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외할아버지에게 받은 것 #김주혜 #작은 땅의 야수들
권오경, 허주은, 악시 오, 김주혜, 그레이스 M. 조. 5인의 소설가는 이국에 머물지라도 태어난 땅의 역사를, 어머니가 들려준 경험을 잊지 않고 작품으로 발화했다. 이들이 쓴 이야기는 여러 나라의 독자를 한국의 아픈 과거 혹은 아름다운 세계로 이끈다.
김주혜 작가는 독립운동가 외할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다시 자신에게 전달한 이야기를 발화해 <작은 땅의 야수들>로 완성했다. 설경 속 호랑이로 시작된 이 작품은 고전적이고, 목가적이며, 작가 본인처럼 강인하다.
인천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이주해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번 가을 런던으로 이주했는데 어떤 연유인가요? 작가에게는 주변 환경이 무척 중요합니다. 새롭게 접한 풍경과 사람, 자극이 소설로 발화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런던 생활에 어떤 기대감을 갖고 있나요?
2009년에 프린스턴을 졸업하고 거의 10년을 뉴욕에서 지냈어요. 그 후 포틀랜드로 돌아가 4년 지내고 얼마 전에 런던에 왔어요. 사실 런던은 저를 위해서가 아니고 남편을 위해서입니다. (뉴욕에서 만난 남편은 기후변화 탄소 회계 테크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환경이 중요하다는 말은 진심으로 동감해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가장 끌리고, 자신 있고, 먼저 상상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대사를 먼저 떠올리는 작가도 있고, 등장인물을 깊게 설정하는 이도 있고… 그런데 저는 집필 중 가장 먼저 풍경을 알아야 합니다. 계절, 날씨, 그 순간 햇빛, 하늘의 색채. 이걸 알면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풍경이 각인된 곳, 오리건, 남부 프랑스와 파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광활한 덤불은 늘 영감을 주고 글에도 나타납니다. 놀랍게도, 파리와 첫눈에 사랑에 빠진 것처럼 런던에 매료되지는 않았어요. 외형적으로 런던도 파리 못지않게 아름다운데 뭔가 영혼적으로는 덜 맞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잠시 머무는 이방인으로서도 그 본질을 바로 알고 동화되는 느낌이었는데 런던에서는 노팅힐같이 그림 같은 곳에서도 뭔가 겉도는 느낌? 하지만 행복과 감흥을 주는 환경만 글을 쓰게 도와주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땅의 야수들>을 쓴 곳도 힘든 추억만 가득한 뉴욕인 것처럼, 모든 인생의 경험이 집필에 도움이 되죠.
특히 모국어에 자부심이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아홉 살에 이민 갔지만, 여전히 영어와 한국어, 이중 언어 사용자입니다. 소설가에게 언어란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중 언어를 쓴다는 것이 장점 혹은 어려운 점일 수 있는데 어떤가요?
이중 언어(또는 제3·4의 언어) 구사력은 작가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왜냐면 어떤 소설이 단순한 오락을 지나 예술이라고 불릴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철학입니다. 그런데 그 철학은 저자의 인생관과 함께 그의 언어에도 원천을 두고 있어요. 예를 들어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같은 로망스 언어는 모든 사물, 컨셉 등 명사 앞에 Le, Lo, La 등을 붙여 남녀를 구별하는데, 반의식 속의 깊은 의인화는 남미에서 나온 마술적 리얼리즘(Magical Realism)과 경이로운 사실(Lo Real Maravilloso) 문학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한편 한국어는 의성어, 의태어가 많아 질감이 굉장히 다양하고, 그 사이사이(예를 들어 ‘자박자박’과 ‘저벅저벅’의 차이)에 연민의 색채가 진하게 묻어나죠. 심지어 아이디어도 형상화해(예를 들면 화목을 ‘오순도순’으로 형상화) 본질적으로 시적(Lyrical, Poetic)이며 동시에 한국어 고유의 감성, ‘정’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한국어는 다른 언어에 비해 말하는 자와 그 상대의 관계성이 무척 중요합니다.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그저 반대말과 존댓말을 파악하는 게 아니라, 가족과 사회의 모든 미묘한 관계를 인지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어는 또 주어가 필요 없어요. 이 모든 한국어 문법은 자신보다 상대를 존중하게 만들고, 문학으로 찾아낼 수 있는 연민, 즉 ‘감동’을 강조하죠. 이런 모국어가 정신의 토양이기 때문에 애국심, 희생, 신의같이 지극히 한국적인 가치관을 가진 소설을 쓸 수 있었습니다.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단편소설을 쓰며 생활고도 겪었죠. 그 상황에서 6년여간 첫 장편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에만 매진한 것도 대단한 용기와 끈기입니다. 무엇이 당신을 결과가 불확실한 그 시간 동안 소설에 매진하도록 도왔나요? 