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에서, 디올
떠나는 이를 위한 디올의 찬가. 그 멜로디는 멕시코시티로 향한다.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2024 리조트 시즌의 목적지는 멕시코시티다. 우리는 지금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Maria Grazia Chiuri)가 멕시코에 바치는 시를 보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녀가 선보인 플리츠 스커트나 티어드 스커트에 무심하게 넣어 입은 하늘하늘한 셔츠, 멕시코 전통 의상인 우이필(Huipil) 상의에 루스한 느낌의 데님을 매치하는 신선한 룩, 그리고 벨벳 소재나 자수를 활용해 변화를 준 디올의 시그니처 바 재킷까지. 모든 룩에는 나비 모티브가 들어간 골드 체인 목걸이나 실버 벨트 버클이 화려함을 더했고(나비 이미지는 이번 컬렉션 전반에 계속 등장한다), 화려한 스티치를 수놓거나 작은 산호석 비즈로 장식해 멕시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투박한 카우보이 가죽 부츠가 전체적인 룩을 완성했다.
멕시코는 키우리가 오랫동안 애정해온 나라이자 패션쇼를 열고 싶어 한 곳이었다. 키우리는 이전 크루즈 컬렉션과 마찬가지로 테마로 선정한 장소의 디테일에 지나칠 정도로 파고들었다. 그는 그 과정에서 디올이 이미 1954년에 멕시코를 주제로 컬렉션을 선보인 적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키우리에 대해 조금만 안다면 멕시코에 대한 그의 지대한 관심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그 관심의 배경에는 수백 년 동안 이어진 멕시코인의 자연의 힘에 대한 믿음, 그리고 여성으로서 경험을 바탕으로 목소리를 드높인 불굴의 여성 예술가들이 있었다.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 티나 모도티(Tina Modotti), 프리다 칼로(Frida Kahlo)가 수호천사처럼 이번 컬렉션을 지켜보고 있다. 쇼장을 제공해준 산 일데폰소 대학은 프리다 칼로의 모교이기도 하다. 또한 멕시코의 공예 기술, 유산, 공동체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섬세한 수공예품과 직물도 중요한 요소였다. 마지막으로 미지의 사후 세계에 대한 상징으로 가득한 멕시코 특유의 마법적 사실주의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키우리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였고, 더할 나위 없이 멋지고 사려 깊은 여행 같았다. 또 키우리가 세상 밖으로 더 멀리 나갈 때마다 결국은 자신의 본질에 더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이번 쇼를 포함해 키우리의 모든 크루즈 컬렉션은 가장 그다운, 극히 개인적인 작업을 보여주는 듯하니 말이다. 전통 의복의 형태에서 멕시코와 그의 모국 이탈리아(엄밀히는 지중해 연안의 여러 국가)의 연관성을 찾아낸 것만 봐도 그렇다. “전통 의복의 형태는 매우 단순해요. 사각형, 원형, 직사각형이 사용되죠. 그 점이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쇼 시사회에서 그가 한 말이다.
물론 디올이기 때문에 미니멀한 길이란 있을 수 없다. 기하학적 형태를 활용한 튜닉 스타일의 블라우스와 굽이치듯 풍성한 스커트에 섬세한 레이스 원단을 사용했으며, 면 원단에는 멕시코를 상징하는 동식물 이미지를 선명한 핑크, 그린, 테라코타 색상으로 화려하게 수놓았다. 키우리는 특히 사포텍(Zapotec)족 여성들이 입었던 전통 의상인 테우아나(Tehuana)를 많이 참고했다. 그중에서도 페티코트를 연상시키는 스커트와 우이필 상의가 눈에 띄었다. 테우아나는 키우리가 현재 자신의 우상이 된 프리다 칼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여러 요인 중 하나였다. 프리다 칼로는 전통 의상을 여성 예술가로서 자기 정체성을 이루는 주축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가부장제, 계급, 젠더로 이뤄진 사회 권력 구조를 통렬히 비판하는 상징물로 활용했다.
