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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플러스 아트 바젤’에서 발견한 것

2023.11.23

‘파리 플러스 아트 바젤’에서 발견한 것

두 번째 ‘파리 플러스 아트 바젤’이 열렸다. 아트 비즈니스 침체가 예견되는 요즘, 이곳의 가을만은 예외였다.

34개국 154개 갤러리 부스가 입점한 파리 플러스 아트 바젤은 VIP 오픈일인 10월 18일부터 5일간 약 3만8,000명이 다녀가며 무사히 마무리됐다.

늘 예술과 공존해온 파리지만, 유독 지난 10월은 컬렉터와 미술 애호가, 수십억의 미술 거래액 소식으로 북적였다. ‘파리 플러스 아트 바젤(Paris+ par Art Basel)’이 열렸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를 맞았을 뿐이지만, 여타 아트 페어에 비해 작품 수준과 관심도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평이다. 파리 플러스 아트 바젤은 ‘아트 바젤’의 모기업인 스위스 MCH 그룹이 파리의 아트 페어인 ‘피악(FIAC)’을 인수하면서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VIP 오프닝인 10월 18일 저녁, 사람들은 샴페인 잔을 부딪치다가도 중동 사태가 미칠 영향을 걱정했다. 누군가 빈대의 습격도 문제라며 분위기를 전환하려 했으나 쉽진 않았다. 아트 바젤의 CEO 노아 호로위츠(Noah Horowitz)는 행사 전날 이메일을 보내 “최근 폭력 사태는 글로벌 문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라며 보안 인력을 추가 배치한다고 밝혔다. 나도 떨리긴 했지만 다행히 행사가 끝나는 10월 22일까지 5일간 3만8,000명이 다녀가며 무사히 마무리됐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아시아 지역의 주요 예술 후원자들이 참석했는데, 런던 테이트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토론토 온타리오 미술관, 파리 피노 컬렉션과 퐁피두 센터, 이스탄불 현대미술관, 베를린 현대미술 연구소,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현대미술관 등의 관계자들과 영부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를 비롯해 조용히 방문한 유명 인사들도 VIP 라운지에서 볼 수 있었다.

튈르리 정원에 25개 조각품이 설치됐다. 파리 플러스 아트 바젤과 루브르 박물관이 주최한 공공 전시 ‘다섯 번째 계절’의 일환이다.

파리 플러스 아트 바젤이 열린 장소는 에펠탑 앞 잔디 광장에 임시로 세운 그랑 팔레 에페메르(Grand Palais Éphémère)로, 34개국 154개 갤러리 부스가 입점했다. 이곳 말고도 파리의 상징적인 장소에서 3개 공공 전시와 2개 야외 설치물, 콩베르사시옹(Conversation) 프로그램을 대중에게 무료 개방했다. 퐁피두 센터와 협업한 콩베르사시옹은 문화와 예술을 이야기하는 대담 프로그램이다. 프랑스어와 영어 동시통역이 준비됐고, 계속 만석이었다.

그랑 팔레 에페메르의 빼곡한 부스를 돌아다니다 숨통을 틔우기 위해, 파리 곳곳의 공공 전시회를 찾았다. 파리 플러스 아트 바젤의 디렉터 클레망 들레핀(Clément Delépine)이 “이 공개 프로그램은 아트 바젤이 프랑스의 수도에서 열린다는 특징을 확실히 보여주죠. 시민과 관광객은 파리의 역사적인 장소에서 예술과의 매력적인 대담을 경험할 거예요”라고 말할 만큼 장소와 작품의 조화를 보는 것이 관람 포인트였다.

지난해 뉴욕 하이라인에 이어 튈르리 정원에 등장한 메리엠 베나니의 ‘Windy’.

