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더랜드’는 배우가 살렸다?
<킹더랜드>를 보고 나면 헷갈릴 수도 있으니까 말해둔다. 지금은 서기 2023년이다. 재벌 상대 신데렐라 판타지 시대를 연 <사랑을 그대 품안에>(1994)로부터 30년이 흘렀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는 차인표가 사랑에 상처 입은 유학파 백화점 상속남으로, 신애라가 가난하고 해맑은 백화점 직원으로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다. 그러고 보면 한국 신데렐라 로코물은 백화점과 호텔 상속자를 무척 좋아한다. B to C 업종이라 별도 취재를 안 해도 그럴듯하게 묘사할 수 있고, 촬영 협조 받기도 수월하고, 상속남과 서민녀의 접점을 만들기도 쉽고, 화려한 비주얼을 구현하기도 좋아서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지만 말이다. 하여간 이 드라마가 나온 1994년은 절묘한 시기였다. 한국전쟁 후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독한 촌놈들의 신화가 저물고, 그들의 올드머니를 물려받은 2·3세가 존재를 드러내던 시기다. 높은 경제성장률과 역동적인 사회 분위기는 드라마 트렌드도 변화시켰다. 역경과 비애의 정조가 옅어지고, 간간이 로맨틱 코미디도 시도되었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는 육지의 왕자님을 향해 무모한 사랑을 품은 인어공주가 반드시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필요는 없다는 새로운 서사적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내 벌어진 경제 붕괴, 암울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재벌 상대 신데렐라 서사가 즉각 K-드라마의 표본으로 정착되지는 못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신데렐라 드라마가 코미디를 업그레이드하고 화려하게 부활한 건 2004년이었다. 그 사이 사회의 패러다임은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IMF 구제금융 시기를 거치면서 돈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자 정체성의 핵심으로 승격했고, 그것을 향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게 더 이상 배덕으로 치부되지 않는 세상이 열렸다. <파리의 연인>(2004)은 판타지를 통한 현실 도피, 노력 없는 신분 상승, 이성의 절대적 사랑을 꿈꾸는 일을 나약하거나 무지하거나 부끄럽거나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분석하지도 않았다. 너무 노골적으로 그것을 인정해버린 나머지 백만 가지 비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교육 수준을 떠나 온 나라 여자들이 거기 위로받았고, 마침내 재벌 왕자님과의 신데렐라 로코물이 K-드라마의 중요한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다시 20년이 흘렀다.
그 사이 세상은 또 변했다. 부패한 사회 엘리트를 응징하는 정의로운 서민 영웅 판타지가 K-드라마의 주력 상품이 되었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사회학과 페미니즘이 대중의 일상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대기도 하다. <킹더랜드>가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와 불시착해버린 곳이 여기다. <킹더랜드>는 30년 전, 20년 전 드라마와 놀랍도록 흡사하다. 첫 주부터 클리셰 범벅이라는 평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시청률이 9%대를 돌파했다. 이를 두고 “성공한 클리셰는 클리셰가 아니다”라는 명언까지 나왔다(스포츠경향, 6월 29일, [스경연예연구소]). 세상은 변해도 사람들의 근본 욕망은 변함없다는 방증일까? 글쎄.
한국 로맨틱 코미디의 오랜 팬으로서도 이 드라마를 보는 심경은 복잡하다. 재벌남과 캔디녀 로코물이야 최근에도 꾸준히 제작되었다. 그런데 유독 이 드라마가 시대착오적이라 느끼는 건 채널과 시간대, 주연들의 이름값 때문에 주목도가 높기도 하고, 로맨스 외의 디테일이 약해서 시선이 한군데로 집중되는 탓도 있다. 최근 한국 드라마가 뭐 하나라도 새로운 걸 찾으려 고군분투할 때 이 정도 주목도를 갖는 드라마가 대놓고 클래식한 노선을 택한 게 충격이다. 시청자 입장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문제는 그럼에도 이게 은근히 재밌다는 사실이다.
