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동시대 대중문화예술을 이야기하다 #6

2023.08.09

동시대 대중문화예술을 이야기하다 #6

이제 동시대 대중문화예술의 출발은 아시아다. 한국, 일본, 대만, 홍콩,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의 쿨 키즈!

MILLI

힙합플레이야(Hiphopplaya) 페스티벌은 한국에서 가장 큰 힙합 페스티벌 중 하나다. 올해도 4월 29~30일 이틀간 성공적으로 열렸다. 이 공연 중 눈에 띄는 아티스트가 있었다. 비비와 합동 무대를 펼치고 타이거 JK가 공연할 때는 관객이 되어 열심히 축제를 즐기고, 무엇보다 페스티벌 라인업 중 유일한 외국인인, 태국 아티스트이자 래퍼 밀리(MILLI)다.

밀리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270만 명이다. 그는 현재 태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젊은 인플루언서다. 밀리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린 건 그녀가 참여한 노래 ‘Mirror Mirror’다. 스트레이키즈(Stray Kids)의 창빈과 함께 한 이 노래에서 밀리는 랩 스킬뿐 아니라 자기만의 매력을 드러내며 많은 팬을 확보했다. “‘Mirror Mirror’를 통해 저를 처음 안 분이 많아요. 저는 모든 노래에 자신을 담아요. 만약 지금 한 곡을 꼽으라면 ‘Welcome’을 소개할게요. 직접 겪은 감성적인 사랑, 트라우마까지 담았죠. 이 곡은 걸 그룹으로서도 처음이었어요.” 걸 그룹이란 의미는 ‘Welcome’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알 수 있다. 걸 그룹처럼 분한 그녀의 재능을 볼 수 있다.

밀리는 2002년생이다. 어린 나이지만 그는 일찍부터 아티스트의 길을 준비했다. “어릴 때부터 오디션을 많이 봤지만 합격한 적 없었어요. 열여섯 살 때 <더 래퍼(The Rapper)>(태국의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종 라운드까지 진출했죠. 방송에 나온 모습을 보고 지금 제가 소속된 레이블에서 연락이 왔어요. 비슷한 시기에 음악대학에서 장학금도 받았죠. 그때나 지금이나 노래하고 춤추고 즐겁게 놀고 창의력 발휘하는 걸 좋아합니다.”

밀리는 방콕에 살고 있다. 환경은 삶과 예술에 영향을 미치기에 당연히 방콕이라는 도시는 밀리에게 깊이 자리한다. “항상 실제 겪은 일을 노래하기에 유년을 보낸 공간이 음악에 차지하는 지분이 크죠. ‘Homework’라는 노래에서는 학생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기대와 압박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지치는지 말하죠. 당시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지만 옆집 애들이 듣고 엄마에게 말할까 봐 혼자 조용히 울었어요. 정말 ‘아시아스러운’ 경험 아닌가요?”

최근 아시아 국가의 힙합과 팝이 점점 더 주목받고 있으니 아시아인으로서 일종의 책임감도 느낄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일부러 아시아적인 것을 노래에 넣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없어요. 제 얼굴이나 억양만으로도 아시아인이라는 것을 알 테고, 노래에 담는 제 경험이나 가사도 이미 자연스럽게 아시아적이잖아요. 저는 저라는 존재만으로도 이미 아시아인이고, 그 점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밀리는 지난달 슈가의 방콕 콘서트를 관람하곤 인스타그램에 울먹이는 영상을 올렸다.다음은 K-팝을 사랑하는 한 소녀의 고백이다. “7학년 때부터 K-팝을 좋아했어요! 지금은 아미(ARMY)입니다. 매년 친구와 ‘MAMA 어워즈’를 봐요. 그 전에는 K-팝 커버 댄스 그룹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몇몇 아이돌의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봤어요. 방탄소년단, CL, 현아, 제이팍, 바비, 미노, 키스 에이프, 하온, 릴체리, 골드부다 등의 음악을 좋아했고, 지금은 식 케이와 pH-1에 푹 빠져 있어요!” 아시안 아티스트 간의 영향력 주고받기는 당분간, 아니 오래 계속될 것이다.