가장 인상적인 공공 전시는 루브르 박물관과 협업해 튈르리 정원에 마련한 <다섯 번째 계절(La Cinquième Saison)>이다. 튈르리 정원 곳곳에 25개 조각품이 설치됐다. 루브르의 ‘모나리자’를 보러 온 관광객이나 산책하러 온 파리지앵도 뜻밖의 야외 전시에 즐거워 보였다. 참여 아티스트는 조엘 안드리아노메아리소아(Joël Andrianomearisoa), 메리엠 베나니(Meriem Bennani), 야크벨리너 더 용(Jacqueline de Jong), 보이테흐 코바르지크(Vojtêch Kovarík), 자넬레 무홀리(Zanele Muholi) 등이다. “모두 자기 작품을 ‘살아 있는 물체’로 여기는 작가들이죠. 이번 전시의 핵심은 환경과 우리의 공존을 모색하는 거예요.” 이번 전시를 큐레이팅한 루브르-랑스 박물관의 디렉터 아나벨 테네즈(Annabelle Ténèze)가 설명했다.

파리 보자르의 17세기 예배당에는 영국 아티스트 제시카 워보이스의 ‘이 꼬리는 폐허 속에서 자란다’를 전시했다.

미술 학도들이 들고 나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파리 보자르엔 17세기 예배당이 있다. 이곳에 영국 아티스트 제시카 워보이스(Jessica Warboys)의 그림, 영상, 사운드 설치물로 구성된 멀티미디어 작품을 전시했다. 제목은 ‘이 꼬리는 폐허 속에서 자란다(This Tail Grows Among Ruins)’. 제시카 워보이스는 캔버스에 밀랍을 발라 야생 수역에 담그고 해안가의 무기안료를 뿌려 그림을 그렸다. 자신의 이름을 딴 영상 작품에는 곤충으로부터 장서를 지키는 박쥐의 서식지인 포르투갈 코임브라의 조아니나 도서관(Biblioteca Joanina)부터 에스토니아 라울라스마의 아르보 패르트 센터(Arvo Pärt Centre)를 둘러싼 소나무 숲 등을 여행한 모습이 나온다. 모르텐 노르뷔에 할보르센(Morten Norbye Halvorsen)이 박쥐 소리를 사용해 작곡한 사운드트랙이 예배당에 메아리쳤다. 공간도 전시의 일부라는 걸 알게 해준 작품이었다.

팔레 디에나에서 열린 다니엘 뷔랑과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2인전.

마지막 공공 전시는 1973년 오귀스트 페레(Auguste Perret)가 건축한 팔레 디에나(Palais d’Iéna)에서 열린 다니엘 뷔랑(Daniel Buren)과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Michelangelo Pistoletto) 2인전이었다. 색색으로 장식된 창문에서 내리쬐는 빛과 관객을 비추는 미러링 설치물 덕분에 프리즘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방돔 광장에 가고시안 갤러리와 협업으로 설치된 우르스 피셔의 조형물 ‘Wave’.

공공 설치물 2개 중 하나는 방돔 광장에 있다. 우르스 피셔(Urs Fischer)의 5m 높이 알루미늄 조형물로, 작품 제목이 ‘Wave’인 만큼 은색 파도가 치는 것 같은 형태다. 아티스트가 반죽한 클레이 더미를 기반으로 만들었는데, 작가의 손자국까지 그대로 살렸다. 가고시안 갤러리와 협업해 준비한 설치물이다. 공개 프로그램의 일환인 작품 전시 신청은 파리 플러스 아트 바젤 참여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갤러리에 개방됐다.

또 하나의 설치 작품은 셰일라 힉스(Sheila Hicks)의 섬유 조형물이다. 사랑의 다리 앞, 프랑스 학사원(l’Institut de France) 광장에 우뚝 솟은 빨강, 파랑의 지속 가능한 방수 직물로 덮은 6m의 커다란 기둥이다. 작품명은 ‘미지의 지평선을 향하여(Vers des Horizons Inconnus)’. 힉스는 패브릭을 사용해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만들어왔으며, 때론 이처럼 거대한 설치 작업도 선보여온 작가다.