<킹더랜드>에도 시대상을 반영한 흔적은 있다. 천사랑(임윤아)과 친구들은 각각 호텔, 항공사, 면세점에서 일한다. 그들의 직장을 비추는 과정에서 감정 노동자에 대한 손님들의 언어폭력, 학력 차별, 보디 셰이밍, 선후배 군기 문화 등 사회문제가 거론된다. 다을(김가은)이 중간 관리자가 되자 직장 문화 개선에 나서는 모습은 요즘 젊은 여성이 열망하는 모범 언니상에 부합한다. 그러나 많은 순간 이 드라마의 문제 해결 방식은 계급 문제를 돌파하는 대신 판타지로 회피해버리는 한국형 신데렐라 로코물의 전략을 답습한다. 천사랑이 막무가내로 방을 업그레이드해달라는 손님 앞에서 쩔쩔매면 구원(이준호)이 나타나 도와주고, 승무원 평화(고원희)에게 살쪘다고 구박하는 상사는 연하남 이로운(김재원)이 에둘러 면박 준다. ‘2년제를 나왔지만 4개 국어를 하고 소믈리에 자격증까지 있는 만능 호텔리어’ 천사랑은 동료들의 학력 차별에도 승승장구한다. 교육 기회 불평등이 평생의 차별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실현 불가능한 판타지를 통해 개인의 능력 차원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다.
직장 생활을 얼렁뚱땅 묘사해 회사원들 ‘뒷목 잡게’ 만드는 한국 로코의 고질병도 여전하다. 아무리 구원이 천사랑에 비해 미숙하고 이기적이어도 호텔리어에게 웃지 말라 윽박지르고, 난감한 질문 좀 받았다고 라이브 쇼에서 이탈하고, 회사 홍보 영상을 찍는데도 카메라 앞에서 심통을 부리는 건 납득이 안 간다. 그 난동이 별 탈 없이 마무리되는 건 더더욱 의아하다. 승무원 평화는 어째서인지 자기 업무의 기본인 짐 싣기도 못해서 남자 동료의 도움을 받는다. 승무원과 면세점 판매원 등 여초 직군을 공사 구분 없고 시기, 부조리, 똥군기가 난무하는 ‘여적여’ 집단으로 묘사하는 것도 안타깝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배우들이다. 로맨틱 코미디는 결국 캐릭터의 매력에서 승부가 갈린다. 캐릭터의 매력을 만드는 건 배우의 외모나 연기일 수도, 각본일 수도, 연출일 수도 있다. <킹더랜드>의 경우는 배우들의 지분이 크다. 임윤아와 이준호는 단정하고 성실한 이미지를 가진 스타들이다. 그래서 천사랑의 건강함이 설득력 있고 구원의 무리수가 밉지 않다. 둘 다 코믹 타이밍이 좋고, 화면에 등장하면 즉각 산뜻한 느낌을 줘서 보는 재미가 있는 배우들이다. 작품의 성격과 잘 맞는다. 둘 사이의 균형도 좋다. 할 말 못할 말 다 하는 능청스러운 비서 역 안세하, 육아 때문에 클럽 못 다니는 한을 키즈 카페 동요에 맞춰 춤추는 걸로 푸는 천사랑의 친구들도 작품에 아기자기한 볼거리를 더한다. 중반 이후 비중이 커질 것으로 보이는 구원의 누나이자 경쟁자 역 김선영 배우는 무게감이 돋보인다.
각본도 허술하긴 하나 전개가 빠르고 연출이 발랄해서 지루하진 않다. 문제점이 너무 빤히 보이는데 그걸 감추거나 피할 의지가 애초에 없었던 것 같으니까 진지하게 비판할 의지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건, 투덜거리면서 보는 드라마다. 때로는 그 투덜거림 자체가 유희다. 김순옥, 임성한의 작품을 볼 때도 그렇지 않나. 여기선 ‘서기 2023년에 이게 맞나, 이래도 되나, 이걸 왜 보고 있나’ 자괴감이 들 때쯤이면 임윤아가 등장해서 천상의 미소를 짓고 이준호가 앙탈을 부리고 천사랑과 친구들이 춤을 추고 승무원 연하남이 돌직구 고백을 한다.
결국 중요한 건 재벌남 만나 신분 상승하는 신데렐라 판타지가 아니다. 새롭냐 아니냐도 아니다. 정치적, 윤리적으로 옳으냐 그르냐도 아니다.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은 시청자의 단 한 가지 요구는 재미다. 더도 덜도 말고,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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