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의 예측 불가능한 만남
바야흐로 가을의 절정. 서늘하지만 쾌청한 공기, 노랗고 붉은 색채로 진해진 낙엽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시간의 흐름을 깨닫는다. 공간에 안온한 기운을 채우고, 내면의 고요한 사색을 즐기고 싶은 계절, 논픽션은 의외의 만남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이야기와 향을 전달한다. 바로 1872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작은 가구 공방으로 출발해, 견고한 장인 기술과 탁월한 품질, 기능주의의 도입으로 북유럽을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성장한 프리츠한센과의 협업이다.
향을 매개로 내면의 이야기를 비추는 논픽션과 프리츠한센의 연결 지점은 바로 ‘장인 정신’. 머무는 공간에 정체성과 편안함, 사색의 시간을 부여하는 가구는 모던 헤리티지를 상징하는 동시에 우리 삶이 서린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다. 최상의 원료를 향한 고찰과 조향의 예술성에 대한 깊은 이해도, 도자기 명장의 섬세한 손길로 탄생한 백자 캔들 용기, 재료 본연의 물성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윤라희 작가의 아크릴 오브제 등 예술가의 감각과 노동을 존중하는 논픽션은 장인 정신에 대한 헌정을 주요 모티브로 삼는다. “손에서 탄생시킨 작업은 오래 간직해도 미묘하게 강력한 에너지를 갖는다고 믿습니다. 장인 정신에 대한 존중과 경외는 논픽션과 프리츠한센이 존속하는 동안 변치 않을 가장 중요한 약속과도 같아요.” 논픽션 차혜영 대표의 말이다. 그녀는 “프리츠한센은 150주년 전시 공간을 논픽션의 향기로 채우는 것을 제안해왔어요. 그들이 택한 ‘랍상 송’은 가죽과 샌달우드의 향이 매우 독창적으로 해석된 향으로, 프리츠한센 가구에서 주로 사용하는 물성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무드를 연출할 수 있었죠”라며 작년에 열린 <프리츠한센 150주년 기념전: 영원한 아름다움>을 통해 프리츠한센과 처음 만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두 브랜드의 공통점은 미학에 대한 명확한 이해, 제품과 공간 디자인을 넘어 향과 음악, 소리가 우리에게 미치는 모든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공유,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는 품질에 대한 인식입니다.” 프리츠한센의 아시아퍼시픽 CEO 다리오 레이크(Dario Reicherl)는 이번 협업에 대한 의미를 술회한다. “향은 감성과 가장 밀접한 감각 중 하나이며, 좋은 향기는 좋은 기억을 각인시킵니다. 우리 곁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한 가구에는 우리가 살아온 흔적이 남습니다. 이를 테면 여러 세대를 걸쳐 사용된 ‘내추럴 가죽 체어’는 표면의 스크래치와 변화한 색에 각 세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향기가 기억의 각인을 통해 역사를 기록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번 논픽션과의 작업을 통해 기억을 기록하는 매개로써 향기와 가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룸 스프레이와 캔들로 탄생한 ‘롱 어텀(Long Autumn)’이라는 향.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을 주는 향은 조향사 도미틸 미샬롱 베르티에(Domitille Michalon-Bertier)의 창작물이다. 논픽션과 인연이 깊은 그녀는 프랑스 남부 그라스의 숲을 산책하며 오크와 메이플 어코드의 깊이감, 스파이시 카다멈의 온화함을 최상의 밸런스로 완성해 그야말로 ‘가을’ 그 자체의 향기를 만들어냈다. <보그>는 향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그녀와 나눴다.
서로 다른 분야 브랜드의 정체성을 공감각적으로 구축해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논픽션과 프리츠한센은 늘 영감을 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닙니다. 그들의 철학, 최고의 원료, 높은 품질과 장인 정신에 대한 관심에 매우 공감해요. 이번 프로젝트의 여정은 각 원료의 성격을 표현하고, 그 요소가 지닌 자연적인 불완전함을 승화시켜 내면의 아름다움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열망에서 출발했습니다. 복잡하기보다는 각 원료 본연의 아름다움이 강조되도록 직관적이고 선명한 향조로 작업했죠.
가장 큰 영감이 된 것은?
가을의 분위기, 나무 그 자체입니다. 이번 작업을 하는 내내 2022년에 도빌의 쿠방 데 프랑시스캥에서 본 전시를 떠올렸습니다. 특히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lhan)의 ‘시더(Cedar)’라는 작품을 말이죠. 시간의 흐름을 묘사하는 연속적인 나무 덩어리인데, 나무의 정수를 완벽하게 표현한 작품이었어요.
가구에 생긴 자연스러운 세월의 흔적을 아름다움으로 여기는 ‘파티나의 미학’이 이번 향에도 담겼죠.
파티나는 시간의 흐름, 사용감의 흔적을 일종의 가치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물론 파티나의 효과를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노하우가 있지만, 향초에 사용되는 왁스 또한 하나의 요소였습니다. ‘롱 어텀’에서 저는 왁스 베이스와 향료 각각의 요소가 어우러질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고려했습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더 아름답게, 더 편안하게 발현될 수 있도록 구현했죠.
향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주세요.
각각의 나무가 고유의 면모를 드러낼 수 있는 향의 조합입니다. 예를 들어, 시더우드가 깨끗하고 선명한 우디 그린 노트를 지닌다면 메이플과 오크는 풍부하고 깊이감이 있죠. 특히 오랜 시간 숙성되며 깊어진 좋은 술의 향과도 같은 오크우드의 노트는 부드럽기까지 합니다. 파촐리와 베티베르는 우아함으로 나무 본연의 향을 더 돋보이게 하고요. 인센스의 따뜻함, 시원하고 산뜻한 카다멈의 대비도 느껴지죠.
‘롱 어텀’을 예술 작품에 빗댄다면?
나무로 만든 조각. 책으로 표현한다면 진 헤글런드의 <인투 더 포레스트>.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험하는 아름다운 소설이죠. 음악으로는 재즈에 비유하고 싶군요. 키스 자렛의 앨범 <The Köln Concert>를 추천해요.
당신에게 가을이란?
1년 중 가장 즐기는 시기입니다. 다층적인 감각으로 다가오면서 대비가 선명한 계절이죠. 차가운 바깥의 습도와 장작불 옆에서 휴식을 취할 때 느껴지는 따뜻함의 대비처럼요.
가장 이상적인 가을 풍경은?
아버지가 일궈준 가족 숲에서의 산책. 떡갈나무와 단풍나무, 서어나무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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