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입어야 멋스럽다? 조용한 럭셔리의 다음 트렌드
아무리 신경 써서 옷을 입고 메이크업을 해도 외출 직전에 거울을 보면 허탈함이 찾아오는 요즘입니다.
아직 햇볕은 쬐지도 않았건만 온몸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기 일쑤죠. 칼 같은 테일러링, 주름 하나 없는 빳빳한 소재, 강박적으로 맞춘 차분한 톤. 물 밑에서 쉴 새 없이 발을 젓는 백조처럼 티 안 나게 모든 것에 신경 써야 하는 조용한 럭셔리 트렌드에 무기력함과 반발심이 절로 들고요.
패션 피플 역시 같은 마음이었나 봅니다. 조용한 럭셔리는 차치하고 여유롭다 못해 침대에서 막 나온 듯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중이거든요. 영국 <보그>에서는 ‘Hot Sloth Summer’라는 이름과 함께 하나의 트렌드로 바라볼 정도로 그 낌새가 심상치 않죠.
보테가 베네타의 2023 F/W 컬렉션의 파자마 룩을 떠올려보세요. 편안하고 일상적인 실루엣의 아름다움을 새삼 상기시켰죠. 이제 우리도 조금 더 느슨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단장에 쏟았던 에너지는 잠시 내려놓고, 스타일과 애티튜드에도 여름휴가를 주는 거죠.
이 흐름은 언더웨어 패션에서 가장 빠르게 포착됐습니다. 그저 파격적인 룩으로 치부하던 불과 몇 달 전이 무색하게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으로 변신했죠. 지난가을 켄달 제너가 선보인 팬츠리스 룩과는 그 결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보다는 지난해부터 벨라 하디드가 앞장서서 선보이기 시작한, 편안하고 헐렁한 복서 쇼츠 스타일과 더 닮았어요.
다림질도 제대로 안 한 듯한 탱크 톱에 사각 브리프를 입고 문밖을 나선 릴리 로즈 뎁과 소피 터너의 룩을 보면 그마저도 거뜬히 넘어선 것 같습니다. 특히 소피의 스타일은 손에 들린 루이 비통 백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루스했죠.
여러 시즌 동안 열심히 연마해온 애슬레저 트렌드도 지독하게 편안해졌습니다. 오직 슈즈와 백만 침대와 바깥세상의 경계를 구분 지어주죠. 컬러 포인트 삼기 좋은 파자마 팬츠나 레이스 디테일로 나름의 멋을 지닌 란제리 아이템이 연습용으로 가장 수월한 대안인 듯하고요.
조용한 럭셔리 트렌드가 휩쓸고 간 직후여서일까요? 부스스한 머리와 구겨진 옷차림이 되레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남은 여름은 힘을 좀 빼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물론 세탁과 빨래에서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부지런을 떨어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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