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 로비, 아메리카 페레라, 전소미에게 ‘핑크’란?
<보그>를 위해 함께 셀카를 찍은 아메리카 페레라와 마고 로비 그리고 전소미. 촬영이 끝난 후 아메리카는 K-팝 아티스트 소미에게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소미는 아메리카와 마침 생일을 맞이한 마고에게 ‘Birthday’가 수록된 자신의 앨범 <XOXO>를 선물로 건네며 세 사람의 만남은 행복하게 마무리됐다. 세 사람의 인터뷰 영상은 <보그>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 <바비>에서 핑크는 어떤 의미인가요?” 셀프 포트레이트의 핑크색 미니 드레스에 로저 비비에의 깜찍한 샌들을 매치한 전소미, 바비코어 룩으로 무장한 그녀가 영화 <바비> 홍보를 위해 내한한 ‘바비’ 역의 마고 로비(Margot Robbie)와 ‘글로리아’ 역의 아메리카 페레라(America Ferrera)에게 물었다. K-팝 아티스트를 만나고 싶었던 마고와 아메리카를 위해 남다른 바비 마니아인 소미가 선뜻 인터뷰어로 나서며 <보그>가 주선한 만남이었다. “핑크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요(Pink is Everything)!” 아메리카가 먼저 답하자 마고가 거들었다. “핑크는 어디에나 있지요(Pink is Everywhere)!” 세 사람은 핑크에 푹 빠져 있었다.
금발의 스트레이트 헤어에 핫 핑크 베르사체 미니 드레스 차림으로 <보그> 카메라 앞에 선 마고 로비는 내한 일정 내내 핑크 패션을 고수했다. 모스키노 재킷과 스커트, 위트 넘치는 하트 선글라스를 착용한 공항 패션에서부터 영등포 타임스퀘어의 핑크 카펫을 밟을 때 입은 수트와 시폰 드레스, 언제나 그녀 손에 들린 앙증맞은 미니 백까지 전부 핑크색이었다. 물론 마고는 바비코어 룩의 핵심은 핑크가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오늘 아침 그레타 (거윅) 감독님이 정말 핵심적인 이야기를 했는데요. 바로 ‘그거 너무 예쁘다’라고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특별한 아이템이라면 그것이 바비코어 룩의 핵심이라는 사실이죠!”
핑크는 21세기에 가장 많은 풍파에 시달린 색 아닐까. 여자아이들이 유독 좋아했던 이 사랑스러운 컬러는 여성에 관한 온갖 편견을 허물어뜨리자는 사회적 움직임과 함께 ‘여성스러운 색’에서 ‘여성이 벗어던져야 할 색’이 되어갔으니 말이다. 영화 <바비>는 그런 핑크를 전면에 내세운다. 일단 바비가 사는 ‘바비랜드’부터가 핑크색 천지다. 세트장을 짓기 위해 엄청난 양의 핑크색 페인트를 쏟아붓느라 전 세계 핑크색 페인트 공급에 차질이 생길 정도였다. 아메리카가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소미에게 말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워너 브라더스의 오피스를 방문했을 때 거기에 ‘핑크 룸’이 있었어요. 어떤 핑크가 바비랜드에 어울리고, 어떤 핑크는 존재하면 안 되는지 세심하게 기획하기 위한 것이었죠. 처음 세트장에 갔을 때 어떤 기분이었냐고요? 상상력 넘치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가 몰려왔어요. 핑크라는 컬러가 없으면 바비는 존재할 수 없어요.” 마고가 말을 이었다. “바비랜드에는 흰색이 존재하지 않아요. 흰색처럼 보이는 것도 자세히 보면 아주아주 창백한 핑크랍니다.” 세트장을 허물지 않고 앞으로 팬들이 방문할 수 있게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논의 중이라고 마고가 귀띔하자 소미가 화답했다. “그런 테마파크가 있다면 가지 않을 수가 없죠!”
