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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걸’, 거부할 수 없는 괴작

2023.09.01

‘마스크걸’, 거부할 수 없는 괴작

<마스크걸>은 딱 김모미 같은 드라마다. 주인공 김모미는 사회적 기준에 미달하는 얼굴과 초과하는 몸매를 지녔다. 낮에는 평범한 회사에 다니며 못생겼다는 구박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밤이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섹시 VJ가 되어 이중생활을 한다. 드라마 <마스크걸>의 뒤틀리고 불쾌한 인물들에게는 감각적 연출과 매력 넘치는 배우들이 완벽한 가면이 되어준다. 그 가면 덕분에 <마스크걸>은 원작 웹툰보다 덜 음침하고, 덜 기괴하고, 기꺼이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시선을 잡아끄는 미장센 뒤에는 여전히 한국 드라마의 표현 범위에서 벗어난 비정형의 인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웹툰 <마스크걸>의 가장 두드러지는 개성은 인간성에 대한 무자비한 냉소다. 주인공 김모미는 외모지상주의와 편협한 미의 기준에 큰 피해를 입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자신이 외모지상주의에 찌들어 이 시스템 안에서 승자가 되기를 꿈꾸는 인물이기도 하다. 예쁜 여자를 미워하고, 못생긴 남자를 경멸하고, 성형 미인을 헐뜯으면서 자신의 성형수술을 위해 돈을 모으고, 몸매에 과도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남자들의 성욕 대상이 되거나 잘생긴 상사와 불륜을 저지르길 꿈꾼다. 그의 단짝 친구는 오가닉, 요가, 명상, 공정 무역, 페미니즘을 부르짖지만 가십에 열광하고 누구보다 여자들을 미워한다. 모미가 짝사랑하는 유부남 상사는 완벽한 이미지와 달리 업무 시간에 몸매 관리를 하거나 셀피를 포토샵할 정도로 자기애가 끔찍하다. 그는 부하 직원과 불륜을 저지르다 들통나 아내에게 공개 망신을 당한 뒤에도 소셜미디어에 눈물 셀피를 찍어 올린다.

드라마에서는 인물들의 혐오스러운 면모가 조금씩 순화되었다. VJ 마스크걸의 팬이자 회사 동료 주오남도 원작에서는 김모미의 음주 스트립쇼를 보고 자위를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화면을 가린다. 원작의 ‘여적여’ 정서는 성형 후 나이트클럽 쇼걸이 된 김모미와 비슷한 결핍이 있는 춘애의 우정을 통해 여성 연대를 강조하는 쪽으로 변형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드라마 속 인물들에게는 불쾌한 지점이 있다. 모미의 딸 미모가 중학교에서 사귄 친구는 관심을 끌기 위해 아버지를 가정 폭력범으로 몰고, 동생의 보행기를 훔쳐 팔고, 연예인 사인을 위조한다. 드라마의 메인 빌런인 경자는 아들의 원수를 갚으려는 모성애 지극한 엄마다. 하지만 아들이 죽인 자의 시체를 보고 “내 아들만 아니면 된다”고 안도하고, 살인자의 딸이라는 이유로 죄 없는 미모까지 파괴하려 드는 이기주의자다. 이 드라마에서는 편견의 피해자도, 모성도, 동심도 가차 없이 발가벗겨진다. 모두가 관종이고, 미친 듯 집요하고, 비뚤어진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인간은 누구나 더러운 구석이 있고 착한 사람은 착한 ‘척’하는 것일 뿐이니 거짓말쟁이고 욕먹어야 한다는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정서가 지배하는 세계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 불쾌한 인물들을 상업적 수준에서 적절히 통제해낸다. 흔한 트렌디 드라마라면 주인공을 괴롭히는 재수 없는 주변인 정도로 스쳐갈 인물들에게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신선함을 확보하고, 각각에게 연민의 여지를 주며, 그들의 악행에 극적 당위를 부여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 드라마의 재미는 무엇보다 배우들에게서 나온다. 주인공 김모미는 시기별로 이한별, 나나, 고현정이 연기했다. 특히 이한별의 개성 있는 외모, 차분하고 리얼한 표정 연기는 작품에 세련된 긴장감을 부여해준다. 그가 극 초반 확실히 무게를 잡아준 덕에 중반부 나나의 화려한 외모가 앵글에 담길 때도 진한 여운이 생긴다. 나나도 감옥 신에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클로즈업의 반쯤 돌아 있는 표정 연기도 좋고, 감옥 내에서 싸울 때 풀샷으로 잡은 액션도 호쾌하다. 흑백 화면 속 죄수복 입은 나나의 퇴폐적인 분위기는 그 자체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는 확실히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배우다.

김경자 역의 염혜란은 이 드라마의 결정적 무기다. 김경자가 좋아하는 것은 총, 차, 기독교다. 텍사스형 악당이다. 한편으로 그는 아들에게 맹목적 애정을 쏟고 생활력이 강하며 호시탐탐 현실을 왜곡하고 여성성이 거세된 캐릭터다. 중년 한국 여성에 대한 편견을 집대성한 것 같다. 이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하면서 묘하게 말이 되는 토속적 하드보일드 캐릭터가 탄생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을 연상시키는 염혜란의 폭발적 연기는 기발한 분장 쇼 정도로 끝날 수도 있었을 드라마를 광기 넘치는 괴작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오타쿠 주오남을 연기한 안재홍은 원작의 ‘병맛’ 코미디를 잘 살려낸다. 원작에서는 하는 짓이 역겨워도 일러스트라서 거부감이 덜한데, 실사로 잘못 구현하면 시청자들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는 캐릭터였다. 다행히 안재홍 특유의 유머 감각과 귀여움을 잘 활용했고, 그 덕에 김경자 캐릭터도 덜 혐오스러워졌다. 주오남의 정신세계를 묘사하는 몽환적 연출도 눈여겨볼 만하다.

웹툰이 드라마, 영화의 아이디어 창구가 된 지 오래지만, 그것을 실사화하는 과정에서 저예산 독립 창작물의 자유롭고 기발한 상상력을 어디까지 실현할 수 있는가는 여전히 숙제다. 일본이 자국 애니메이션 실사화에 번번이 실패하는 건 미디어의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마스크걸>은 그 점에서 모범으로 기록될 수 있는 작품이다. 물론 모미에게 냉정했던 엄마(문숙)가 모미의 딸 미모에게는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것처럼 스펙터클한 연출을 위해 납득이 안 되게 바뀐 부분도 있다. 매 화 장르가 바뀌면서 지루하거나 혼란스러워진 부분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마스크걸>은 웹툰의 기이함과 신랄함에 그로테스크한 연출을 더해 한국 드라마의 관성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내가 대체 뭘 보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의 신선함은 자주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마스크걸>은 그것만으로도 박수 받기에 충분한 드라마다.

사진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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