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얄 포잔티의 자신만의 언어 #여성예술가17
자신만의 언어를 지닌 하얄 포잔티. 그녀가 창조한 형상이 뽐내는 알록달록한 의미.
HAYAL POZANTI
화가 하얄 포잔티(Hayal Pozanti)에겐 새로운 시각언어를 개발하겠다는 한결같은 꿈이 있었다. 그녀의 출생지는 이스탄불. 2009년 미국으로 이주할 당시 포잔티는 포스트 인터넷 아트(디지털 매체를 통해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며 인터넷 문화와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이미지와 경험을 제공하는 예술 사조)에 푹 빠져 있었다. “온라인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이미지와 정보에 완전히 압도당하는 기분이었어요.” 포잔티가 회상했다. 예술가로서 위기감에 사로잡힌 그녀는 집에 인터넷을 설치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손을 쓰는 작업을 유지하면서 창작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와 멀어져야 했어요.” 그 후 10년 동안 포잔티는 상형문자와 유사한 자신만의 문자 31개를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시각언어를 ‘Instant Paradise’라고 이름 붙였다. 숫자 혹은 알파벳처럼 보이는 이 언어는 최근 추상적인 형태에서 화려한 색채를 뽐내는 더 역동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저는 이 문자를 빈 캔버스 위를 어색하게 떠다니는 사물이 아니라 생동감 있는 풍경 속에 존재하는 식물이나 나무 혹은 가상의 생명체로 여기고 싶었어요. 그러자 디테일이 살아났죠.” 포잔티가 탄생시킨 그림 같은 문자는 최근 티모시 테일러(Timothy Taylor) 갤러리에서 진중하게 조명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새까만 머리카락이 매력적인 포잔티는 이국적이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사람이다. 삶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를 지닌 그녀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며 언제 어디서든 남다른 탐구심을 발휘한다. 3년 전, 그녀는 남편 넬슨 하몬(Nelson Harmon)과 함께 LA에서 버몬트주 맨체스터로 이사했다. 이후 그녀의 그림에도 변화가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숲에서 하이킹을 즐기는 저를 발견했어요.” 그녀의 널찍한 스튜디오를 처음 방문한 날, 포잔티는 새로운 삶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스튜디오 한쪽 벽에는 곧 있을 전시회를 위해 완성한 10피트 길이의 작품 3점이 기대어 있었다. “맨체스터로 이사한 후 자연과의 교감이 한층 깊어지면서 제가 보는 광경을 빠르고 정확하게 묘사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어요. 옛날 인상주의 화가들처럼요.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개인적 소망이 이루어지긴 했죠.”
올해 마흔인 동갑내기 부부 포잔티와 하몬은 특별한 커플이다. 일단 포잔티의 키는 183cm, 하몬은 186cm로 함께 있으면 금세 눈에 띄는 장신 커플이다. 포잔티는 튀르키예인이고, 하몬은 미국인이다. 하지만 하몬은 아담한 동네 맨체스터에서 나고 자랐고, 포잔티는 대도시에서만 살았다. 포잔티는 예술가이고, 하몬은 개인 미술품 딜러로 일하며 서로 시너지를 발휘한다. (하몬은 LA에 자리한 갤러리 샤토 샤토(Château Shatto)의 공동 대표다.) 이번에는 하몬이 입을 열었다. “맨체스터로 다시 이사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팬데믹 기간 동안 허드슨 밸리를 자주 드나들었는데 어느 날 밤 아내와 함께 두 번째 와인병을 비우며 수다를 떨다가 버몬트에 정착해보자고 결정했죠.” 부부는 친구들을 초대해 활기 넘치는 저녁 식사를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함께하는 삶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요리사는 언제나 하몬이다. “금요일 밤이 항상 기다려져요. 떠들썩한 만남이 지나간 후, 거실에서 둘만의 조촐한 댄스 파티를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하거든요.”