그동안 지켜온 작업 규칙이 있나요?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같은 출판사 상사와 동료들에게 읽어봐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다들 집어치워라, 넌 별로다, 이런 식으로 답하더라고요. 그런데 남들이 무시하면 할수록 ‘아니다, 남보다 나 스스로를 더 믿는다’는 믿음이 솟구쳤습니다. 사실 아무 이유 없이 자신감이 별로 없었고 불안감과 의구심에 많이 시달렸죠. 다만 강렬하고 생생하고 고결한 영감의 순간들이 몇 번 있었는데, 그렇게 쓴 작품은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등단 작품인 <보디랭귀지> 집필이 그랬고, <작은 땅의 야수들>은 처음 쓰기 시작한 날 이미 그 스토리가 살아서 존재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 2년쯤 후, 정말 앞이 캄캄하게 피로할 때가 있었어요. 매일 퇴근 후 밤 9시쯤 밥 먹고, 10시에 집필 시작해서, 새벽에 노트북을 겨우 침대 한쪽에 놓고 잠들었죠. 그런데 어느 날 아주 생생한 꿈을 꿨습니다. 길고 무시무시한 터널을 운전해서 나오니 햇빛이 찬란한 계곡이 나왔어요. 깼을 때 ‘아, 터널은 일단 들어가면 뒤돌지 못한다, 앞으로 계속 진전해야 된다, 그럼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라고 여겼습니다. 그 메시지에 힘을 얻어서 다시 몇 년 매진했습니다. 주중에는 출근 전, 퇴근 후 몇 시간씩 매일 쓰고, 주말에도 집안일 해결하고 남는 시간은 거의 다 집필에 몰두했습니다. 그렇게 나이 서른을 넘으며 몸이 많이 쇠약해졌는데, 그래도 부모님께 보답하기 위해 포기할 수 없었어요. 모든 한국 가정이 다 그렇지만, 특히 이민자로서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이 극진했기 때문에 끈기를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첫 장편 <작은 땅의 야수들>이 평단의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현재 13개국에 번역·출간되었는데, 한국 출간은 남다른 의미가 있겠죠. 외국에서 자란 작가가 쓴 일제강점기 배경의 한국 이야기라는 점이 한국인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설렘과 두려움이 섞이지 않았을까요?
바로 그런 정체성 지적에 관한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책이 출간되자 수많은 한국 독자가 “어떻게 1987년생 재미 교포가 이렇게 한국적인 소설을 쓸 수 있었는지 놀랍다”는 격려의 말씀을 보내줬어요. 그리고 20세기 한국문학의 큰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조정래 선생님의 <아리랑>에 비교되는 영광도 입었는데 실제로 영향을 받은 저로서는 너무 감사했습니다. 한국 역사를 그저 소재로만 삼았다기보다 한국문학의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여겼고,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또 우려한 점은 현재 한국에서 출간되는 책은 훨씬 도회적이고, 초경쟁 현대사회의 냉소와 기괴미를 많이 표상하는데, <작은 땅의 야수들>같이 고전적이고 목가적인 작품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홍범도 장군 같은 독립운동가를 평가절하하고 독재자를 긍정적으로 재조명하는 등, 정치적 이득을 위한 역사 왜곡을 보며 예상외로 <작은 땅의 야수들>이 지금 한국에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제 책이 현재 한국과 거리가 멀지 않고, 나라 위해 몸 바친 애국자들에 대한 명예훼손이 없으면 더 좋을 텐데 말이죠.
<작은 땅의 야수들>은 어느 겨울, 눈 내리는 공원을 걷다가 문득 떠오른 ‘설경 속 호랑이를 마주한 사냥꾼’이 모티브입니다. 1917년 호랑이에게 공격받는 일본군 대위를 사냥꾼이 구하면서 소설이 이어집니다. 포틀랜드에 머무는 작가가 떠올리기는 어려운 이야기죠. 하지만 김구 선생님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신 할아버지께서 당시 이야기를 딸에게, 다시 그것이 당신에게 전달되었죠. 그것이 당신에게 내재하다 발화했는데요. 앞으로 당신의 작가 인생에서 이런 한국적인 역사 이야기가 오래 자리할까요?
너무 과격하게 들릴수 있는데 글은 생사를 걸고 쓰지 못하면 차라리 안 쓰는게 바람직하고 종이 절약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작은 땅의 야수들>에 쏟은 것처럼 책을 쓰면 평생 장편 넷, 많아야 다섯 편밖에 못 씁니다. 그렇게 시간과 생명력이 한정되어 있으니 ‘X, Y, Z가 과연 내가 증언하고 싶은 진실인가?’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나무 베어서 굳이 책이라는 걸 만들어도 부끄럽지 않으려면 의미 있는 스토리를 써야 하고, 성공 못하더라도 그런 목표는 있어야 합니다. 독립운동은 첫 소설로 쓸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주제였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한국 이야기든 아니든, 가치 있고 진실한 주제를 찾아 집필하려고 해요. 역사소설은 아니지만 미래의 한국 또는 한국 디아스포라를 다룬 작품도 있습니다. 하나는 단편 <바이오돔>이고 나머지는 아직 출간되지 않은 새로운 작품이죠.
할아버지를 통해서나, 스스로 한국 역사를 공부했더라도, 내가 직접 보고 듣지 않은 것을 쓰는 두려움이 클 듯합니다. 어떻게 극복했나요?