사실 핑크는 기분 좋은 초대장일 뿐이다. 바비의 여정에는 반전이 존재한다. 마고가 설명했다. “화려하고 매혹적인 바비랜드에서의 하루하루는 완벽하게 흘러가요. 매 순간 상황과 장소에 맞게 완벽한 차림으로 등장하는 바비는 친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매일같이 댄스 파티에도 가죠.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죽음을 상상하게 된 바비가 현실 세계(Real World)로 향하며 이야기가 한층 깊어져요. <바비>는 동화 같은 장면으로 가득한 영화지만 삶에 대한 진중하고 철학적인 생각을 부추기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바비라는 콘텐츠가 지닌 잠재력을 확신한 마고는 2018년, 바비 인형을 제작한 회사 마텔(Mattel)의 신임 CEO 이논 크리즈(Ynon Kreiz)를 찾아가 남편 톰 애컬리(Tom Ackerley)와 함께 운영하는 제작사 럭키챕(LuckyChap)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최근 공개된 <보그 US> 커버 인터뷰에서 마고는 제작자로서 고민한 지점에 대해 털어놓았다. “바비라는 브랜드가 이어온 60년의 유산을 기리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세상에 바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는 걸 인정해야 했죠. 그냥 단순히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바비를 혐오하고, 강렬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 말이에요. 영화에서도 그 부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어요.” 곧바로 마고는 <레이디 버드>와 <작은 아씨들> 등 매력적인 여성 중심 서사를 탄생시킨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을 감독으로 캐스팅했고, 그레타는 노아 바움백(Noah Baumbach)을 바비 프로젝트에 끌어들였다. 그리고 그레타와 노아는 마고의 표현에 따르면 ‘천재적인’ 각본을 완성했다.
<바비>의 인물 포스터는 무려 24종이다. 대통령 바비, 의사 바비, 유명 작가 바비, 인어 바비… 영화에는 수많은 바비가 등장한다. <보그 US> 인터뷰에서 그레타는 마텔을 방문했을 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제각각의 인형이 ‘바비’라는 하나의 이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고 회상했다. “그 인형들이 전부 바비고, 바비가 그 모두예요. 철학적 관점에서 아주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죠. 복수의 바비들이 우리가 지닌 다양한 자아로 느껴졌거든요.” 그러면서 그레타는 유쾌하고, 발랄하고, 자신감 넘치던 미국 사춘기 소녀들이 어느 순간 외부의 기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개성 있게 행동하기를 멈춰버린다고 지적했다. “영화에서 존재론적 위기에 처한 바비가 친구들로부터 ‘너, 그거 고장 난 거야’라는 말을 들을 때처럼 말이죠. 자유분방하던 소녀들이 어느 순간 ‘내가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머뭇거리게 되는 거예요.”
마고가 연기하는 바비는 매력적이고 대담하며 모험을 즐기는 존재다. 판타지에 가까운 바비랜드의 핑크빛이 사라진 현실 세계에서도 바비의 존재감은 강렬하다. 바비가 과연 끝까지 자기만의 핑크빛을 사수할 수 있을지는 영화를 봐야 알 수 있겠지만 바비가 ‘켄(라이언 고슬링)’과 함께 자신만의 여정을 낙천적으로 이끌어갈 것이라는 건 예고편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메리카가 연기하는 인간 글로리아는 현실 세계에서 바비와 강력한 유대감을 쌓으며 나중에는 함께 바비랜드로 향한다. 그리고 아메리카의 말에 따르면 그 선택은 바비와 글로리아 모두에게 변화를 가져온다. 아메리카는 확신했다. “<바비>는 당신을 웃고, 울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 영화예요. 환상적인 풍경과 시간 속에서요.”
<보그> 영상 인터뷰에서 놀랍게도 마고와 아메리카는 어릴 적 바비를 갖고 논 적이 거의 없다고 털어놓았다. 호주 골드코스트(Gold Coast)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마고는 그보다는 모래성을 쌓거나 장난감 트럭을 갖고 노는 쪽을 좋아했다. 반면 소미는 완전히 ‘바비 걸’이다. 바비에 대한 ‘팬심’으로 흔쾌히 인터뷰어로 변신한 소미는 바비 파우치와 포장지도 뜯지 않은 키 체인, 1962년에 제작된 한정판 바비 접시, ‘켄’이라고 적힌 파자마 티셔츠 등 자기만의 ‘바비 컬렉션’을 마고와 아메리카 앞에 정성스럽게 늘어놓았다.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마고가 말했다. “바비를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할 거예요. 팬이라면 반갑게 알아챌 만한 이스터 에그가 곳곳에 숨어 있거든요.” 바비 인형과 함께 성장한 소미와 바비가 지닌 매력에 대한 확신으로 2023년 버전의 판타지를 완성한 마고 로비와 아메리카 페레라. 저마다의 이유로 바비와 사랑에 빠진 세 여자의 이야기가 꾸준히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핑크는 꿈과 용기, 희망과 사랑이자 그 모든 것이다. 그리고 핑크빛 세상은 여지없이 아름답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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