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과 불안함이 공존했던, 2023 가을 꾸뛰르 리포트
꾸뛰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두 가지다. 빼어난 수공예 기법을 뜻하는 ‘메티에(Métier)’, 그리고 시간. 디자이너들과 아틀리에 장인들은 매 시즌 수십, 수백 시간을 들여 시대의 여성상을 꾸뛰르 피스에 투영한다.
2023 가을 꾸뛰르 런웨이에는 다양한 모습을 한 여성들이 등장했다. 끝 모를 아름다움을 표현한 룩은 물론, 몸매 불안감에 관한 고민이 담긴 룩이 혼재되어 있었다. 장 폴 고티에 컬렉션에서는 미사일을 닮은 ‘콘 브라’가 등장했고, 아르마니 프리베에서는 장미 모양의 뷔스티에 드레스가 등장했다. 성 캐서린의 검을 차고 전장에 나선 잔 다르크(발렌시아가 컬렉션에는 ‘잔 다르크 드레스’가 등장하기도 했다)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여성상을 그려나간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나체의 여성은 늘 경외의 대상인 동시에 위협적인 존재였다. 누군가에게는 순결하지 않은 ‘원죄’ 그 자체이기도 했다. 너무 구시대적으로 들리는가? 낙태 합법화 등에 대한 논의가 지금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한쪽에서는 여성의 신체 자유권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젠더 이분법과 ‘여성성’에 대한 이의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여성성이란 타고나는 것일까? 후천적으로 기를 수 있는 것일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누군가의 성별을 판단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들 말이다.
여성과 성에 관한 것뿐 아니라, “무엇이 진짜일까?” 역시 지금 시대를 관통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번 꾸뛰르 무대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의 흔적 역시 찾아볼 수 있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스키아파렐리, 톰 브라운 그리고 장 폴 고티에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트롱프뢰유 데님과 ‘가짜 누드’를 선보이며 보는 이들 역시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게끔 했을 뿐이다.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은 어떨까? 몇몇 디자이너는 몸의 형태는 물론, 자아마저 숨겨버릴 정도로 거대한 옷을 선보이며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이자 화가로 활동했던 루시안 프로이트를 레퍼런스 삼은 뎀나는 정반대 선택을 했다. 발렌시아가의 컬렉션에 등장한, 거센 바람에 휘날리는 듯한 모양의 코트와 스카프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발렌시아가 컬렉션에는 볼륨감 넘치는 드레스 역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몸매 불안감이라 해야 할까? 세계를 뒤덮은 바이러스는 친밀감, 누군가와 물리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공포심을 증폭시켰다. 때로는 갑옷 같았던 발렌시아가의 거대한 드레스들은 일종의 ‘접근 금지 명령’처럼 보였다. 그뿐일까? ‘NO!’라는 문구가 크게 쓰여 있던 빅터앤롤프의 드레스는 미투 운동에 대한 지지 메시지와 같았다.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빅터앤롤프 쇼에 등장한 모델들은 전부 로봇처럼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이들의 워킹이 달콤한 꿈 같았는지, 혹은 악몽에 가까웠는지 판단하는 것은 오로지 보는 이들의 몫이다. 몇몇 모델은 머리 없는 마네킹으로부터 공격받았다. 멀끔한 수트를 입고 타이를 하고 있는 마네킹들은 가부장제를 상징하는 듯했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공포는 패션계에도 존재한다. 발렌시아가, 알렉상드르 보티에 등이 선보인 갑옷과 같은 룩들은 이 공포심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알렉상드르 보티에는 온갖 소음과 냉혹한 현실에 치인 탓에 자신의 초심을 찾고 싶었다고도 말했다.
로마 태생인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그리고 로마를 대표하는 하우스 펜디를 이끄는 킴 존스 역시 과거로 돌아가고자 했다. 초심을 되새기기 위해 이들이 참고한 것은 다름 아닌 그리스 로마 신화. 몸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가는, 클래식한 드레스들은 그 어떤 옷보다 ‘인간적으로’ 보였다. 물론 이들이 시도한 근원, 그리고 기본으로의 회귀는 절대 순식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가장 간단한 것이 가장 복잡하다. 꾸뛰르에서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숨기는 것이다”라고 말한 피엘파올로 피촐리의 한마디만 봐도 이는 자명하다.
샤넬과 발렌티노의 컬렉션 또한 심플하고 매우 일상적이었다. 샤넬의 쇼에서는 한 모델이 버지니 비아르의 자매가 키우는 리트리버를 산책시켰고, 발렌티노 컬렉션의 오프닝을 장식한 것은 흰 셔츠와 비즈 장식의 데님을 입은 카이아 거버였다. 이 룩들은 1980~1990년대의 스트리트 포토 속 한 장면 같았다. 이는 꾸뛰르가 꼭 기발하고 비현실적일 정도로 화려할 필요는 없다는 증거다. 우리의 일상 역시 충분히 꾸뛰르가 될 수 있다.
‘메티에’란 결국 몸매도, 성격도 다른 사람들을 위한 맞춤 의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꾸뛰르 컬렉션에 각기 다른 형태의 여성이 등장했다는 것은 다양한 여성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들이 표현한 몸매 불안감은 언젠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란 두려움에서 비롯한 것일지 모른다. 인간과 로봇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간은 ‘몸’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몸을 가리고 치장할 옷을 만들어내는 꾸뛰르는 가장 인간적인 형태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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