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이루진 못했지만, 충분히 이룰 만큼 이룬 ‘코리안 좀비’ 정찬성
지난 26일 싱가포르 인도어 스타디움은 뜨거운 열기에 휩싸였습니다. ‘UFC 파이트 나이트: 할로웨이 vs 코리안 좀비’ 대회가 열렸기 때문이죠.
이날 페더급 매치에서 정찬성은 전 챔피언이자 랭킹 1위 할로웨이에게 3라운드 23초 만에 KO 패했습니다. 마지막 힘을 다해 할로웨이에게 돌진한 그를 기다린 건 카운터펀치. 펀치에 맞고 쓰러진 정찬성은 다시 주먹을 뻗었으나, 결국 경기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경기에서 패배한 그는 인터뷰에서 뜻밖의 선언을 했습니다. “그만할게요.” 2007년 종합격투기를 시작한 후 16년 동안 ‘코리안 좀비’로 달려온 걸음이 멈춘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후회 없이 준비했고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 격투기를 했다. 저는 2등, 3등, 4등 하려고 격투기를 한 게 아니었다. 챔피언이 되려고 했는데, 톱 랭커를 이기지 못하니 냉정하게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은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정찬성은 글러브를 벗어 옥타곤에 조심스레 올려놓고, 그곳을 향해 큰절을 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신을 상징하는 음악 크랜베리스의 ‘좀비’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링을 내려온 정찬성은 자신을 바라보던 팬들에게 눈물 섞인 웃음을 보이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는 자신을 지켜보던 아내와 뜨겁게 포옹하며 결국 울음을 터뜨렸죠. 그가 경기장을 떠나는 순간까지 수많은 팬들의 기립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정찬성은 한국인 파이터 가운데 유일하게 챔프전을 치른 선수입니다. 그것도 두 차례나! 2013년 동양인 최초로 UFC 페더급 3위를 달성한 정찬성은 한국 MMA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긴 공백 후 데니스 버뮤데즈를 상대로 화려하게 컴백하면서 다시 한번 주목받았습니다. 할로웨이와의 경기 결과가 아쉬울지 몰라도, 정찬성은 UFC 페더급 최정상급 선수다운 마무리를 했죠.
은퇴 후 정찬성은 27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심경을 전했습니다. 그는 “모든 걸 이루진 못했지만, 충분히 이룰 만큼 이뤘다. 내 머리 상태에서 더 바라는 건 욕심 같아 멈추려고 한다”며 “해온 것에 비해 과분한 사랑을 받은 것 같아 모두에게 감사한다. 이제 더 이상 평가받고 비교당하는 삶을 살지 않을 거 같아 홀가분하고, 후련하고 또 무섭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뭘 할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고 진심으로 해보려 한다”며 “그동안 코리안 좀비를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UFC에서 싸우는 동안 정말 정말 행복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제 링 위에 선 ‘코리안 좀비’의 모습은 볼 수 없을지 몰라도,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날 정찬성의 다음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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