포잔티와 하몬은 2016년 브뤼셀 아트 페어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전시 작가로 브뤼셀에 머물던 포잔티는 친구와 함께 페어를 구경하다가 하몬과 마주쳤고, 둘은 곧바로 서로에게 매료됐다. LA와 뉴욕을 오가는 1년간의 장거리 연애 끝에 하몬이 포잔티를 LA로 초대한 뒤부터 둘은 쭉 함께 살았다. “하몬은 하일랜드파크에 아주 아름다운 집을 갖고 있었어요. 정원과 야자수가 있고, 온갖 새와 코요테, 스컹크가 드나드는 동화에 나올 법한 집이었죠.” 과거를 회상하던 포잔티는 그때부터 과학기술의 발전이 생태와 기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LA에서는 자연에 둘러싸여 지냈어요. 해안을 따라 밴 라이프를 즐기며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와 수백 년 된 삼나무 숲 등 놀라운 자연경관에 감탄하는 하루하루를 살았죠.” 포잔티는 2019년 빅서의 삼나무 숲에서 하몬과 결혼했다. (두 달 뒤에는 이스탄불에서 성대한 튀르키예식 결혼식을 한 번 더 올렸다.)
포잔티는 이후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골몰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육체와 기억, 꿈을 통해 한 인간이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 세상에 반응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그때부터 아크릴(플라스틱) 물감 사용을 중단하고 오일 스틱(호두 또는 아마씨유에 안료를 섞은 물감)을 사용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마음에서 손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각으로 느끼고 싶었어요.” 그녀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오일 스틱을 사용하면 그렇게 할 수 있거든요.” 포잔티가 팔레트가 아닌 캔버스 위에서 손가락으로 직접 색을 섞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런 작업에는 아주 원초적인 매력이 있어요. 동굴 벽화를 그리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달까요. 제 몸과 마음, 제가 만드는 작품이 완전히 혼연일체를 이루는 거죠.”
포잔티가 대단한 몽상가가 된 것은 이름 때문일까? ‘하얄’은 튀르키예어로 백일몽을 의미한다. “튀르키예어의 대부분은 이렇듯 독특한 의미가 있어요. 튀르키예어로 사랑과 바다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친구들도 많죠.” 포잔티는 의사인 아버지 쉬헤일(Süheyl, 북극성)과 컴퓨터 과학자인 어머니 셍귈(Sengül, 행복한 장미) 사이에서 1983년 외동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아홉 살이 되던 해에 가족은 휴스턴으로 이사했다. 휴스턴 감리 병원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포잔티의 아버지는 아내도 그곳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는지 병원 측에 물었고, 무려 7개 국어로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고 적힌 어머니의 이력서를 보고 병원 인사 담당자가 놀라워한 것을 포잔티는 여전히 똑똑히 기억한다. 부모님이 그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포잔티는 초등학교를 마쳤다.
이스탄불로 돌아온 후에는 튀르키예 최고의 사립 고등학교로 꼽히는 로버트 칼리지에 입학했다. (오르한 파묵을 비롯한 많은 지성인이 거쳐간 학교다.) 수업은 대부분 영어로 진행되었다. “포잔티는 입학 첫날부터 미국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어요. 미국인 선생님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완벽하게 알고 있었죠.” 그녀의 동급생이자 현재 라이스 대학의 인류학 교수로 재직 중인 괵체 귀넬(Gökçe Günel)의 증언이다. 포잔티와 괵체(스카이 블루)는 베스트 프렌드였고, 아직까지도 매일같이 연락하며 지낸다. (괵체와 포잔티는 서로의 결혼식에 주례로 나서기도 했다.) “상상력이 대단한 포잔티는 장난기와 호기심이 정말 많은 친구였어요.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 가능한 한 오래 눈을 뜬 채 눈물을 흘리며 뿌듯해하던 포잔티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괵체가 웃으며 회상했다. 집에서 통학하던 포잔티는 당시 기숙사 생활을 하던 괵체와 함께 놀기 위해 방과 후에도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곤 했다.
