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이 눈뜰 때
명장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는 곳에서도 인내심을 갖고 연마한 기술로 예술품을 만든다. 희귀 주얼리 공예의 숨은 영웅을 <보그>가 만났다.
어떤 주얼리 장인은 자신이 만드는 작품의 스타일에 작은 변화를 주는 데 만족하며 편안한 길을 간다. 하지만 이들과 전혀 다른 욕심을 가진 주얼리 장인이 있다. 그들은 아름다운 액세서리의 범주를 뛰어넘어 보는 이의 감각을 자극하면서 착용할 수도 있는 상상력이 가득한 순수 예술품을 만들겠다는 의욕이 강하다. 이런 예술 작품은 보통 원재료를 세상에 단 하나뿐인 걸작으로 탄생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기술을 연마해온 명장의 노력으로 탄생한다. 그렇다면 이런 명장은 어떤 기술로 남들보다 더 특별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걸까?
위대함을 담은 브러시
태블릿 펜과 인공지능 시대에 종이에 과슈 기법으로 주얼리를 디자인한다는 개념은 이상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기법은 방돔 광장의 가장 고급스러운 주얼리 하우스에서 여전히 쓰인다. 우크라이나 태생의 이네사 코발로바(Inesa Kovalova)는 이 기법으로 연습하는 것은 주얼리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자 하는 사람뿐 아니라 아마추어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건축 디자인을 전공하고 회사 소속 주얼리 디자이너 경력이 있는 코발로바는 자신이 설립한 학교 드로 미 어 주얼(Draw Me a Jewel)에서 과슈 기법과 주얼리 일러스트를 가르치고 있으며,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강의도 한다. “주얼리 일러스트가 브랜드의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요. 주얼리 언어의 일부이기도 하고, 주얼리 사업 가치관의 일부이기도 하죠.” 그녀의 말이다. 깊이와 질감이 있는 전통적인 과슈 그림은 디지털로 재현하기 어려운 독특한 모양과 느낌을 만들어낸다. 주얼리 하우스에서는 기록 보관소에 그림의 사본을 보관하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므로 원하는 고객은 구매할 수도 있다.
코발로바는 어떤 모양을 입방체나 원기둥 같은 ‘기본 도형 조각’으로 분류하는 법을 가르친다. 물체에 비치는 빛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과 보석과 주얼리에 명암을 올바르게 배치해야 할 필요성도 항상 수업에서 강조한다. 이 모든 것이 복잡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코발로바는 음악가나 회계사처럼 그림에 대한 특별한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며 배우면 된다는 확신을 준다.
서정적인 왁스 주조법
로스트 왁스 주조는 전 세계적으로 금속 성형에 사용되지만,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의 아칸족 출신 금세공인들은 독특한 기법을 사용한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보석 세공사 에메파 콜(Emefa Cole)은 이 기법을 사용하면 기존 방법으로는 제작할 수 없는 것들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점토와 숯으로 조형물을 만든다. 그 조형물에 밀랍을 바른다. 밀랍을 바른 조형물을 다시 점토로 겹겹이 껍질처럼 감싼다. 주형을 만들기 위해 밀랍을 녹일 때 금, 은, 황동 또는 청동으로 채워진 도가니를 주형에 부착해둔다. 용융 금속이 밀랍이 녹으면서 생긴 빈 공간을 채울 준비가 될 때까지 굽는다. 주형이 식으면 점토 껍질을 깨뜨려 주조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방법에는 늘 놀라운 요소가 있어요.” 콜의 말이다. 이 기법은 간단해 보이지만 훌륭한 주얼리나 오브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조합하기 위해서는 전문 지식과 정밀함이 필요하다. 따라서 거장이 되려면 수년간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수년 동안 배운 것은 작업할 때 인내심을 가지고 서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인내심 없이 서두르면 아무 일도 되지 않아요.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죠”라고 콜은 말한다. 하지만 이 기술은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기술을 배우려면 가나 아샨티(Ashanti) 제국의 군주 아산테헨(Asantehene)의 특별한 허가가 필요하다.
완전한 날갯짓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가장 화려했던 장신구를 고르라면 단연 백로, 왜가리, 공작 같은 새의 화려한 깃털로 만든 머리 장식일 것이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깃털을 보석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깃털을 주얼리에 포함시키는 전통이 피아제의 커프스, 목걸이, 시계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이 신비로운 예술 뒤에는 넬리 소니에(Nelly Saunier)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독특한 장인 정신을 지닌 최고의 명장에게 타이틀을 부여하는데 그녀는 그중 하나인 깃털 예술 명장(Maître d’Art Plumassier) 타이틀을 얻었다.
깃털을 선택하려면 새와 새의 환경, 깃털의 미적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소니에는 설명한다. “날개 달린 친구들에 대한 철저한 지식이 필요해요. 이런 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죠. 저는 어릴 때부터 시작해 여전히 새와 깃털을 공부하고 있어요.” 그녀는 어린 시절 프랑스 시골에서 자라면서 새에 매료되었다.
