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이코닉한 겨울 패션 영화 #2
007 유어 아이스 온리(1982)
클래식 스키 룩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편의 영화. 거물들의 후원을 받는 아이스 스케이팅 선수 캐릭터를 내세우고, 그 핑계로 스키와 봅슬레이 경기장에서 화려한 추격전을 벌인다. 아이스 스케이팅 선수 비비 달 역은 실제 미국 챔피온 린 홀리 존슨이 연기했다. 비비 달은 아버지뻘 제임스 본드(로저 무어)에게 반해 그의 호텔 방까지 쳐들어가지만 너무 어리다고 퇴짜를 맞는다. 제임스 본드에게도 나름의 윤리적 기준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역이랄까. 스키장 장면에서 린 홀리 존슨이 입고 나온 의상은 그 화려한 액션 중에도 관객의 시선을 강탈하기에 충분하다. 카우보이 모자는 무리수지만 에스닉한 자수가 놓인 새빨간 점프 수트는 멋지다. 지루한 기능성 스포츠 의류에 경종을 울리는 디자인이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1995)
외롭고 따분하게 살던 루시(산드라 불록)는 우연히 짝사랑하던 남자 피터(피터 겔라거)의 목숨을 구한다. 그 사고로 피터는 혼수상태에 빠지고, 루시는 병원에서 얼떨결에 피터의 약혼자 행세를 한다. 피터 가족은 루시 덕분에 모처럼 화목해진다. 루시도 오래 그리던 가족의 정을 느낀다. 하지만 피터의 동생 잭(빌 폴만)은 루시를 믿지 않는다. 잭과 루시는 서로를 경계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루시는 요즘으로 치면 스토커나 사기꾼이다. 하지만 산드라 불록의 로코 파워가 워낙 강해서 이 캐릭터를 미워할 수 없다. 배경은 겨울이지만 한없이 포근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이 작품에서 산드라 불록은 1990년대 실용주의 캐주얼의 진수를 보여준다. 연한 스트레이트 핏 청바지, 벌키한 스웨터와 카디건, 발목까지 내려오는 울 코트, 워커, 갈색 가죽 메신저 백, 손뜨개 목도리 등. 같은 1990년대 맥시 코트라도 <슬라이딩 도어즈>(1998)의 기네스 팰트로가 우아하다면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산드라 불록은 편안하다. 한국의 겨울에 그리워지는 건 단연 후자다.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012)
신문기자 미카엘(다니엘 크레이그)은 늙은 재벌 헨리크에게 손녀의 실종 사건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는 방대한 작업에 착수하기 위해 천재 해커 리스베트(루니 마라)와 손잡는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이 품위 있고 서늘한 스릴러에서 눈 덮인 스웨덴 풍경과 살을 에는 혹한은 그 자체로 캐릭터이자 이야기다. 핀처 감독의 <소셜 네트워크>(2010)에 평범한 여대생으로 출연한 루니 마라는 불과 2년 만에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다. 원작 소설과 스웨덴 드라마의 각인이 깊어 캐스팅에 불만을 가진 팬들도 있었지만, 영화 자체만 보면 그는 압도적이고 신선했다. 그는 새카만 투 블록 헤어, 눈썹 탈색, 피어싱, 문신, 스모키한 눈화장, 올 블랙 의상으로 시크한 고스 룩을 완성했다. 이 영화는 스키니 진과 록 시크의 시대가 영화계에 남긴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다.
캐롤(2016)
머라이어 캐리의 목소리가 들리면 ‘12월이구나’ 하는 것처럼 언젠가부터 이 영화 얘기가 들리면 ‘겨울이구나’ 한다. 주인공들은 1950년대 뉴욕, 크리스마스를 앞둔 분주한 백화점에서 만난다. 칙칙한 터틀넥을 입고 산타 모자를 쓴 젊은 점원 테레즈(루니 마라) 앞에 황금빛 모피를 두른 귀부인 캐롤(케이트 블란쳇)이 나타나더니 관객의 넋까지 쏙 빼놓는 현란한 플러팅을 선보인다. 그리고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사랑에 빠지고, 혼란을 겪고, 현실적 장애에 부딪쳐 이별하고, 영화는 컬트적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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