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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애호가라면 기억해야 할 이름, 제이디 차 #여성예술가17

2023.09.07

미술 애호가라면 기억해야 할 이름, 제이디 차 #여성예술가17

미술 애호가라면 ‘제이디 차’의 이름을 꼭 기억해두어야 한다.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개인전,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전속 계약 등 뜨거운 뉴스의 주인공이다.

‘깊은 꿈에 빠지다(Dream Deep), 2023, Oil on Canvas, 360×200cm(Diptych)’ 앞에 선 제이디 차.

ZADIE XA

세계의 주목을 받는 젊은 작가의 신작을 스페이스K 서울에서 오는 10월 12일까지 만날 수 있다. 그녀는 바로 제이디 차(Zadie Xa).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할머니’의 초상을 처음 선보인 것. 가장 핫한 작가의 신작이 할머니 초상이라니 신선하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의 모습을 젊은 여성 미술가의 작품에서 만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모습은 한 번도 만난 적 없어 더욱 그리운 외할머니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실존 인물이 아니라 작가 본인의 얼굴을 이용해 완성했다.

“2015년경부터 노파의 이미지에 관심을 가졌어요. 이번 전시회에서 할머니 초상 작품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가부장 사회에서 가임기가 지난 여성은 성적 매력이 떨어지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지요. 하지만 범고래와 같이 출산이 끝난 후에도 무리를 이끌어가는 동물이 있고, 한국은 노인 공경의 전통이 있기에 노파를 주인공으로 삼고 싶었습니다.”

제이디 차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한국 이민 2세대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 역시 힘센 여성이었고 가족의 존경을 받기에 충분했다. 몇 년 전 알게 된 한국의 마고할미와 삼신할미 등에 대한 이야기도 영향을 끼쳤다. 마고할미는 동아시아 지형을 그녀의 배설물과 치마 속에 모아둔 돌로 만든 창조신이며, 삼신할미는 인간의 탄생에 관여한다. 이런 여러 영향으로 인해 그녀는 고령화 사회에서 젊음이 추앙받고 아름다움의 필수 요건으로 간주되지만, 나이 들수록 지혜와 혜안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또한 서구 사회에서는 나이 든 여성은 존중받지 못하기에 한국 설화에 더욱 매력을 느꼈으며 작품을 통해 이런 사회구조를 바꾸고 싶었다. 특히 여러 나라의 신화에서 사악하거나 권력을 좇는 모습으로 그려진 노인이라는 존재가 반대를 곱씹어보게 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전시를 통해 사회에서 가치 있는 존재들이 누구이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고민해보기를 기대했다.

노파의 초상은 페미니즘뿐 아니라 샤머니즘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녀는 밴쿠버에서 태어났고 한국말도 서툴지만 우리나라의 전통과 설화가 작품의 모티브가 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침대에서 읽어주던 전래 동화를 듣고 자랐으며, 작가로서 시작점에서부터 한국적 모티브는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했다.

“서구 중심의 예술에 저항하는 것이 내 작업의 목적 중 하나입니다. 2000년대 중반 비서구 아티스트이자 비주류 아티스트로서 힘든 시기를 겪었어요. 캐나다는 이민자가 많은 나라지만 내가 한국 출신 작가라는 것을 다들 인식했으며, 아시아의 고유성을 서구적 맥락으로 표현하는 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도 있었죠. 서구 미술계의 인종주의와 주류 문화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며,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이해도 필요합니다.”

K-팝과 영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디지털 시대지만, 한국 전통과 설화는 어린 시절부터 그녀에게 영향을 끼쳤다. 밴쿠버에서 태어나 런던에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 교포로서 한국의 과거를 아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한국 문화를 배우기 위해 역사를 익히는 것이 필요하며, 이는 선조와 연결 고리가 된다. 소통을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그녀는 1987년 디즈니 영화를 보고 미술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림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관람객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작가가 된 것이다.

스페이스K 서울에서 전시 중인 작품. ‘트릭스터, 잡종, 짐승(Tricksters, Mongrels, Beasts), 2023, Oil on Canvas, 600×240cm(Triptych)’

“1995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으며, 2017년 한국에 와서 본격적으로 한국 문화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문화를 연결하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 민속 연구가 필요했고, 세계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노력도 수반되어야 했죠. 지난해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연 개인전에서도 비서구적 관점의 작품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비서구적 레퍼런스가 필요한 이유는 서구 중심 역사에 다른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죠. 지금 해외 미술계는 젊은 작가들의 오리진(Origin)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으며, 런던 미술계만 해도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 등 자신의 뿌리가 된 나라의 문화를 보여주는 작가들이 대세입니다.”

그녀는 한국의 젊은 아티스트가 자신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기를 바라며, 작품을 통해 한국 전통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집중하려 한다. 한국 고유의 것은 단순히 우리나라만의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작가들이 뉴욕이나 런던의 서양 문화를 따라 할 필요가 없으며, 우리와 가까운 문화를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그녀의 전시에서는 우리가 전래 동화에서 보았던 모든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전시 제목부터 ‘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 이야기(Nine Tailed Tall Tales: Trickster, Mongrel, Beast)’이다. 구미호, 반인반수, 무당, 숲속의 정령과 같은 신비한 존재들 말이다. 특히 전시에서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구미호는 변신 능력이 있는 영리한 동물로 묘사된다.

