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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는 어떻게 톱 모델이 되었나

2023.11.20

아메리카는 어떻게 톱 모델이 되었나

매력적인 그런지 스타일에 한국을 좋아하며 운명론을 믿는 아메리카 곤잘레스. 가녀린 체구에 강인한 내면이 느껴지는 그녀를 <보그 코리아>가 다시 만났다.

Courtesy of Dries Van Noten

날카로운 눈매, 트레이드마크가 된 레이어드 컷, 황갈색 피부, 매력 있는 광대뼈. 이국적인 외모의 아메리카 곤잘레스(América González)는 <보그> 패션 에디터로서 나의 첫 촬영이었던 2020년 11월호의 알렉산더 맥퀸 한 페이지 기사의 모델로 함께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첫 <보그 코리아> 촬영이에요!” 논현동 스튜디오에 걸어 들어오며 외치던 그녀에게도 전 세계 첫 <보그> 촬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처음’을 공유하며 내적 친밀감을 쌓았다. 179cm의 늘씬한 키, 몽환적인 초록 눈동자, 23인치의 잘록한 허리를 지닌 아메리카는 서울을 떠나 밀라노, 파리 패션 위크 데뷔와 동시에 드리스 반 노튼 런웨이를 걸었다. 그 후 2022 F/W 시즌에는 샤넬, 디올, 프라다, 페라가모, 루이 비통 등 무려 30개 런웨이에 등장하며 단숨에 전 세계를 매료한 톱 모델로 등극했다. 이에 영국 보그닷컴은 2022년 3월 4대 패션 위크가 끝난 직후 그녀를 ‘주목해야 할 모델’로 꼽아 그녀의 명성에 힘을 더했다. 그뿐 아니라 올해에는 펜디 2023 S/S 캠페인, 피어 오브 갓 2023 라운지 웨어 등의 광고 캠페인은 물론, 2022년 11월호 멕시코 <보그> 커버에 이어 <퍼펙트> <V> <하퍼스 바자> 이탈리아 커버 모델까지 차지했다. 아메리카의 커리어 수직 상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얼마 전 ‘BoF 500인’에 뽑혀 패션모델로서 영예을 누렸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해 9월호 표지에 이어 2023년의 마지막 커버 모델로 아메리카 곤잘레스를 다시 한번 서울로 초대했다. 열정적인 남아메리카 출신으로 럼과 콜라를 섞어 마시는 걸 가장 좋아하는 그녀와 함께 한남동 ‘탄산 바’에서 칵테일 한 잔과 함께 3년 만의 수다를 시작했다.

한국에 다시 온 걸 축하한다! 가방에 꽂힌 생화가 눈길을 끈다.

<보그 코리아>에서 보내준 웰컴 플라워를 받고 기뻤다. 예쁜 꽃을 잠시라도 기념하기 위해 ‘제인 버킨’ 스타일로 가방에 꽂아보았다.

이름이 재미있다. 어떤 의미가 있나?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몰랐다고 한다. 이름을 고민하다, 같은 방에 있던 할머니 친구 이름을 따라 지었다고 한다.

모델이 된 계기는?

가장 큰 이유는 생계. 정치적으로 복잡한 나라 베네수엘라에서는 돈을 벌기 어려웠다. 의과대학에 합격해 공부했지만, 여자로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없었기에 모델로서는 늦은 스무 살 나이에 멕시코로 가서 본격적으로 모델 일과 함께 경제활동을 시작했다.

의사의 꿈은?

아직 그 꿈은 유효하다. 언젠가 꼭 의사가 되고 싶다. 특히 노인 복지와 관리 쪽에 관심이 많다. 인간이 나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데 나약해진 이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생을 마무리하는 것이 안타깝다.

일본과 한국에서 모델 활동할 때 달랐던 점은?