그 두려움이 적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제가 너무 멋모르는 하룻강아지였습니다. 아직 한 번도 책을 써본 적 없어서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지도 못했죠. 그리고 둘째로는 한국 근대소설을 읽었을 때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갖고 살았는지 깨달아서였습니다. 놀랍게도 일제감정기의 사람들은 지금 우리와 똑같은 희망, 욕구, 원동력, 고민을 안고 살았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이 왜,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역사책에서보다 보편적인 인간성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가 어떻게 역사에 기록될지 우리가 모르고 사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 시기는 그저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호랑이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호랑이와 아무르표범(조선표범)을 한반도로 복원하는 한국범보전기금 홍보대사이며, <작은 땅의 야수들> 인세를 호랑이 보호 비영리단체인 피닉스 펀드에 기부합니다. 집필하면서 자연스럽게 전통 호랑이에 대한 관심이 커졌겠지만, 유독 이 운동에 열정을 쏟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열아홉 살 때부터 비건을 실천하며 동물 권리과 자연보호 활동을 하고 있어요. 처음 집필을 시도하면서부터 보호 단체에 책 인세를 기부하고 홍보도 돕는 게 꿈이었습니다. <작은 땅의 야수들>은 당연히 한국 호랑이와 표범을 돕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믿었는데, 소설에 직접 등장하는 ‘인물’일 뿐 아니라 한반도의 둘도 없는 상징이자 한민족의 형제이기 때문이죠. 세계 독자들은 대부분 책 제목의 ‘야수들’을 식민 시대에 일그러져가는 잔인한 인간상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한국 독자들은 모두 ‘몸을 바쳐 독립을 얻어내고 마지막까지 꺾이지 않은 우리의 조상들’이라고 해석하죠. (저자인 저는 물론 후자라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심지어 어떤 독자는 <작은 땅의 야수들> 서평에 “우리 할머니 때만 해도 강원도 산골에는 호랑이가 있었는데, 절대 사람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도와준다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는데, 제가 외할아버지를 기리며 독립운동을 과거가 아니라 우리 현재의 일부라고 느끼는 그대로였어요. 그만큼 우리는 아직도 한국 호랑이와 한국 표범을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를 돕는 한국범보전기금은 서울대 수의과 명예교수 이항 교수님이 이끄는 비영리단체로, 유전자 연구와 함께 보유국인 중국, 러시아와 협력해 호랑이와 표범을 한반도로 복원시키고 균형이 깨진 우리 생태계까지 되살린다는 큰 포부를 갖고 일하고 있어요. 오랜 시간 거시적인 목표를 향한 꾸준하고 지침 없는 보호 활동을 보고 제 고개가 많이 수그러졌습니다. 관심 있는 분은 한국범보전기금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마음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후원해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더 나은 소설을 쓰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책과 명작을 고루 읽고, 다른 예술을 자주 접하고, 마음과 정신을 열면 집필에 도움이 됩니다. 규칙적인 생활, 산책, 운동, 음악 연주, 발레, 박물관 관람, 여행이 주로 창작을 돕죠. 정말 원하는 것은 다른 언어를 습득하는 것인데 프랑스어로 생활은 하지만 한국어, 영어처럼 구사하거나 창작은 못합니다. 마음 같아선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배우고 하나 더 배우고 싶어요. 그런데 더 나은 소설 쓰는 데 가장 노력해야 하는 것을 묻는다면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더 인내심 있고, 관대하고, 마음 깊이 사랑해야 결국 더 좋은 예술을 창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불같은 호랑이 성격으로 이게 가장 힘듭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모든 작가의 문학관이 동일하진 않습니다. 다양한 스토리가 다양한 이유로 쓰이고 읽힙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면, 지금 인류가 필요한 것은 냉소적이고, 아이러니하고, 자기 자신만 탐구하는 솔립시즘(Solipsism)보다 세상을 연민으로 바라보게 하며 용기와 양심을 일깨우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현대 소설은 사회의 문제점을 통렬히 비난하고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데 그칩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예술은 어떻게 인간이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지 제시하고, 깊이 잠재된 양심과 영혼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문학은 그럴 수 있는 힘, 의무가 충분하다고 믿어요.
두 번째 장편소설을 집필 중이죠. 어떤 이야기이며, 왜 그 이야기를 씁니까?
장편 <메멘토 비태>는 이미 탈고했고 미국 편집자와 편집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미국에서 출간 후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는데, 벌써부터 번역 과정이 기대됩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인생의 큰 열정이자 테마가 된 발레를 주제로 한 소설입니다. <작은 땅의 야수들>을 쓰고 출간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 때문에 예술가 성장소설(Künstlerroman)을 쓰게 됐어요. 첫 소설은 교향곡을 생각하고 썼는데 <메멘토 비태>는 협주곡을 상상하며 썼고, 완성되었을 때 그렇게 들리는 것 같았죠.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파리를 배경으로 어느 천재적 발레리나의 사랑과 낙오와 구원을 따르는, 예술가와 그의 예술 간의 러브 스토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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