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문의 검’, 14년 전 기억을 이용해본다면 어떨까?
2019년에 방영한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욕을 많이 먹었다. 상고시대가 배경인데 설정과 관계없는 의상과 소품에 대해 시청자들은 미흡한 고증을 지적했다. <왕좌의 게임> 시리즈를 벤치마킹한 듯 보였지만, 그보다 작은 스케일과 빈약한 스토리도 비난받았다. 그런데 이런 혹평에 제작진이 “시청자들이 작품의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대응해 또다시 논란을 키웠다. 당시 나는 그 모든 비판에 공감하면서도 <아스달 연대기>를 꽤 즐기면서 봤다. 이 드라마의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그보다 10년 전에 내놓은 <선덕여왕> 때문이었다. <선덕여왕>을 즐겨 본 입장에서 <아스달 연대기>를 둘러싼 비난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선덕여왕> 역시 고증과 완성도에서 많은 부분을 지적받은 드라마였다. 대신 <선덕여왕>에는 미실이라는 엄청난 캐릭터가 있었다. <선덕여왕>은 <아스달 연대기>에 비해 세계관이 훨씬 더 작은 드라마였다. 그래서 오히려 ‘떡밥’과 ‘복선’의 힘이 컸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구조가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세상을 떠돌며 겪는 온갖 고생과 모험을 통해 결국에는 승리하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 설정은 <아스달 연대기>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예언과 함께 태어난 아이들이 있다. <선덕여왕>에서 진흥왕이 죽은 후 국선 문노는 “미실을 대적할 자, 북두의 별이 여덟이 되는 날 오리라”라는 계시를 받는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덕만과 천명 쌍둥이다. <아스달 연대기>에는 “세상을 울릴 방울, 세상을 벨 칼, 세상을 비출 거울, 그 셋이 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있고, 이 예언의 주인공은 은섬과 사야, 탄야다. 은섬과 사야는 쌍둥이인데, 한 명은 궁에서 자라고 다른 한 명은 궁 밖을 떠돌다가 먼 훗날 궁으로 들어온다. <선덕여왕>의 덕만도 그랬다. <선덕여왕>을 즐겨 보았다면, 작가들이 촘촘히 숨겨놓은 복선에 놀랐을 것이다. <선덕여왕> 3회에서 덕만은 화주(돋보기)를 얻는데, 39회에서 이 화주는 진흥왕의 유품 소엽도에 적힌 세밀한 글자를 읽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무려 36회에 걸친 복선이었다. 그런가 하면 <아스달 연대기>의 탄야는 어릴 적부터 배운 정령의 춤을 이용해 12회에서 별방울의 위치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아스달의 대제관으로 등극한다. 무엇보다 두 작품은 모두 본능적으로 착하고 정의로운 주인공이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얻으면서 힘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거의 똑같은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선덕여왕>을 즐긴 덕분에 <아스달 연대기>를 무리 없이 시청했다면, 시즌 2인 <아라문의 검>에서도 14년 전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주요 배우들이 바뀌어서 다소 헷갈리기는 하지만). <아스달 연대기> 마지막 회에서 8년 후 시점. 은섬은 30개나 되는 씨족의 통일을 이루어낸 아고족의 수장 이나이신기가 되었고, 탄야는 아스달 백성들의 신뢰를 받는 자애로운 대제관이 되었다. 타곤은 아스달의 왕이고, 태알하는 왕의 아이까지 낳은 왕후이며, 은섬의 쌍둥이 형제이자 타곤의 양자인 사야는 태알하의 아들과 왕위를 놓고 경쟁 중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정치극을 보여주는 상황인데 이 또한 <선덕여왕>과 비슷하다. 드디어 한곳에 모인 주요 인물들이 벌이는 인정 투쟁의 상황. 내 편이라고 여겼던 사람이 등 뒤에서 칼을 들이밀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적과도 손을 잡아야 하며, 정적을 통해 자신도 성장하는 이야기(덕만은 미실이 죽은 후 “당신이 없었다면 난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모른다”고 독백했다). 가장 선한 캐릭터로 보이는 탄야에게서 미실의 흔적이 보이는 것도 흥미롭다. 공포로 세상을 지배하는 미실처럼, 탄야 또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용해 대신전의 힘을 키운다. “아스달을 공포로 지배하는 건 당신만이 아니에요.” 그런가 하면 정치적 공생 관계인 타곤과 태알하의 모습은 <선덕여왕> 속 진지왕과 미실의 관계에 빗댈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아스달 연대기>에 이어 <아라문의 검>까지 보게 된 이유는 결국 ‘추억’이다. 14년 전 즐겨 보았던 TV드라마에 얽힌 추억의 재현. 동시에 이미 아는 이야기를 또 다른 캐릭터와 인물들을 통해서 보는 듯한 익숙함 때문이 아닐까? 중국의 무협 소설이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로 리메이크되는데도 사랑받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지도. 그래서 14년 전 기억이 없거나 희미한 사람들에게 <아스달 연대기>와 <아라문의 검>은 편하게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14년 전 <선덕여왕> 때와 달리 지금은 수많은 요약 영상과 해설 영상이 있는 시대지만, 결국 그런 영상도 관심이 있어야 보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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