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2017년 여름에 출간된 김애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문학동네)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펼쳤다. 책장 한쪽에서 길고 긴 단잠에 빠져 있었을 소설 속 인물들이 책장을 열자마자 스르륵 다시 깨어나는 것만 같다. 공연히 소설을 읽었던 6년 전 여름의 나를 소환해보기도 한다. ‘그해 여름은 유독 힘들고 험난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이번 여름은 또 어떻게 기억될까.’ 그해 여름을 보내던 작가는 다음의 문장으로 이 책을 끝마치고 있었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작가의 말 中
‘그들’의 탄생과 도착. 그 후에도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시선 위로 자신의 시선을 연신 포개보는 이야말로 소설가일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돌아올 그럴듯한 대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이 잘살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지속해 마음을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 마음 씀 덕분에 소설이 끝난 이후에도 소설 속 ‘그들’은 살아남아 살아가는 것만 같다. 그런 마음을 이어받은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바깥은 여름>을 다시 펼치게 된 것도, 이 영화 덕분이다. <바깥은 여름>의 마지막 단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각색한 김희정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2023)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이기도 한 영화는 7월 5일 개봉해 관객을 만나며 뜨거운 여름을 나고 있다.
소설 그리고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의 애도 일기다. 물에 빠진 제자를 구하려다 함께 목숨을 잃은 도경과 그런 남편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명지. 소설은 명지의 시선으로 이 시간을 전해오고, 영화는 여기에 남편의 제자 지용과 그의 누나 지은, 지용의 친구 해수의 서사를 덧붙였다. 상실의 고통 속에서 명지가 잠시 찾게 되는 이국의 땅은 소설에서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였고, 영화는 폴란드 바르샤바로 향한다.
그 가운데 영화는 애도의 지도를 좀 더 너르게 그려 나간다. 소설에는 없는 새로운 인물들을 만들고 그들이 민주 항쟁의 역사가 있는 도시 광주에서 살아간다는 설정도 그렇다. 게다가 영화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바르샤바 역시 시민 봉기의 땅이 아닌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민중 봉기가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도시 곳곳에는 추모비가 세워졌고, 해마다 봉기가 일어난 8월 1일이면 도심 전역에 사이렌이 울리고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1분여의 추모 시간을 갖는다. 명지는 그곳에서 자신과 도경을 아는 친구 현석과 재회하고 도경이 이 세상에 없음을 아프게 마주해야 하며 동시에 죽은 자들을 추모하는 폴란드의 역사적 시간과 마주친다.
단편소설이 세상에 나온 건 소설집으로 묶이기 전인 2015년 <21세기 문학> 가을호를 통해서였다. 당시 많은 독자가 도경의 상황과 애도의 시간을 두고 세월호를 떠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가 공개되고 난 후, 김희정 감독 역시 세월호를 비롯해 사회 구성원이 공동으로 경험한 슬픔에 관해 말했다. 데뷔작 <열세살, 수아>(2007)에 이어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2012), <설행_눈길을 걷다>(2016), <프랑스여자>(2020)를 통해 감독이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죽음 이후의 시간, 부재의 감각, 남겨진 이들의 삶이 이번 영화를 통해 한층 더 너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남겨진 이들이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며 충분히 오롯하게 슬퍼할 수 있는 시간. 그것에 관해서라면, 더 많은 이야기가, 목소리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여름이 가기 전, 소설과 영화를 나란히 두고 또 그 둘을 살포시 맞대어도 보며 명지의 가만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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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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