다시 파리 플러스 아트 바젤의 본거지인 그랑 팔레 에페메르. VIP 데이가 끝날 무렵, 일곱 자리 숫자의 판매고 소식이 들려왔다. 데이비드 즈워너는 케리 제임스 마샬(Kerry James Marshall)의 그림을 600만 달러에, 하우저 & 워스는 조지 콘도(George Condo)의 작품을 235만 달러에, 타데우스 로팍이 로버트 라우셴버그(Robert Rauschenberg)의 작품을 200만 달러에 판매했다고 알렸다. 지난 10월 파리 8구에 지점을 낸 하우저 & 워스의 프레지던트 마크 파요(Marc Payot)는 “첫날은 정말 대단했어요. 프랑스는 물론이고 해외 컬렉터와 기관에 대규모로 판매했죠”라고 말했다. 아트 페어에서 거래액 발표는 흥행 표식과 같다. 중동 사태, 경기 침체 등으로 앞으로 아트 페어가 통합되거나 우등생만 살아남을 거란 예측이 흘러나오지만, 당분간 이곳은 살아남을 거란 선포 같았다.

파리 플러스 아트 바젤에서 자주 회자된 부스 중 하나는 페이스 갤러리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Olive Over Red’(1956)를 내걸었는데, 같은 기간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회고전으로 파리가 떠들썩했기 때문이다. 로스코의 작품 115점을 볼 수 있는 대형 전시회로 VIP 행사도, 예약 일정도 놓친 나는 멀미가 날 정도로 긴 대기 줄에 서서 기다려야 했다.

개인적으론 미하엘 베르너 갤러리(Michael Werner Gallery)의 부스가 좋았다. 팝아트 운동의 아버지 중 한 명인 피터 사울(Peter Saul)부터 지금 가장 뜨거운 1993년생 작가 이시 우드(Issy Wood)의 작품이 함께했다. 이시 우드는 같은 기간 파리 라파예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한국 갤러리로는 유일하게 참가한 국제갤러리의 부스 설치 전경.

한국 갤러리로는 유일하게 국제갤러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파리 플러스 아트 바젤에 참여했다. ‘묘법’ 연작을 세라믹으로 재해석한 박서보의 신작 ‘Écriture (描法) No. 230214’를 비롯해 이우환, 하종현, 양혜규, 강서경 등의 국내 작가와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아티스트 듀오 엘름그린 & 드라그셋(Elmgreen & Dragset) 등을 부스에 선보였다.

14개 신진 갤러리가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이는 갤러리즈 에메르정트 섹션.

그랑 팔레 에페메르는 앞서 설명한 갤러리 부스가 자리한 메인 섹터 ‘갤러리즈(Galeries)’와 14개 신진 갤러리가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이는 ‘갤러리즈 에메르정트(Galeries Émergentes)’ 섹션으로 나뉜다. 후자는 갤러리즈 라파예트 그룹(The Galeries Lafayette Group)이 후원하며 젊고 실험적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인상적인 신진 갤러리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SMAC, 공예 작품 시리즈를 선보이는 심피웨 부텔레지(Simphiwe Buthelezi)의 단독 부스를 선보였다.

파리 플러스 아트 바젤이 마무리되던 일요일, 여러 갤러리스트의 긍정적인 후기가 들려왔다. 브뤼셀에 자리한 베도비(Vedovi)의 디렉터 마르탱 데포세(Martin Desfossés)는 “수년간 봐온 아트 페어 중 가장 생산적이었어요. 국제적인 관객, 작품의 높은 수준은 파리 미술 시장의 부흥을 보여주었죠”라고 말했고, 파리의 샹탈 크루젤 갤러리의 이사 니클라스 스베눙(Niklas Svennung)은 “지정학적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이 박람회는 신뢰할 만한 예술적 자료를 찾고, 세계에 대한 낙관적인 대화를 열 수 있는 새로운 장소예요”라고 말했다. 컬렉터가 아닌 관객인 나로서도 파리 플러스 아트 바젤은 충분히 흥미롭다. 참여 부스의 작품은 놀라웠고, 박람회 외에 파리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예술 행사와 전시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와 아트 바젤이라는 전통의 두 강자가 만났으니 적어도 당분간은 미술 시장을 리드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하나, 아트 페어 기간 동안 파리에서 펼쳐지는 굵직한 전시를 스케줄링하기 어려웠다는 것. 내년 파리 플러스 아트 바젤을 방문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선택과 집중을 고민할 것이다. (VK)

    사진
    COURTESY OF ART BASEL, KUKJE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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