“깃털은 그 자체로 이미 자연이 우리에게 준 예술 작품이에요.” 그러면서 장인은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는 깃털을 고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소니에는 문하생들에게 인내심, 세심함, 용기, 시행착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녀는 엄격한 기준과 종 보호를 위한 워싱턴 협약에 따라 유럽에서 사육된 새의 깃털을 사용한다.
롤링 스톤
조각을 뜻하는 그리스어 글립토스(Glyptos)에서 유래한 글립틱스, 즉 보석 조각술은 보석을 조각해 인타글리오(모양에 따라 표면을 파내는 음각 기법), 카메오(양각하는 방식), 미니어처 조각품을 만드는 기술이다. 패시팅(단면을 절단해 광택을 내는 기법)을 통해 보석의 광채를 극대화하는 세공 기술과는 구별된다. 보석 조각술의 시작은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이 고대로 퍼져 나갔다. 고대에는 돌에 문장을 새겨 인장이나 신분증으로 사용했다.
고대 예술의 수호자로서 가장 큰 찬사를 받는 인물로 꼽히는 필립 니콜라스(Philippe Nicolas)는 대표 디자이너로서 까르띠에에서 차세대를 양성하고 매년 주얼리, 시계 또는 오브제 같은 소수의 정교한 작품을 제작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호모 파베르 전시에서는 화이트 오팔 블록을 조각해 아르데코 양식을 연상시키는 기하학적인 다이아몬드 단추가 달린 띠로 감싸 사과 크기의 귀중한 유백색 상자를 선보였다. 이 상자는 칼세도니를 조각해 만든 세 송이의 벚꽃이 장식된 팔찌로 변모한다. 작은 벚꽃은 뚜껑에 장식했고 가장 큰 벚꽃은 브로치로도 사용 가능하다. 응용 예술 학교에서 조각을 가르치지만, 보석 조각술은 공방에서 장인의 지도 아래, 작업 경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고 니콜라스는 말한다. “조각 기술뿐 아니라 여러 다른 기술이 필요합니다. 원석을 직접 구입하기 때문에 원석 고르는 법, 구입하는 법도 알아야 해요. 이것이 학습 과정의 첫 번째 단계예요. 그다음에 드로잉을 배웁니다. 원석마다 적용해야 할 기술과 미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원석에 따른 지침대로 그림을 그리고 제작합니다.”
특정 효과를 얻기 위해 그는 종종 자신만의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다. “원석을 가지고 앞으로 자신이 뭘 할지 아는 본능과 직관, 그러니까 원석 안에서 무언가를 볼 수 있는 창의력이 아마도 가장 중요한 기술일 겁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금처럼 가치 있는
금에 무늬를 새기는 것은 가장 까다로운 공예 기법에 속한다. 고대부터 금세공인들은 끝이 날카롭게 각진 작은 끌과 같은 도구인 조각칼을 사용해 금 표면에 선, 모양, 패턴을 새겨 넣었다. 부첼라티는 리가토, 오르나토, 세그리나토 등 고유의 세공 기법으로 유명하다. 반면 피아제는 궁전 데코 디자인으로 주얼리와 시계를 장식한다.
조반니 코르바야(Giovanni Corvaja)같이 좀 더 실험적인 장인들은 얇은 금사로 만든 주얼리를 제작하기도 하는데 이는 보석 장식의 부드러운 곰 인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는 열세 살에 세공 기술을 배웠다. 그 후 특수 다이아몬드 다이스를 구입해 매우 얇은 금사를 만들고 섬유 산업 전문가로부터 금사를 착용 가능한 물건으로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 코르바야는 골든 플리스 팔찌와 머리 장식 시리즈처럼 금사를 복잡하게 엮고 꼬아 만드는 방식으로 섬세한 주얼리를 제작한다. 코르바야 역시 자신의 기술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이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피아노 연주법을 가르치는 것과 같아요. 가르쳐준 다음에는 학생들이 연습을 해야 하죠.”
또 다른 금세공 명장은 아켈로(Akelo)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안드레아 카녜티(Andrea Cagnetti)다. 카녜티는 에트루리아 문명의 중심지였던 비테르보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는 에트루리아 사람들이 완성한 세립 세공 기법에 빠졌다. 이 기법은 미세한 금 알갱이를 이용해 무늬를 만드는 기법이다. 카녜티는 19세기 에트루리아의 기술을 재현한 금세공인 지아친토 멜릴로(Giacinto Melillo)와 알레산드로 카스텔라니(Alessandro Castellani)를 연구한 후 금 알갱이를 패턴으로 고정하기 위해 21캐럿의 금과 다른 물질을 혼합하는 실험을 했다. 강의에서 몇 가지 원리를 공개했지만 그는 비법만큼은 비밀에 부쳤다. “혼합물에 대해 책에 쓰긴 했지만, 가능한 한 늦게 출간할 계획입니다.” 그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VK)
- 글
- Milena Lazazz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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