물론 암흑기도 있었다. 인터넷이 일상에 깊이 침투한 시기, 다친 참전 용사와 자연재해 등 인터넷에서 목격한 많은 이미지가 포잔티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쩌면 보지 말았어야 할 많은 것을 목격하게 됐죠.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온갖 공포에 휩싸였어요.” 포잔티는 그런 일을 실제로도 겪었다. 고등학생이던 1999년 1만7,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규모 7.4의 대지진을 경험했다. 로버트 칼리지를 졸업한 바로 다음 해에는 쌍둥이 빌딩이 붕괴됐다. 포잔티가 가족과 함께 튀르키예의 토르바 해변에 누워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우리에게 달려와 ‘미국이 공격당했다!’고 외쳤어요. 튀르키예는 모든 것의 한가운데 있는 나라예요. 안정적인 분위기가 아니었죠. 여러 세력으로 쉽게 휘청거리고요.”
로버트 칼리지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에는 튀르키예 최초의 인문 대학 사반즈(Sabancı) 대학에 입학해 시각예술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했다. 주말마다 재즈 드러머였던 남자 친구를 비롯해 여러 친구와 우르르 몰려다니며 이스탄불의 클럽에서 테크노 댄스를 추곤 했다. “클럽에는 항상 담배와 콘돔을 나눠주는 일명 ‘담배 소녀’들이 있었어요. 그땐 담배를 하루 두 갑씩이나 피웠죠.”
졸업 후 포잔티는 이스탄불에서 5년을 보냈다. 그러면서 백화점 쇼윈도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일도 했다. 인터넷에서 얻은 흑백 이미지를 콜라주하고, 종이에 실크스크린 작업을 하거나 색을 칠해 조형 작품을 만드는 것이 퇴근 후 일과였다. “컴퓨터를 활용해서 작업하는 것에 소질이 있었어요. 재미도 있었고요.” 그녀의 작품에서는 항상 마법과 환상, 만화적 분위기가 감지된다. 게다가 어둠과 기묘한 분위기도 깃들어 있다. 포잔티는 이스탄불과 스톡홀름에서 열린 단체전에 작품을 출품했고, 스물여섯 살이던 2009년 그녀는 전액 장학금을 받고 예일 대학교 예술 대학원에 입학했다. 쉴 틈은 없었다. 포잔티는 곧바로 룬 문자와 고대 산스크리트어까지 거슬러 올라가 전 세계 문명이 어떻게 문자로 의사소통하며 발전했는지에 대한 연구에 뛰어들었다. “정사각형 안에 원을 그려 넣고 음각하면 거기에서 새로운 형상이 탄생했어요.” 이후 그녀는 수백 개의 도형으로부터 31개 상형문자를 추출해낸 다음 다양한 조합으로 자신만의 예술적인 알파벳을 완성했다.
예일 대학교 졸업식 전날, 포잔티의 스튜디오의 문을 두드린 한 컬렉터가 있었다. 뜻밖의 방문객은 그 자리에서 포잔티의 그림 3점을 구입했고,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갤러리스트 제시카 실버맨(Jessica Silverman)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시카 실버맨은 여전히 포잔티의 주요 딜러 중 한 사람이다.) 포잔티는 몇 주 후 뉴욕으로 이주해 아티스트 글렌 리곤(Glenn Ligon)의 어시스턴트로 일했다. (리곤은 포잔티를 5점 만점에 4점인 어시스턴트로 평가했다. “4점짜리 어시스턴트는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펼칠 만한 감각을 갖추고 있습니다.” 유능한 어시스턴트에 대한 리곤의 평가다.) 2012년에는 제시카 실버맨의 도움으로 포잔티의 첫 개인전이 열렸다. 개인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후 포잔티는 마침내 작업에 열중할 수 있는 작은 아파트를 차이나타운에 임대할 수 있었다.
