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가 꼭 봐야 할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넷플릭스)는 예쁘장한 힐링 드라마처럼 보인다. 실제로 따뜻한 위로와 감동을 준다. 안구건조증이 아니고야 이걸 보고 눈물 흘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로맨스도 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정신보건 간호사 출신 이라하 작가의 동명 웹툰을 각색한 것이다. 덕분에 우리의 상식에 업데이트할 소중한 정보가 담겼다. 지식의 유통 구조가 바뀌고 정신의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는 많은 정신과 질병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공황장애, 우울증, ADHD는 이제 감기만큼 익숙한 병명이고 주변이나 방송, 소셜 미디어에서 당사자의 경험담도 흔히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고야 질병을 다루는 방법까지는 알 수 없다. 물론 그걸 드라마가 가르쳐줄 수도 없다. 대신 이 드라마는 전문가가 하는 일, 그들을 믿어야 하는 이유, 주변의 아픈 사람들을 돕는 법, 나아가 질병이 우리 자신을 찾아왔을 때 취해야 할 행동을 짚어준다. 환자들의 정신세계를 그래픽으로 구현해 이해를 돕기도 한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재미를 떠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정신병을 선정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사고’임을 강조한다. 극 중 항문외과 의사 동고윤(연우진)은 정신과와 항문외과의 공통점이 “환자가 자기 병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라며 질병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주요 에피소드도 우리가 흔히 공감할 수 있는 기제를 다룬다. 직장 내 괴롭힘과 부담으로 인한 공황장애는 자주 언급된다. 라면 하나를 몇 끼로 나눠 먹으면서 밤낮 알바를 하던 취준생이 보이스피싱으로 저축을 잃고 망상에 빠지는 모습은 서글프고 안타깝다. 왜곡된 가족 관계로 억압받다가 조울증이 온 환자, 스펙 없이 성공할 방법은 공부뿐이라며 공시에 매달리다가 탈이 난 망상 환자도 가슴이 아프다. 사회의 병폐가 개인의 질병으로 치환된 사례들이다. 정신병은 환자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주인공 정다은(박보영)은 내과에서 정신과로 옮겨온 간호사다. 전지전능한 엘리트 의사가 아니라 의료진이지만 정신과 경험은 부족한 사람을 서술자로 내세우면서 이 드라마의 독특한 결이 형성된다. 게임과 현실을 혼동하는 고시 낭인 환자는 다은을 ‘중재자님’이라 부른다. 다은은 진심을 다해 그를 돕는다. 현실에서 저랬다간 ‘고백 공격’을 받겠다 싶을 만큼 친밀하게 대한다. 하지만 그의 치료는 실패로 끝난다. 다은은 큰 상처를 받는다. 병원을 원망하던 환자의 가족은 그제야 의료진에게도 환자를 잃는 게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는다. 그 일로 다은은 우울증에 걸린다. 의료진일 때는 환자를 편견 없이 대했지만 막상 자기가 병에 걸리자 다은은 다른 환자나 보호자, 혹은 제3자처럼 병을 부인하고, 부끄러워하고, 사회생활에 결격사유가 될 거라고 지레 움츠러든다. 다은은 절친이 공황장애에 걸리기도 했다. 결국 다은은 의료인, 환자, 주변인, 당사자, 편견을 가진 평범한 사람까지, 정신병을 둘러싼 다양한 입장을 직접 경험하면서 그들 사이를, 그리고 그들과 시청자를 중재하게 되는 캐릭터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훈훈한 여성 오피스 드라마이기도 하다. 다은이 내과에서 정신과로 옮겨오자 동료들은 이유를 궁금해한다. 다은은 내과 수간호사가 자신을 정신과로 보낸 게 작업이 느려 팀에 민폐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침 직장 내 괴롭힘으로 들어온 환자를 담당하던 다은은 새 동료들이 자기를 반기지 않으리란 불안에 휩싸이면서 환자에게 공감한다. 여초 조직을 뒷말, 허영, 시기, 이기주의가 만연한 공간으로 묘사하는 드라마라면 지긋지긋하다. 하지만 수간호사 송효신(이정은)은 단호한 카리스마로 조직원들의 입단속을 하고 다은의 적응을 돕는다. 다른 동료들도 프로페셔널한 태도로 다은과 팀워크를 쌓아간다.
