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더 아커만이 이야기하는 휠라 그리고 서울
하이더 아커만(Haider Ackermann)의 청춘 예찬.
지난해 11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휠라 협업 컬렉션을 공개했다.
스포츠 브랜드와 협업은 처음이다. 휠라의 연락을 받았을 때 무척 놀랐다. 휠라와 나의 리듬은 다르고, 결이 같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너지가 필요하던 시기였기에 휠라의 협업 제안은 짜릿했고, 무대로 복귀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무엇보다 청춘에 대해 탐구하던 시기였다. 젊음과 휠라, 나의 조합이 기대됐다. 맨체스터에서 협업 컬렉션을 공개한 이유 역시 젊음이었다. 그곳은 문화의 산실이자 젊음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음악과 스포츠로 유명한 대학이 많아 지적인 분위기를 갖춘 곳이다. 맨체스터 쇼는 젊음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목소리를 알리는 플랫폼이 될 기회가 분명했다.
당신은 컬렉션을 ‘이야기’라고 표현한다. 휠라 협업 컬렉션은 어떤 주제에 대한 이야기인가.
젊음에 대한 이야기. 그동안은 로맨틱함 혹은 시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휠라와의 협업을 통해서 많은 것을 포용했고, 이제는 낙관적인 에너지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다양성을 기반으로 여러 운동 종목을 위한 제품으로 컬렉션을 구성했다. 당신이 정의한 다양성은 어떤 의미인가.
요즘은 모두가 다양성을 이야기한다. 나에게 다양성은 삶 자체다. 나는 콜롬비아에서 태어났고, 남동생은 한국, 여동생은 베트남에서 태어나 프랑스인 부모님께 함께 입양됐다. 각기 다른 배경을 지닌 형제들과 자라면서 다양성이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디자인으로 발현됐다. 나는 럭셔리를 이야기하면서 스트리트 문화를 접목하는 사람이다. 다양성이란 나의 정체성이자 삶이다.
휠라가 지닌 100여 년의 유산을 당신만의 센슈얼한 언어로 해석했다.
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탈리아에 있는 휠라의 아카이브를 전부 살폈다. 그곳에서 1970~1980년대에 굉장히 유명한 테니스 스타였던 비에른 보리(Björn Borg)에 대해 알게 됐다. 그의 경기 장면을 보는데 흰색 휠라 유니폼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스포츠가 지닌 위엄이 드러나는 룩이었다. 스포츠 정신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나만의 방식으로 적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신의 특기는 정교한 테일러링과 독창적인 실루엣이다.
사실 스포츠웨어는 실제로 우리가 입는 옷이고, 일상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우아함과 테일러링을 스포츠와 결합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일상을 대변하는, 혹은 현재를 반영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규칙과 코드를 따르지 않는 것을 좋아하고 나 자신에게 도전 과제를 주는 것이 재밌었다. 멧 갈라에 참석한 티모시 샬라메를 위해 테일러드 재킷과 조거 팬츠를 직접 디자인하고 스타일링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요즘은 스포츠웨어, 럭셔리, 오뜨 꾸뛰르 등 특정 경계를 분명히 정의하기보다는 모든 것이 뒤섞인 시대다.
선연한 색상과 독특하고 가벼운 소재를 활용했다.
너무 거창한 말일지 모르지만, 삶이 너무 무겁지 않나. 삶이 버거운 이들에게 가벼움을 선사하고 싶었다. 휠라 협업 컬렉션은 팬데믹 이후 처음 선보인 컬렉션이기 때문에, 팬데믹으로 지친 이들에게 핑크, 옐로 같은 네온 컬러를 활용해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디자인할 때 떠오른 인물이 있다면.
누군가를 떠올리지는 않았다. 소수를 위한 옷을 만드는 건 민주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영감의 원천이고, 그들을 위한 옷을 만들고자 한다. 간혹 티모시 샬라메나 틸다 스윈튼처럼 내 세계의 일부를 구성하는 이에게서 자극을 받기도 하지만, 그들보다는 평소에 마주하는 모든 광경이 더 큰 창조의 자양분이 된다. 젊은 세대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 환경이나 인권, 동시대적 가치를 위해 싸우는 세대는 젊은 세대다. 그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셀러브리티이자 인플루언서다. 그들이 조금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싶다.
팬데믹 기간 동안 당신에겐 많은 일이 있었다.
내 이름을 되찾기 위해서 노력한 시기였다. 오랜 시간 패션계에서 일했지만, 다시 패션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직면하며 좌절하기도 했다. 팬데믹 기간이어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신중하게 조용히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좋은 일이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나에게 건설적인 일임은 확실했다. 막막한 시간을 겪으며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은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는 판단력을 기를 수 있었다.
당신의 이름을 지켜내기 위한 분쟁, 장 폴 고티에 게스트 디자이너가 된 일, 휠라와의 협업, 이 세 과정이 당신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켰나.
휠라와의 협업, 장 폴 고티에 게스트 디자이너, 절친한 친구들의 레드 카펫 작업에 참여한 것 모두 자유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자유를 얻으며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나에게 다가오는 기회를 수락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처음에는 나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오뜨 꾸뛰르를 해본 적 없고, 스포츠웨어를 만든 적도 없었으며, 셀러브리티와 작업한 것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떤 것을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 등 끊임없이 나에게 묻고 답하며 정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동안 당신에게 가장 위로가 된 것은 무엇인가.
친구들. 나에게 가장 평온을 준 존재다. 나를 있는 그대로 지지해주는 패션계 친구들이 가장 위로가 되었다. 나라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포용해주고, 나의 작업에 대해 기대해줬다는 점에서 그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나에게 패션은 아름다운 러브 레터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 러브 레터에 답장을 쓸 시간이라고 여긴다.
당신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방문한 서울은 어떤가.
서울은 여전히 에너제틱하다. 그중에서도 한국의 예술계가 무척 흥미롭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재능 있는 영화감독, 아티스트, 가수들 모두 대체 불가능한 에너지를 지녔다. 혁신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지닌 사람들이 언제든 협업할 준비가 된 도시는 정말 흔치 않다. 놀라운 에너지다. 한편 팬데믹 동안 한국의 아트 신이 급속도로 성장한 것이 눈에 띈다. 인터뷰를 마치고 한남동에 있는 미술관에 간다(웃음). 나는 한국인의 친절함을 사랑한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종로 3가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먹었는데 정말 행복했다.
최후의 순간에도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것이 있나.
현실에 기반한 자유. 자유를 잃는 건 최후의 순간까지도 타협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의 나에게 있었던 일을 통해 얻은 뜻깊은 교훈이다. 예전에는 디자이너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몽상가처럼 본인의 꿈을 좇으라는 이야기만 했다. 이제는 한 가지를 꼭 덧붙인다. 디자이너로 살거나 회사를 차릴 땐 꼭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사람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는 것. 계속 꿈꿔야 하지만, 현실에 닻을 내리고 사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야 나를 보호하고 나의 미래를 보호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신뢰다. 친구, 패션계 동료들, 나를 사랑해주는 고객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근원은 신뢰다. 그들이 내게 보여준 신뢰를 통해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다.
곧, 당신의 컬렉션도 볼 수 있을까.
그럼! 어떤 식으로라도 곧, 하이더 아커만 컬렉션을 공개할 것이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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