키우리에게 프리다 칼로는 ‘우상’이다. 그는 “늘 프리다 칼로와 그의 작품에 깊은 동질감을 느껴왔어요. 칼로는 자신의 몸과 의복에 대한 생각을 최초로 작품을 통해 표현한 예술가였으니까요. 그의 옷은 예술의 일부였죠. 칼로는 또한 자연 세계, 대자연, 변태라는 개념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어요.” 변태의 개념은 이번 컬렉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브인 나비와도 연관이 깊다. 키우리는 디올을 이끌던 마르크 보앙(Marc Bohan)이 사용하던 아카이브에서 나비 프린트를 찾았다. 최근 파리의 팔레 갈리에라에서 열린 프리다 칼로 전시 <겉모습의 이면(Beyond Appearances)> 또한 그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키우리는 그 전시의 큐레이터 시르세 에네스트로사(Circe Henestrosa)를 찾아가 자신이 멕시코에서 이번 컬렉션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에네스트로사가 기획한 훌륭한 쇼는 현재 프리다 칼로의 생가였던 카사 아술의 프리다 칼로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어린 시절 겪은 끔찍한 사고 이후 척추 교정용 코르셋을 입고 있는 자기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칼로의 작품을 보고 마음의 울림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거라 단언한다.)
키우리는 리조트 컬렉션을 파리가 아닌 다른 곳을 주제로 기획하는 것을 계기로 평소 자신이 존경하던 예술가의 작품을 디자인을 통해 선보이거나, 다른 나라 전통 공예품의 아름다움을 세심하게 보여주는 것을 통해 공예 기술과 그 전통의 명맥을 이어가는 공동체를 보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하고자 했다. 그는 이번에는 젊은 나우아(Nahua)족 직공으로, 욜센틀레 직물 공방(Yolcentle Textile Workshop)의 공동 창립자 일란 크루스 크루스(Hilán Cruz Cruz)와 함께 작업했다. (쇼가 시작되기 전 크루스는 키우리가 이 분야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직접 직공들을 찾아와 여러 날 함께 생활하면서 직조법을 배우고 갔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스나 홀로빌(Sna Jolobil)’의 창립자 페드로 메사 메사(Pedro Meza Meza), 레미히오 메스타스(Remigio Mestas), 멕시코 오악사카(Oaxaca) 지역의 공예 문화를 되살리고자 노력하는 기업 ‘로시난테(Rocinante)’의 설립자 나르시 아렐리 모랄레스(Narcy AreliMorales)의 수공예 직물도 적극 활용했다.
이번 컬렉션에서 선명한 빨간색, 남색, 녹색 자수가 돋보인 디올의 1947년 뉴 룩 수트는 로시난테의 모랄레스가 새롭게 변화시켰다. 그 결과물은 더할 나위 없이 눈부셨지만, 서로 다른 문화를 넘나들며 훌륭한 디자인의 서사를 이끌어낸 것은 순전히 키우리의 공이었다. 그는 디올의 모든 디자인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아이코닉한 작품을 가져와 다른 창작자로 하여금 그들만의 자유로운 해석을 더해 공동으로 창의적 소유권을 가질 수 있게했다. 키우리는 또한 전통 모자를 제조하는 모레노(Moreno) 가문을 비롯해 멕시코시티에서 주얼리 공방을 운영하는 라파엘 비야 로하스(Rafael Villa Rojas)와도 협업했다. 한편 멕시코 예술가이자 사회운동가 엘리나 차우베트(Elina Chauvet)가 여러 여성 공예가를 한데 모아 섬세하기 그지없는 빨간 자수가 수놓인 하얀 면 드레스 시리즈를 완성했다. 쇼가 시작되면서부터 이 아름다운 하얀 드레스가 대미를 장식하기까지, 잔잔하지만 쉼 없이 무대 위를 적신 이슬비가 쇼에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더했다.
컬렉션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 한 사람의 디자이너, 넓게는 패션계가 이 세상 모두를 위한 자리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탤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키우리는 쇼 하루 전 시사회에서 그 점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쇼는 저 혼자만의 창의력만 가지고는 나올 수 없는 것이었어요. 진정한 창의력은 여럿이 함께 작업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법이니까요. 컬렉션을 통해 공동체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한 향후 리조트 컬렉션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분명히 밝혔다. “그런 기조는 디올뿐 아니라 패션계 전체에서 중요한 문제예요. 우리는 미래를 위해 반드시 변화해야 하는 시기를 살아가고 있어요. 저는 정말 패션의 힘을 믿지만, 이제 다른 길을 찾아 나설 때라고 생각해요.” 지금 그는 분명 그 새로운 길을 선도하고 있다. (VK)
- 글
- MARK HOLGATE
- 사진
- COURTESY OF DIOR
- SPONSORED BY
- 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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