첫 해외 활동이었던 일본. 20달러밖에 벌지 못했던 멕시코보다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많이 외로웠다. 프로페셔널했지만 벽을 느꼈고, 사생활 공유는 어려웠다. 반면 한국은 열려 있었고, 반겨줬다. 보통 모델들이 존중받지 못할 때가 많다. 아무 데서나 옷을 갈아입는 직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어디서나 옷을 벗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탈의실에서 갈아입게 해줄 뿐 아니라 일한 만큼 대우해주었다. 그렇게 3개월 계약을 세 번 연장해 한국에서 1년 동안 활동했다. 모델 커리어에 큰 변곡점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친구가 등산을 하자고 했다. 원래 즐겨 하지 않지만, 그날따라 가보자는 생각이 들어 인왕산으로 향했다. 나이 드신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편하게 산을 타는 모습에 한국 사람들은 의지가 강하다고 생각했다. 또 당시 일에 대한 고민이 많아 산에 오르며 신과 우주에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졌다. “제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듣고 계시다면 신호를 주세요.” 그 순간 정말 놀랍게도 바위에 호랑나비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상징하는 의미를 찾아보니 변화를 의미했다. 그때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할 용기가 생겼다.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다.

그때 살던 동네 신사동에 다시 가보니 어떤가?

집에 다시 돌아온 느낌이다. 예전에 혼자 걸어 다니던 가로수길. 그중에서도 자주 가던 브루클린 햄버거 가게가 반가웠다. 그리고 촬영할 때 많이 먹던 스쿨푸드와 마녀김밥이 그리웠다. 오랜만에 먹으니 행복하다.

다음에 한국에 오면 뭘 하고 싶나?

아름다운 섬, 제주를 방문하고 싶다. 바다를 워낙 좋아한다. 해변에 가서 누워 있고 싶고, 갈치구이와 해산물도 실컷 먹어보고 싶다.

디올 2024 크루즈 쇼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Courtesy of Dior

멕시코에서 진행된 디올 2024 크루즈 쇼. 맑은 날씨를 위해 쇼장에서 전통 기우제를 진행했다. 스태프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연기를 피우며 신께 기도했다. 아쉽게도 비가 내렸지만, 그래도 무척 아름다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런웨이는?

드리스 반 노튼 2018 F/W 컬렉션. Courtesy of Dries Van Noten

데뷔 무대라고 생각하는 드리스 반 노튼 2018 F/W 런웨이 쇼. 물론 밀라노 패션 위크에서 섰던 엔젤 첸도 좋았지만, 드리스 반 노튼 쇼에 서게 된 순간은 잊히지 않는다. 세 걸음만 걸어도 합격과 불합격이 나뉘는 캐스팅 현장에서 워킹을 멈추게 하더니 사진을 찍었고, 다음 날 “피팅이 있습니다”라고 연락이 왔다.

런웨이에 서보고 싶은 브랜드가 있다면?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생 로랑. 파리 패션 위크의 첫 쇼인 생 로랑은 모든 모델의 꿈이다. 언젠가 꼭 생 로랑 런웨이에 서보고 싶다.

하루 동안 가장 많이 섰을 때 몇 개 쇼였나?

4개. 정말 힘들었다. 특히 배가 정말 많이 고팠다. 백스테이지 케이터링 섹션에는 주로 빵이 있는데, 탄수화물 소화가 잘 안돼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빠르게 쇼장에 도착하는 팁이 있다면?

오토바이! 파리 패션 위크마다 함께하는 오토바이 드라이버 제시가 있다. 좋은 풍채와 달리 섬세하고 매너가 아주 좋다. 항상 ‘레이디’라고 불러주며, 파리 곳곳의 숨은 길을 잘 알아서 다음 쇼장에 안전하게 데려다준다.

작업해보고 싶은 사진가가 있다면?

피터 린드버그. 그가 세상을 떠나 너무 아쉽다. 꼭 한 번 함께 해봤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촬영해보고 싶은 컨셉의 화보가 있나?

흑백사진으로 담는 올 누드 화보.

다음 목표는?

