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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꼭 알아야 할 디자이너, 월터 알비니

2023.09.22

당신이 꼭 알아야 할 디자이너, 월터 알비니

이탈리아 최초의 패션쇼는 1951년, 피렌체에서 열렸습니다. 이후로도 이탈리아 출신의 디자이너들과 꾸뛰리에는 피렌체에 모여 쇼를 선보였고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왜 피렌체가 아닌 밀라노를 ‘패션 수도’라 부를까요?

이탈리아 패션의 패권이 피렌체에서 밀라노로 옮겨간 것은 1971년인데요. 그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디자이너가 바로 월터 알비니입니다. 그는 당시 이탈리아를 대표하던 디자이너인 미쏘니, 크리지아, 그리고 켄 스콧(Ken Scott)과 함께 피렌체의 피티 궁전을 떠나 밀라노로 향하는데요. 당시 ‘Collezioni Donna(여성 컬렉션)’라는 이름으로 열렸던 컬렉션은 성공적이었고, 이는 밀라노 패션 위크의 초석이 됩니다. 그뿐일까요? 알비니는 컬렉션의 모델 역할을 자처하며 시선을 즐기는 슈퍼스타였으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전형을 제시했죠. 1975 F/W 컬렉션에는 같은 옷을 입은 남녀 모델들을 등장시키며 성별 간의 경계를 허물기도 했습니다.

1983년, 42세의 나이로 단명한 천재의 이름을 지금 갑자기 언급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난 5월, 라시드 모하메드 라시드(Rachid Mohamed Rachid)가 운용하는 투자사 비다야트(Bidayat)가 브랜드 ‘월터 알비니(Walter Albini)’의 부활을 알렸거든요. 그리고 바로 며칠 전, 월터 알비니의 공식 웹사이트가 공개되었습니다.

홈페이지에는 그가 패션계에 어떤 지각변동을 일으켰는지 상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는 커리어 초기, 1920년대 할리우드의 자유분방한 라이프스타일에서 크게 영감을 받았는데요. 이후 퀴어 문화까지 흡수하며 더욱 화려하고, 때로는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디자인을 선보이며 지아니 베르사체 같은 디자이너에게 큰 영향을 줍니다. 알비니는 패션 디자이너의 역할을 확장하기도 했는데요. 직접 새로운 소재를 연구하는가 하면, 원단 공장과 더욱 긴밀하게 협업하며 디자이너의 임무가 디자인에 그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1971년, 밀라노에서 쇼를 선보이며 기성복 컬렉션의 원형을 제시한 것도 그였죠.

walteralbini.org

웹사이트에는 수많은 디자이너, 에디터 등이 알비니에 대해 남긴 헌사 역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놀로 블라닉은 그를 ‘이탈리아 하이패션의 정수’라 불렀고, 마크 제이콥스는 별다른 설명은 필요 없다는 듯 “알비니가 최고다”라고 말했죠. <보그 이탈리아>의 전설적 편집장, 카를라 소차니 역시 그를 ‘이탈리아 기성복의 아버지이자 혁신가’라 칭했고요.

Photo by Alfa Castaldi
Getty Images

비다야트 그룹이 월터 알비니 브랜드의 부활을 천명하며 돌았던 흥미로운 이 하나 있습니다. 자유인이 된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월터 알비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을 것이라는 루머였죠. 지금까지도 비다야트 그룹과 미켈레는 루머를 부인하지도, 긍정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미켈레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로 월터 알비니를 꼽는 등 그를 향한 존경심을 숨기지 않았지만, 흥미롭게도 그가 남긴 코멘트는 웹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침묵이 루머에 대한 긍정일지, 유심히 지켜봐야겠네요!

사진
Courtesy Photos,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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