YOUNGSHIN KIM

플라워 디자이너 김영신은 스스로를 ‘플라워 히피’라고 정의한다. “록 페스티벌에서 쓰려고 화관을 만들다가 장난스럽게 떠오른 말이에요. 삶과 꽃에 대한 저의 태도가 딱 히피더군요.” 타인의 기준과 유행이 아니라 감정을 따르고, 계절과 풍경을 만끽하며 살겠다는 결심으로 김영신은 플로리스트가 됐다.

그녀가 인스타그램 피드에 종종 업로드하는 몸통만 한 꽃다발은 여리고 가냘픈 들꽃만으로 구성하거나 구불구불하게 휜 가지와 줄기까지 그대로 살려 정원을 통째로 안은 인상을 준다. “도시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예전엔 꽃을 만지기만 해도 자연을 느끼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제주에 자주 오가며 관찰해보니 야생에서는 풀이 피어 있는 방식이 제각각이더라고요. 내가 꽃의 극히 일부만 보고 사랑했구나, 깨달았죠. 그때부터 인위적인 절화 형태를 지양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기로 했어요.”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이나 야생에서 뚝심 있게 자라난 풀은 언제나 김영신을 매혹한다. 그리고 우연한 풍경은 즉시 영감이 되어 그녀의 손에 의해 서울 어딘가에 재현된다. 진(Gin) 브랜드 탱커레이 행사장에 길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노란 삼잎국화로 싱그러운 여름 정원을 만들었고, 아르마니 팝업 스토어에는 팜파스 그라스, 갈대, 억새 등으로 제주의 가을 들판을 옮겨놓았다. 김영신은 지난해 진행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크로스로드(Crossroads)’ 프로젝트 시즌 2가 조명한 12명의 여성 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자신의 영감을 나눴다.

경리단길에 자리한 오블리크 플라워 디자인은 그녀의 보금자리다. 가장 싫어하는 날은 어버이날과 성년의 날. 카네이션과 장미는 죄가 없다. 그저 같은 시기에 잔뜩 무르익은 아름다움을 뽐내는 다른 꽃을 놓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같은 이유로 꽃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은 여름엔 아예 작업실 문을 닫고 제주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지낸다.

그녀는 꽃으로 디자인할 때 만개한 꽃뿐 아니라 용도를 잃어버린 꽃, 잘린 줄기나 가지, 시든 잎사귀도 즐겨 활용한다. 꽃으로 ‘Young Forever’ ‘Have Fun’ ‘Flower Power’ 형태의 그래픽 아트를 만들어 메시지를 전하거나, 액세서리로도 만든다. 다소 엉뚱하면서도 창의적인 김영신의 작업은 전 세계 플라워 디자이너 86인을 소개한 파이돈 출판사의 아카이브 북 <Blooms>(2019)에도 담겼다. “파이돈 편집장의 이메일을 받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플라워 디자이너로는 유일하게 소개돼 그 책이 나오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진 않더라고요(웃음).” 꽃처럼 밝은 미소로 유쾌한 농담을 던진 그녀는 미래를 치밀하게 계획하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지금 이 시각 김영신의 삶의 이슈는 제주의 자연에서 보내게 될 여름이다. 끈질기게 앞으로의 행보를 묻는 질문에 그녀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대책 없이 행복한, ‘크레이지’한 꽃을 만드는 것. 꽃을 꽃답게 쓰는 것이에요.”

SINAE YOO

영상, 조각,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아티스트 유신애는 극한의 경쟁 사회에서 스스로를 착취하는 지경에 이른 현대인의 초상을 들춘다.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해석이 아니라, 요즘 세대에 익숙한 서브컬처나 전사 이미지, 피규어, 패러디같은 형식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통해서다.

