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의 극도로 한정적인 컬렉션
현대성과 아름다운 과거의 기법을 통해 극도로 한정적인 컬렉션을 발표한 나데주 바니 시뷸스키. 에르메스 캐시미어 한 필의 끝자락은 단순한 자투리가 아니다
어떤 디자이너는 일정을 엄격하게 고수하며 정해진 순서대로 컬렉션을 공개하지만, 어떤 디자이너는 특정한 한 시즌에만 얽매일 수 없는 상상력이 있다. 오랜 규칙을 거부하는 자유를 향한 갈망은 에르메스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 나데주 바니 시뷸스키(Nadège Vanhee-Cybulski)가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 부르는 아름다우면서 극도로 한정적인 에디션(겨우 16가지 룩!)으로 이어졌다. 2023 여성복 컬렉션의 정식 명칭은 ‘콜렉시옹 오르세리(Collection Hors-Série)’.
엠브로이더리 아이보리 스윙 코트부터 실크 자카드 스펜서 재킷과 리본으로 엮은 마이크로 미니까지, 모든 작품은 이전 컬렉션을 만들고 남은 패브릭으로 만든 것이다. 누군가는 ‘재고’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에르메스 캐시미어 한 필의 끝자락은 단순한 자투리가 아니고, 기퓌르 레이스 드레스의 기본이 되는 약간의 오간자는 평범한 매력 포인트가 아니다.
바니는 그저 오래된 재료에 새 생명을 불어넣기만 한 게 아니다. 복잡한 자수, 레이스 제작, 직조, 구슬 장식, 파스망트리(Passementerie) 등 프랑스 전역에 숨어 있는 아틀리에에서나 겨우 볼 법한 오래된 바느질 기법 공예품을 작품에 더했다. 이런 디자인은 과거의 기술과 현대의 패션 사이에 균형을 이루는 행위다. 바니는 설명한다. “그게 꽤 재미있다고 느껴요. 굉장히 멋지면서도 보수적이죠.”
이 옷은 패스트 패션과는 아주 거리가 멀고, 고유성과 적지 않은 가격에 맞물리며 이 불안한 시기에 가치의 개념이란 무엇인지 궁금해할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점점 더 매력을 느끼는 ‘적게 소비하자’는 아이디어는 우리가 구매하는 어떤 물건이 대단히 아름답고, 앞으로 수년 동안 사용할 수 있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쓰레기 매립지를 늘리지 않고 득보다 실을 가져오길 바란다는 의미가 아닐까?
바니에게 이런 질문은 그저 학문적인 것이 아니다. 그녀의 디자인은 숨 막힐 정도로 깔끔하지만, 불완전함과 빈티지 아이템에 대한 놀라운 열정도 보인다(그녀는 깨진 접시로부터 항상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걸 즐거워한다). 그렇기에 그녀가 라피아와 다루기 어렵기로 악명 높은 기타 자연 소재로 작업하길 좋아한다는 사실은 놀라운 게 아니다. 어쩌면 단 하나뿐인 것(깨진 접시든 폼폼이든 완전히 똑같은 건 없다)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그녀로 하여금 신비로운 기법을 화려하게 배치하도록 이끄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물어보라. 마지막으로 ‘비구디(Bigoudis, 헤어 롤러)’를 본 게 언제였나? 바니는 1850년대 기법을 재현해 머리칼이 헤어 롤러(비구디)를 감싸는 방식을 실크사로 모방해 장식 끈을 만들었다.
이 옷은 분명 희귀하지만, 바니는 그 옷이 새로운 종류의 신분을 상징한다고 믿는다. 너무 조용히 속삭이기 때문에 가장 세심하게 신경 쓰는 사람만 들을 수 있는 그런 상징 말이다. “20세기에 이르는 동안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기 위해 옷을 입었어요.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여성은 옷을 통해 점점 더 그들의 개성을 표현하기 시작했죠.”
그녀의 초콜릿 브라운 벨벳 드레스를 생각해보라. 마지막 남은 장인이 생테티엔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로 만든 장식(비구디!)이 있지만, 옷의 수수함은 놀라울 정도다. 딱 한 가지만 고르려는 진부한 노력을 하다 보면, 거부할 수 없는 이 옷과 입체적인 구슬 장식 칼라를 자랑하는 양면 캐시미어 코트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나는 이걸 카디건과 튀튀 스커트 위에 걸쳐 매일같이 입었다).
물론 아무리 희귀한 패션이라도 현실 세계를 벗어나서 존재하는 패션은 없고, 이는 굉장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니는 팬데믹 이전 평온하던 시절의 첫 컬렉션 오르세리를 말 그대로 사람들을 포부르 생토노레에 있는 에르메스 본점으로 인도하기 위해 만든 것을 기억한다(절대 직접 홍보하지 않는 에르메스는 이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철저히 숨겨왔다). 두 번째 컬렉션이 코로나19 확산과 겹쳐 사람들이 매장을 방문하지 않게 되자, 그녀는 자신의 디자인에 매장 자체에 대한 암호, 그녀가 ‘포부르의 엽서’라 부르는 교묘한 충성의 표시를 끼워 넣기로 한다. 그녀는 이 아이디어가 대단히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당신이 어디를 보아야 할지 알고 있다면, 이번 세 번째 컬렉션에서도 이 표시를 찾을 수 있다. 라피아로 손 자수를 넣은 망토에는 파리 매장의 철제 장식에 경의를 표하는 그래픽 모티브가 있고, 캐시미어 시프트 드레스 네크라인에는 매장의 모자이크 타일에서 영감을 얻은 나팔 비즈를 수놓았다.
“그건 정말 현대성과 전통의 조화에 대한 거예요.” 현대성과 전통, 다시 말해 사라져가는 기법의 부활뿐 아니라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걸 보는 즐거움이야말로 우리의 옷장, 우리의 삶 그리고 최고의 패션 한가운데 놓인 환상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겠나? 그녀 디자인의 지극한 ‘프랑스 시크’에도 불구하고 바니는 곰곰이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게 꼭 파리지앵 스타일에 대한 건 아니에요. 오히려 파리에 대한 추억, 그러니까 파리에서 꾸는 꿈에 대한 거죠.” 눈을 감고 포부르 생토노레를 따라 여유롭게 걷는 동안 햇살에 반짝이는 기퓌르 레이스 드레스에 대한 꿈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5,000마일을 걸어도 즐거운 산책일 것이다. (VK)
- 글
- Lynn Yaeger
- 사진
- Norman Jean 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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