포잔티는 자전거로 집과 부시윅 스튜디오를 부지런히 오가며 작업에 전념했다. “처음에는 제가 만든 독특한 문자가 알파벳이라고 여기지 않았어요. 숫자에 더 가깝다고 봤죠.” 포잔티는 이 암호화 시스템을 자신의 예술에 폭넓게 적용했고 암호를 그림 제목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인간이 지닌 다양한 미소의 종류를 뜻하는 ‘18’이라든지 섹스 중 휴대폰을 확인하는 사람의 비율인 ‘1/10’을 제목으로 앞세운 작품이 바로 그런 예다.
2015년 포잔티는 코네티컷주 리지필드에 있는 올드리치 현대미술관에서 ‘딥 러닝’이라는 주제로 첫 미술관 전시를 열었다. 이 전시를 위해 그녀는 상형문자가 움직이는 영상 작품을 제작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공공 예술 기금으로부터 세계무역센터의 교통 허브에 전시할 애니메이션을 제작해달라는 의뢰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쌍둥이 빌딩의 비극에 경의를 표하는 작품 ‘Relentless Tenderness(끊임없는 부드러움)’가 탄생했다. 형형색색의 문자로 미국을 더 아름답고 예술적인 도시로 수놓는 포잔티는 지난해에 드디어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결혼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해냈다는 사실이 아주 자랑스러워요.”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현재 뉴욕 공립 도서관의 가장 큰 분관인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재단 도서관을 찾아가면 85피트 길이의 천장에 전시된 포잔티의 작품을 목격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그녀가 31개 상형문자를 사용해 제작한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독립 큐레이터 낸시 로젠(Nancy Rosen)은 올드리치 미술관에서 열린 포잔티의 전시를 감상하자마자 포잔티의 재능에 확신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포잔티가 도서관 천장을 정복할 가장 강력한 후보라고 직감했어요. 그녀가 출품한 작품이 품은 메타 언어와 개성적인 알파벳을 보고 직감은 확신이 되었죠.” 로젠의 예감대로 포잔티는 다른 두 아티스트를 제치고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재단 도서관 천장을 장식할 작가로 선정되었다. 도서관에 영구 전시될 포잔티의 작품은 메소포타미아 점토판, 파피루스 칙령, 전자 스크린에 이르기까지 문자사에서 중요한 12가지 혁신을 기념한다. “글쓰기의 세계사를 다룬 작품이죠.” 포잔티가 설명했다. “인류를 하나의 종으로 결속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포잔티는 이 작품의 이름을 ‘Instant Paradise’로 정했다. 10여 년 전, 자신이 발명한 언어에 헌정한 바로 그 이름이다.
포잔티는 요즘 뉴욕 전시회를 위한 작품 준비에 여념이 없다. 길이가 10피트에 이르는 그림은 지금까지 그녀가 작업한 것 중 가장 큰 규모의 작품이다. “관객이 제가 창조한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면 해서요.” 여기서 말하는 세계란 자연이 우거진 정원, 매일 그녀가 산책할 때마다 감상하는 초록 빛깔, 스튜디오 옆으로 흐르는 강과 같은 것들이다. 새 그림 속에서 모든 요소는 추상적인 느낌을 벗어나 한결 매끄럽고 자유롭게 요동치고 있었다. 데생이 아니라 온전한 회화로 느껴졌다. 크기가 다소 작은 그림(80×60in)인 ‘A Vessel for My Heart’는 맨체스터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꼽히는 집 앞마당의 단풍나무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포잔티는 그 나무를 핑크, 옐로, 라벤더, 오렌지, 하얀 꽃으로 둘러싸인 짙은 푸른빛의 형상으로 상상했다. 이 그림은 실제 나무에서 흔히 관찰하기 어려운 색상 조합을 보여주고 있었다. 포잔티처럼 꿈꾸고 공상하는 단풍나무의 초상이었다.
포잔티는 그림을 통해 자신이 바라는 세상에 대한 환상을 표현한다. “작업실에 있을 때 저는 저만을 위한 세상을 창조해요. 인류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무언가의 중요성을 계속 인지하면서요. 공상하고, 동화를 만들고, 공상과학소설 읽는 것을 즐기며, 공상에 빠져 지내는 삶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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