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야오는 왜 악의로 가득한 소년을 그렸나
*이 글에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본 후 탑승한 엘리베이터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많았다. 사실 나도 뚜렷한 메시지를 느끼거나 공감하지 못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러 간다는 건 곧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모노노케 히메> 같은 작품을 보러 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캐릭터와 스토리는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세계(異世界)’에 대한 설명은 불친절하고, 주인공 마히토는 정의롭지 않다.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이름을 지우고 보면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의 신나지 않은 모험담이라고 할까? 그런데도 나는 한 장면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주인공 마히토가 책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다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현재 한국 출간 제목이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여러 인터뷰에서 동명 소설을 통해 받은 영감을 이야기했다. 또 주인공에게 이 책이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을 뿐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는 원작과 관계없다고도 말했다. 일본의 작가 요시노 겐자부로가 1937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이후 일본 청소년들의 필독서가 될 만큼 오랫동안 사랑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마히토가 왜 이 책을 읽다가 눈물을 흘리는지가 궁금했다. 극 중에서 마히토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마음을 닫고 산다. 새어머니에게도 기본적인 예의만 갖출 뿐이다. 게다가 처음 등교한 학교에서는 다른 아이들과 주먹다짐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돌멩이로 자해한다. 비뚤어져도 한참 삐뚤어진 아이. 밉상이다. 그런 아이로 하여금 눈물 흘리게 만든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걸까?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굳이 왜 이런 장면을 그려 넣은 걸까? 호기심을 해결하려면 책을 읽어볼 수밖에 없었다.
책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의 주인공은 마히토와 비슷한 나이의 10대 소년 혼다 준이치다. 소설은 이 소년이 일상에서 겪는 여러 깨달음을 그린다. 소년은 도쿄 시내의 어느 건물에서 거리의 사람들을 내려다본 후, 이 세상 모든 인간은 어쩌면 ‘분자’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달한다. 그런 소년에게 외삼촌은 “너는 지금 코페르니쿠스가 연구한 것을 스스로 깨달은 것”이라며 북돋아준다. 그날 이후 ‘코페르’란 별명으로 불린 소년은 가난한 친구를 통해 빈부 격차를 알게 되고, 폭력적인 학교 선배들을 통해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된다. 저자 요시노 겐자부로는 1930년대 군국주의 세력이 힘을 키우던 일본에서 청소년들에게 진짜 중요한 가치를 알려주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히토도 그런 저자의 의도에 따라 이 책에 공감해 눈물을 흘렸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데 힌트가 되어주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애니메이션 속 마히토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는 이 책의 삽화가 등장한다(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려 넣은). 이 삽화는 실제 책에도 동일하게 수록되어 있다. 검은색 자동차 한 대가 길을 달리고 있는 그림. 이 삽화가 나온 부분의 이야기를 찾으면 마히토가 눈물을 흘린 이유를 추정해볼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해당 부분을 읽으며 나도 코끝이 찡했다. 대략 이런 이야기다. 코페르와 그의 친구들은 한 가지 약속을 한다. 요약하자면 다른 친구 한 명이 곤경에 처했을 때, 다 같이 나서서 함께 맞서자는 약속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정작 코페르는 두려움에 머뭇거리다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코페르는 고통에 빠진다. 자신이 비겁하게 행동한 것에 대한 후회, 이대로 영영 친구들을 잃게 될 것이란 공포. 코페르는 외삼촌의 조언대로 친구들에게 사과 편지를 쓰고, 편지를 본 친구들은 코페르를 찾아온다.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우리는 오히려 네가 학교에 오지 않아 걱정했다고. 마히토가 보면서 눈물을 흘린 페이지는 그처럼 잃어버린 줄 알았던 우정이 회복되는 대목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서 마히토는 책을 읽고 난 후, 숲속의 탑으로 들어가버린 새엄마를 찾아 나선다. 극장에서는 마히토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새엄마에게 마음을 닫아버린 그가 왜 갑자기 새엄마를 찾으려고 한 걸까. 소설을 통해 마히토의 눈물을 이해하고 나니 그의 행동이 곧 코페르가 쓴 ‘사과 편지’와 같은 맥락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히토의 자해는 곧 새엄마에 대한 적개심이자, 세상에 대한 악의였다. 이후 이세계에서의 모험을 끝낸 마히토는 큰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며 이것은 “내가 만든 악의의 상징”이라고 고백한다. 그러고는 현실 세계로 돌아가 “왜가리 남자, 히미, 키리코 같은 친구를 만들 것”이라고 답한다. 책을 읽고 나니 어쩌면 마히토는 그 순간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자신이 눈물을 흘렸던 대목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겁한 행동에 대한 참회. 세상과의 관계 회복. 소년의 성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렇게 자신이 책에서 받은 영감을 반영했을 것이다.
세상의 어른들은 부모를 잃고도 밝고 굳세게 살아가는 아이들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려온 아이들도 비슷했다. 돼지가 된 부모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치히로(<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부모에게 버려졌지만 들개들의 공주이자 숲의 수호신으로 성장한 산(<모노노케 히메>), 아픈 엄마 대신 집안일과 동생 돌보기를 마다하지 않은 사츠키(<이웃집 토토로>), 고아여도 기계 견습공으로 밝게 살아가는 소년 파즈(<천공의 성 라퓨타>). 그런데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긍정적으로 세상을 탐구하던 소년도 어느 날 갑자기 비겁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린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지금까지 그려온 캐릭터와 다른 인간상에 대한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그동안 만들어낸 소년 소녀 모두 어른들의 희망 회로에서 나온 것이라는 반성을 했을 수도. 죽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악의로 변질시킨 마히토는 그처럼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에서 가장 어둡고 음험한 소년이다. 하야오는 책에서 받은 영감 그대로 그런 마히토가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려 했을 것이다. 또 책의 메시지처럼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친구’로 상징되는 ‘관계의 형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소설 속 코페르가 소설의 끝에서 밝히는 바람 또한 “온 세상 사람들이 친구가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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