석하려 하고 있지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거대한 로고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실험적 디자인을 선보이는 컬렉션과 비교할 때 미니멀한 (혹은 미니멀이라는 탈을 쓴 지루한) 컬렉션은 대부분 ‘이야깃거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니멀 스타일은 테일러링 그리고 깔끔함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패션적 금욕주의’라 하면 적당한 표현일까?
반면 조용한 럭셔리는 패션 그 자체보다는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한’ 옷차림에 가깝다. 새하얀 수트 팬츠는 분명 시크하지만,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다. 간단한 산책을 즐기기도 힘들 정도로 불편한 ‘드라이빙 슈즈’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조용한 럭셔리는 옷을 만지고 옷과 함께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이나 인테리어에 더 가까이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니멀한 의류를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원단이다. 아무리 심플한 디자인일지라도, 최고급 캐시미어, 핸드 워싱 과정을 거친 울, 수십 년도 더 된 베틀로 짠 코튼으로 만들면 다르다. 이 부분이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브랜드들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차별점이다. ‘미니멀의 미학’을 비슷하게 베낄 수 있지만, 고급 원단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많은 이들이 조용한 럭셔리라 칭하는 브랜드들은 그 원단마저 베끼려 하고 있지만.
<보그>를 포함한 많은 매거진들의 웹사이트에서는 매일같이 조용한 럭셔리에 대해 다루지만, 런웨이에서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가장 최근 있었던 2024 S/S 컬렉션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미니멀 스타일을 선보인 브랜드는 없었고, 루이 비통의 2024 리조트 컬렉션에는 인어가 등장했다. LA에서 열린 샤넬의 컬렉션은 ‘바비코어’를 연상시켰고, 멕시코시티로 향한 디올은 프리다 칼로를 소환했다.
패션은 사회, 정치, 경제 등과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변하려는 습성을 갖고 있다. 바로 이것이 트렌드가 존재하는 이유다. 조용한 럭셔리란 사실 ‘트렌드’라는 단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미니멀리즘은 최근 재차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왜일까?
1980년대는 화려함과 글래머의 시대였다. 그리고 1990년대를 지배한 미니멀리즘은 그 반대급부였다. 캘빈 클라인의 슬립 드레스, 그리고 헬무트 랭의 멀끔한 수트는 모든 면에서 지아니 베르사체, 티에리 뮈글러의 화려함과 달랐다. 캘빈 클라인과 헬무트 랭이 미니멀리즘을 재정의하고 있을 때,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에르메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심플하지만 그 무엇보다 ‘럭셔리’한 옷들을 선보였다. 1990년대에 디플레이션이 시작함과 동시에 풍선처럼 거대한 볼륨의 스커트들 역시 ‘바람’이 빠지기 시작했다. 당시 미니멀리즘의 유행이 시의적절했던 이유다.
미니멀리즘 3.0이라 할까? 지금의 미니멀리즘은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문화에 대한 반작용이라 볼 수 있다. 충격적인 비주얼만 좇고, 불과 몇 분 전에 끝난 패션쇼에 참석한 셀럽들의 사진이 마구 돌아다니는 디지털 세상 말이다. 지나친 즉각성 때문에, 깊이 있는 아이디어들은 패스트 패션으로 변하고 옷들은 실제 가치가 아닌 ‘밈화’될 수 있는가 없는가로 평가받는다.
미니멀리즘 3.0은 우리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도록 해줄 것이다. 최고급 원단으로 제작해 심플하고, 소란스럽지 않은 옷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옷은 몇 년, 혹은 몇 개월 입다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평생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지속 가능성’이라는 키워드와도 잘 어울린다. ‘어른들’이 즐길 법한 미니멀리즘 3.0은 최근 청소년과 20대가 푹 빠져 있는 Y2K 스타일과도 대척점에 서 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세상에서는 심플함을 찾는 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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