한 브랜드의 얼굴로 선정되고 싶다. 감사하게도 프라다 주얼리, 아이웨어 캠페인에 등장하긴 했지만 아직 주요 캠페인에 나온 적은 없다. 얼굴이 항상 가려지거나, 틀어지거나… 완전하게 보여준 적이 없다. 이런 야망과 희망은 모델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취미는?

노래 부르기. 노래방을 무척 좋아한다. 꼭 불러야 하는 애창곡은 비욘세의 ‘Irreplaceable’.

좋아하는 뮤지션이 있다면?

재즈를 즐겨 듣던 아버지와 가스펠부터 록까지 다양한 음악을 듣는 어머니 덕에 음악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어린 시절 이모 패션에 빠져서 슬립낫(Slipknot) 같은 메탈 밴드와 펑크 음악을 좋아했지만, 최근에는 비욘세, 머라이어 캐리 등 여성 아티스트의 R&B 음악을 즐겨 듣는다. 그리고 방탄소년단과 한류가 시작되기 전 이미 샤이니의 ‘누난 너무 예뻐’와 f(x)의 노래를 들으며 K-팝에 관심이 있었다.

본인의 MBTI를 알고 있나?

INTJ, 친구들이랑 재미로 해봤는데 나름 정확한 거 같다. 조용하고 소심한 면모가 있고, 미리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한다(웃음).

본인의 스타일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편안함! 실루엣이나 핏의 제한이 있는 옷은 선호하지 않는다. 1990년대에 엄마가 입었을 것 같지만 지금 꺼내 입어도 좋은, 그런 유행을 타지 않는 아이템이 좋다.

한국에서 쇼핑한 아이템은?

브랜드 오소이를 좋아한다. 인생 첫 맞춤 카멜 가죽 부츠를 구매한 적 있는데, 지금까지도 밑창이 닳도록 자주 신고 다닌다. 이번에도 성수동에 있는 매장을 방문해 벨트와 지금 입은 가죽 재킷(검정 오버사이즈 가죽 재킷), 겨울 코트 위에 편하게 멜 수 있는 크로스 보디 백까지 샀다.

롤모델이 있다면?

영화배우 제프 브리지스. 특히 1998년에 개봉한 영화 <위대한 레보스키>에 나온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제일 나은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 여자들. 한국 여자들은 정말 멋지다. 트렌드에 민감할 뿐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걸 확실히 알고, 남을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무심한 태도를 닮고 싶다. 오늘 신은 아디다스 삼바 운동화도 인스타그램에서 한국 여성들의 데일리 룩을 둘러보다가 예뻐 보여서 샀다.

친한 한국 모델이 있나?

선망하는 모델이 있다. 바로 최소라. 어린 시절부터 영감을 주는 모델이었다. 가장 닮고 싶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백스테이지에서 처음 만났을 때 팬이라고 고백했다.

모델을 꿈꾸는 소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기.’ 자신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결국 본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잊고, 자신에게 불친절하고 무관심을 유지한다. 이로 인해 정신적으로 약해지고 멘탈이 붕괴되는 어린 모델들을 많이 봤다. 본인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단단해야 일도 건강하게, 즐겁게 할 수 있다.

올해의 마지막 소망은?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싶다. 알맞은 시간에 침대에 누워서 푹 자고, 가족과 요리를 해먹고 싶다. 요리도 꽤 잘한다. 가족들이 내가 요리해주는 음식을 좋아해서 아무리 피곤해도 집에 있을 때는 차려주려고 한다.

2023년 하이라이트 톱 5는?

로베르토 카발리 2024 S/S 컬렉션. Courtesy of Roberto Cavalli

1. 로베르토 카발리 2024 S/S 쇼에 선 것. 2. 보테가 베네타 애프터 파티에서 가수 에리카 바두를 만난 것. 3. ‘BoF 500인’에 뽑힌 것. (행사장에서 콜롬비아 아티스트 카롤 G를 만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을 정도로 기뻤다.) 4. 비욘세 콘서트에 가본 것. 5. 한국에 다시 돌아온 것.

2024년의 목표는?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고 싶다. 모든 걸 수긍하지 않고,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기준을 세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덜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 (VK)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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