드라마는 간호사들을 의료인인 동시에 직장인으로 조명하며 그들 역시 과로와 정신 건강 위기에 내몰린 인간적 존재임을 강조한다. 수간호사 효신은 조현병 환자의 가족이다. 직장에서는 큰소리칠 때 치는 당당한 사람이지만 이웃들에게 이사 동의서를 받으러 다닐 때는 굴욕과 불의를 묵묵히 삼킨다. 또 다른 간호사 박지연(이상희)은 쏟아지는 업무와 육아 사이에서 으깨지고 있다. 그가 육아를 돕는 친정 엄마에게 화풀이를 해놓고 아이처럼 훌쩍이며 후회하는 모습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애잔한 장면 중 하나다. 지연의 위기를 알아차린 건 간호사들에게 냉랭하고 기혼자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던 싱글 여성 의사 차민서(공성하)다. 민서는 자녀 때문에 상담하러 온 워킹맘이 정작 자녀보다 위태로운 상황임을 간파하고 입원 치료를 권하더니 그 워킹맘 환자와 지연을 억지로 짝지어서 서로를 지켜보게 만든다. 우울증으로 보호 병동에 갔다가 퇴원한 다은은 ‘정신병 걸린 사람이 간호사로 일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동료들은 의외로 거리낌 없이 다은을 환영한다. 그들이 착한 사람이어서만은 아니다. 그들은 다은보다 정신과 경력이 오래되어 정신 질환에 담담하기도 하거니와 그것이 그들 자신을 비롯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치료로 좋아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다.
정도가 다를 뿐 불안, 우울, 자괴감, 죄책감, 사랑받고 싶은 욕망, 좌절된 꿈,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 가난, 고립, 상실, 실패, 강박 등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중 무엇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미치게 만들지는 알 수 없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그때를 대비해 우리가 서로의 안전장치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설레는 일을 찾고, 가끔은 게으름을 부리고, 두려움을 직시하는 용기도 가져보라고, 친절한 간호사처럼 조곤조곤 북돋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마냥 착한 소리만 늘어놓는 건 아니다.
다은이 우울증에 걸렸을 때 그의 어머니와 친구는 억지로 밥을 먹이거나 햇볕을 쬐게 하려고 노력한다. 친구는 나중에야 그것이 잘못된 방식이었음을 알고 후회한다. 정신병도 병인데 상식 없이 마음만으로 돕기는 어렵다. ‘차기 수간호사’로 촉망받는 민들레(이이담)와 정신과 의사 황여환(장률)의 에피소드도 좋은 교훈을 준다. 민들레는 도박 중독자에다 언어폭력을 일삼는 엄마 때문에 편할 날이 없다. 가장 노릇 하느라 꿈이란 건 꿔볼 새도 없이 안정적인 직업을 택했고, 뼈 빠지게 일해도 돈은 가족 밑에 다 들어가고, 능력에 비해 자존감은 낮고, 엄마가 평생 자기 피를 빨아댈 걸 아니까 결혼도 포기했다. 부드러운 성격의 부잣집 도련님 황여환이 자기 엄마 같은 사람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 짐작한다. 마침내 민들레의 엄마가 여환에게 돈을 뜯으러 갔을 때 여환의 대처는 정신과 의사가 날로 먹는 직업이 아니구나, 라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어떤 병은 증상보다 원인을 해결하는 게 빠르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주인공 다은의 따뜻한 감성이 전면에 부각되는 작품이지만, 이처럼 이성적 접근에 지지를 보내는 순간들이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믿음이 간다.
현대 한국인이라면 이 드라마에서 반드시 공감 가는 캐릭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고통에 눈물짓고, 그들이 치유되는 모습에 위로받고, 실패에 안타까워하고, 답이 없는 문제를 겪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세상이 그들에게 좀 더 따뜻하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 좋은 사람뿐 아니라 좋은 콘텐츠도 우리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을까? 조금은 그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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