‘Petrichor’ 시리즈에 속한 영상 작품 ‘Petrichor’(2019)는 강렬한 소음을 불러일으킬 때까지 자동차를 진동시켜 유리창을 깨뜨리는 ‘윈도우 플렉싱(Window Flexing)’ 문화를 소재로 한다. “볼티모어에 살 때 알게 된 극단적인 남성주의 사회에서 종종 하는 놀이예요. 자신에게 손해를 입힐 만큼 과격한 행위로 스스로를 증명하는 것이죠.” 그러나 곰곰이 성찰해보니 존재감을 증명하기 위한 불안에 시달리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소비하고, 그러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 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서글픈 현실은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제2회 프리즈 서울의 ‘포커스 아시아’ 프로그램에서 소개될 유신애의 새로운 페인팅 작품은 그런 의문에 대한 작은 힌트가 될 것이라고 그녀가 답했다.

2017년부터 시작된 또 다른 시리즈 ‘Guilt Trip’의 멀티채널 비디오 설치물에는 개업식 내레이터 모델, 인형 탈을 쓴 전단지 알바생, 불판 위의 낙지 등 죽지도 살아 있지도 않은 생물이 등장한다. “한계를 뛰어넘도록 몰아붙이는 상황과 열심히 살면서도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탈진 상태를 표현해보고자 했어요.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들을 동시에 해내야 하잖아요. 자발적으로 근면하고 성실하다 하더라도요. 이 시스템 자체가 끊임없이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외국에서 활동하며 인스타그램으로 검색한 한국 이미지 가운데 불쾌하면서도 ‘웃픈’ 장면을 수집해 작품 소재로 활용했다. 그리고 비트 메이커 해피 하드코어와 모션 그래픽 아티스트를 섭외해 아케이드 게임처럼 눈을 뗄 수 없는 영상 작품을 완성했다.

한국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스위스에서 예술을 공부한 유신애는 앤트워프에서는 패션을 공부했다. 폭넓은 커리어를 일궈온 데서 유추할 수 있듯이 관심사가 워낙 다채롭다. 패션부터 현대 철학, 온라인 커뮤니티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모두 그녀의 레이더망에 걸쳐 있다. 요즘 그녀의 가장 큰 관심사는 직접 이끌고 있는 시 낭독 모임 ‘퍽커리 포에트리 리딩 그룹(F**kery Poetry Reading Group)’이다. 작업을 준비하며 알게 된 작가들과 예술에 관심 많은 이들이 모여 특정 주제에 대한 생각을 SNS에 짧은 시로 올리고, 오프라인 모임에서 즉흥시도 읊는다. 조금씩 입소문이 난 모임은 코끼리 클럽과 카바 라이프 사무실, 프리즈 서울의 무대인 코엑스의 ‘강남스타일 동상’ 앞 등 다양한 공간을 무대로 결집하고 있다. 이들이 거부하는 유일한 무대가 있으니 바로 갤러리. “아티스트라는 호칭과 하얀 방(화이트 큐브)이 주어지면 어쩐지 멋있는 걸 보여줘야한다는 부담이 생기죠. 퍽커리 포에트리 리딩 그룹은 날것 그대로의 생각을 즉흥시라는 형식으로 자유롭게 쏟아내는 자리거든요. 불경한 이름에 버금가게 사회와 예술계, 서브컬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시가 많아 온라인 계정은 비공개로 운영하고 있어요.”

남다른 통솔력과 실천력의 소유자인 유신애는 올 초 뜻을 같이하는 예술가들과 함께 ‘믹 얼라이언스(Meek Alliance)’라는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Meek’은 야망 없고 유순하다는 뜻의 단어다. 이 동맹 안에서 뿔뿔이 흩어진 작가들이 서로 작업 소식을 공유하고 함께 전시를 여는 등 끈끈하게 협업한다. “쫓기듯이 강박적으로 이어가는 예술 프로젝트가 아니라 친구들과 하고 싶은 작업이 있을 때만 움직여요.” 야망 없이 살아가겠다는 야망.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스스로를 파괴하는 현실을 고찰해온 유신애가 찾아낸 돌파구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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