“여우는 각국 민담에서 신뢰할 수 없는 아웃사이더로 등장합니다. 한국 구미호 설화에서도 그렇지요. 런던에서도 여우가 자주 출현하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이야기 속의 교활한 여우로 여기더라고요. 사기를 치는 매력적 존재라는 서양과 동양의 평행 이론을 가진 여우가 사실은 그들만의 생존 전략을 추구한 것뿐이라니 재미있어요. 동서양의 이야기 속에서 여우 캐릭터를 현대적으로 재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여우를 남성으로, 동양에서는 여성으로 여기지만, 구미호의 특징과 영웅이 공통점을 가진다고 보았다. 그저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특정 방식으로 행동해야 하는 동물일 뿐이라는 것.

“전시에 갈매기의 머리에 인간의 귀와 몸을 합친 작품도 선보여요. 사실 갈매기는 내 모습과 같고, 까마귀는 나의 파트너 베니토 메이어 바예호(Benito Mayor Vallejo)를 상징합니다. 고향 밴쿠버에 갈매기가 많았고, 갈매기는 여우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해서 식량을 쟁취하는 동물입니다. 예쁘거나 모두가 좋아하는 동물은 아니지만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갈매기의 모습과 여성 작가로서 굉장히 열심히 작업해야 본인을 드러낼 수 있는 내 상황이 겹쳐 보였어요.”

인생의 동반자이자 이번 전시의 디스플레이를 도와준 미술가 베니토와는 밴쿠버에서 대학에 다닐 때 만났는데, 그곳에 까마귀가 많았다. 처음에는 까치를 즐겨 그렸는데, 베니토가 까마귀를 그리는 모습을 보고 그녀도 자연스럽게 까마귀를 많이 그리게 됐다. 그러면서 까마귀가 지혜를 상징하는 영리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베니토와 연결한 것.

신화와 설화에 등장하는 동물은 인간의 대리인이나 아바타 역할을 한다. 그녀는 모든 동물과 생명체는 고유한 주체성을 지녔다고 보며, 모든 동물이 각각의 인격과 주체성이 있다는 믿음에서 작품을 펼친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무당으로 대표되는 샤머니즘에 대한 표현도 찾아볼 수 있다. “모든 예술가는 무당이다”라고 말한 백남준과 공통점이 있을까?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샤먼도 관심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무속 의식을 이끌고 진행하는 사람이 여성이라는 것에 크게 매료됐어요. 사회적 억압이 강한데도 불구하고 한국 여성이 계속 굿을 이어왔다는 것에 감동받고 흥미로웠습니다. 샤먼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중재적 존재이기에 구전이 많지요. 구전으로 이어진 풍습은 권력에 의해 억압받거나 잊히기도 하는데, 한국에는 1000년 이상 저항하고 존재해온 문화와 역사가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샤머니즘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샤먼은 한국 역사를 보여주기에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샤먼은 과거 마녀사냥으로 희생된 유럽의 가엾은 여성들도 연상시킨다. 지난해 화이트채플 전시에서 아예 사당으로 보이는 무대를 전시장에 세워 유럽 미술 애호가들을 매혹시켰다. 샤먼은 백남준이 말한 대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샤먼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청중이 모였고, 이로써 그들은 작가라고 불릴 만하다. 결국 샤먼과 아티스트는 모두 대중을 대상으로 창의적 활동을 하는 존재이며, 이들의 중요한 요소는 소통이다. 백남준은 실제로 행위 예술로서 굿을 하기도 했으며, 제이디 차의 퍼포먼스도 이와 일맥상통해 보인다.

제이디 차는 전시에서 그림과 조각, 의상을 선보였지만, 퍼포먼스로도 유명하다.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밴쿠버의 명물로 불리며 무리를 이끌던 할머니 범고래와 범고래 가족에 대한 퍼포먼스를 직접 펼쳤다. 모계사회의 힘을 상징하던 할머니 범고래가 세상을 떠나자 뉴스에 나올 정도로 화제였고, 퍼포먼스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자연스럽게 담겨 호평을 받았다. 작가로서 협업을 즐기지만 그간 퍼포먼스에 주인공으로 직접 참여한 이유는 관람객과 연결 고리 때문이다. 서울 전시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한 편의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위해서는 아주 큰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이를 아껴서 신작 발표에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아직은 젊은 작가이기 때문에 작품 세계에 큰 전환이 있진 않았다. 한국 문화에서 영감을 받으며, 작업이 변화하기보다는 확장되는 중이다. 작은 범위의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문화를 덧붙이며 내용도 풍부해지고 있다. 작가는 유럽에 살면서 서구 중심적 생각에 저항하며 다른 문화도 존재한다는 걸 작품으로 강조하고 싶어 도전을 시작했다. 근래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선택에 더 자신감을 얻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랬듯 논문과 문헌을 찾아보며 한국의 역사와 정치를 공부하는 중이다. 100년 전, 1000년 전, 그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제이디 차의 한국 첫 개인전에서 그 상황을 확인할 수 있으며, 한 가지를 분명 발견할 것이다. 너무 친숙해서 잊어버린 과거의 이야기들이 현재의 찬란한 작품이 되어 있음을. (VK)

#여성예술가17

피처 디렉터
김나랑
피처 에디터
류가영
이소영
사진
이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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