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토크쇼, 누가누가 잘하나
지코의 유튜브 토크쇼 <5분만: 기브 미 어 미닛>에 게스트로 출연한 장도연은 이렇게 반문했다. “지코 씨는 음악도 잘되고 이룬 것도 많은데 왜 이것까지 하시는 거예요?” 지코는 허를 찔린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답은 공개되지 않았다. 많은 유튜브 유저들도 같은 의문을 가진다. 왜 이 많은 유명인들이 유튜브 토크쇼로 몰려들까? 송은이와 유재석 사이 어딘가에 답이 있을 것이다. 송은이는 출연 섭외를 기다리는 대신 주도적으로 커리어를 개척하고자 2016년 유튜브 채널 ‘비보TV’를 개설했다. 올해 론칭한 유재석의 ‘핑계고’에는 ‘유선배(유재석) 복지 컨텐츠’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방송은 핑계이고 유재석이 지인들 만나 즐겁게 수다 떠는 게 목적이라는 거다.
송은이의 입지전적 성공 이후 TV와 인터넷 방송 사이에 존재하던 서열은 급격히 붕괴되었다. 이제 유튜브는 스타들의 포트폴리오이자 홍보 창구, 수익 창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토크쇼는 스타 콘텐츠 중에서도 효율이 가장 높고 안전한 포맷이다. 연예인의 인맥으로 손쉽게 조회 수를 높일 수 있고, 비용이 적게 들고, 매회 특별한 아이디어 없이도 지속 가능하다. 그래서 너도나도 토크쇼에 도전한다. 인맥 넓은 연예인이라면 친구들의 출연 요청을 관리하는 것도 버거울 듯하다. 하지만 다른 목적을 지닌 진행자들도 보인다. 그나마 유재석은 톱 예능인으로서 새로운 미디어에서도 뒤처지면 안 된다는 압박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BTS의 슈가는 수익을 창출할 필요가 없고 방송 의무도 없고 예능인으로서 포트폴리오를 만들 필요도 없는데 ‘슈취타’를 진행한다. 아이유의 ‘팔레트’ 역시 필요보다 완성도 높은 음악 방송을 만들고 싶다는, 콘텐츠 자체에 대한 열망이 엿보인다.
방송계 일각에서는 난립하는 유튜브 토크쇼에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출연진이 엇비슷한 탓에 이미 여러 채널에서 콘텐츠가 중복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다 경쟁이 과열되면 기존 방송이 그랬듯 자극을 노리고 꾸며낸 에피소드가 쏟아지면서 이 생태계도 신선함을 잃을 것이다. TV 방송과의 차별성, 일반인 유튜버들과의 경쟁을 의식한 무리수나 엉뚱함도 자주 보인다. 탁재훈은 경찰서 취조실 컨셉으로 19금 토크를 유도하고, 이용진은 맥락 없이 튀르키예인으로 변신하고, 김대희는 내복 바람으로 밥을 먹고, 강남은 쓰레기를 줍는다. 방송 수위 너머 날것을 보여준다며 취하도록 술도 마신다. 이영지의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 조현아의 ‘목요일 밤’, 기안84의 ‘술터뷰’, 성시경의 ‘만날텐데’가 그렇다. 이 채널들은 게스트의 가감 없는 모습으로 자주 화제를 모은다. 하지만 주취 폭력 만연한 대한민국에서 유명인이 술 마시며 노는 모습을 수백만 명이 지켜본다는 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그럼에도 유튜브 토크쇼에는 아직 신선한 매력이 있다.
사실 요즘 지면 매체는 매니지먼트사에서 인터뷰 질문지를 요구하고 사전 검열하는 경우가 많다. 섭외에 급급한 매체들이 거기 호응하면서 깊이 있는 인터뷰가 점점 희귀해지고 있다. 화보가 주력인 패션 잡지는 인터뷰 시간 자체도 짧다. TV에서는 스타들이 긴 호흡으로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토크쇼가 사라진 지 오래다. 만인의 스타가 아닌 이상 출연자의 삶을 위인전식으로 설명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방송이 무거워지고 시간제한에도 걸린다. 소비자가 여러 미디어로 분산되면서 방송에서 긴 시간을 할애할 만한 ‘국민 스타’가 배출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라디오스타>처럼 에피소드 위주로 웃음을 유발하는 토크쇼가 명맥을 이어갈 뿐이다. 이런 유의 토크 예능은 답변 끊기와 몰아가기, 발언권을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 때문에 ‘예능 울렁증’이 있는 스타들에게는 부적합하다. 연예인이 대면으로 진행하고, 인맥으로 섭외하고, 시간도 길게 할애하는 유튜브 토크쇼가 그나마 스타들의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창구다.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한 토크쇼가 여럿 있다.
이영지의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 조현아의 ‘목요일 밤’은 스타들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차쥐뿔에는 예능 단독 출연이 많지 않은 아이돌이 자주 등장한다. 조현아의 채널에는 수지, 신혜선이 출연해 무장해제된 모습을 보였다. 팬들에게는 훌륭한 서비스다. 이영지와 조현아 자체가 술 마시면 흥이 오를지언정 선을 넘는 캐릭터는 아니어서 ‘술방’이라는 위험한 설정이 예능으로 승화된다.
설정보다 진행자의 개성이 콘텐츠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는 또 있다. 요리와 토크를 결합한 웹 예능도 비의 ‘시즌비시즌’, 김재중의 ‘재친구’, 정재형의 ‘요정재형’ 등으로 다양한데, 각각 시청층이 다르다. 예컨대 ‘요정재형’은 웹 예능 특유의 B급 감성이나 데시벨 높은 방송에 지친 사람들, 그리고 여성 패션지 독자층에 소구할 만한 프로그램이다. 정재형의 인맥이 방송계, 음악계, 패션계를 망라하는 덕에 게스트도 쟁쟁하다. 정우성, 공효진, 엄정화, 장윤주, 김태호 PD 등이 정재형의 식탁을 다녀갔다. 그들의 대화는 친밀하되 적절한 품위가 있다. 무엇보다 파리지앵이라는 정재형의 별명과 어울리게 비주얼이 차분하고 우아하다. 유튜브의 높은 텐션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안소희 채널의 인터뷰 시리즈도 매력적일 테다. 시종 수줍어하는 그의 모습은 TV 토크쇼 진행자로는 부적합할 수 있다. 하지만 박보영, 태민 등 그와 결이 맞는 사람들이 출연해 예쁜 공간에서 조곤조곤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이 아늑하다. 취향이 확실한 유저들을 위해 저비용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건 기존 방송과 유튜브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유재석의 ‘핑계고’는 유튜브 토크쇼만의 미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콘텐츠다. <유퀴즈>의 유재석은 정중하다. 위인전식 인물 소개, 작위적인 질문이 종종 있고 편집이 대화의 흐름을 자주 끊는다. ‘핑계고’의 유재석은 한결 편안해 보인다. 매번 다른 게스트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조세호, 남창희, 지석진은 거의 고정 멤버다. 방송가의 ‘유재석 라인’ 중에서도 액션보다 리액션에 강하고 소란스럽지 않은 캐릭터들이다. 이따금 출연하는 배우들도 여기선 유독 편해 보인다. 차태현이야 워낙 예능인이지만 조인성, 한효주, 이동욱이 방송을 의식하지 않고 신변잡기를 풀어놓는 모습은 신선했다. ‘핑계고’에서는 대화가 거의 끊기지 않는다. 출연자가 많아도 발언권을 얻으려 경쟁하는 대신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한다. 별것 아닌 대화도 화기애애하게 흘러가서 굳이 자극점을 찾아 모을 이유도 없다. 라디오처럼 일상의 배경으로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기에도 적합한 콘텐츠다. 놀이 예능의 시대를 열었던 유재석은 이제 토크쇼의 시대마저 평정할 기세다.
결국 아무리 유튜브라도 토크쇼의 생명은 ‘토크’다. 장도연의 ‘살롱드립’은 초반에 귀부인의 티타임 설정으로 진행자와 출연자 모두 민망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순간이 많았다. 초반에도 공유, 이동욱이 출연해서 조회 수야 높았지만 장도연의 입담이 살아난 건 컨셉을 자연스럽게 바꾼 최근의 일이다. 진행자의 개성에 맞는 연출은 콘텐츠의 지속 가능성과도 관련이 있다. 스타들이 각자의 개성과 재능을 살려 다양한 인물, 새로운 이야기, 다른 미디어에서 접할 수 없는 유희를 발굴한다면 유튜브 토크쇼가 얼마나 많든 뭐가 문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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